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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방법.
이름: 이상용 ㅣ 작성일 : 2006-08-22 오전 3:37:26

어릴 때 내가 좋아하던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였다. 주인공이 고대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서 모험을 하는 해리슨 포드를 보고 있으면 나도 언젠가는 탐험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차츰 들어가면서 그 꿈은 기억 너머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여행 자체는 내가 동경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 여행은 떠남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직까지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주로 여행을 갈때에는 혼자서 짐을 꾸리곤 한다. 왜냐면 일단 여행일정을 짜기 쉽다는 장점과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낭만이 존재하기 때문일거다. 거기에다 여행지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야릇한 긴장이 더해지면 내가 마치 딴 사람이 된 듯한 감상에 젖어든다.
 사실 여행지에서는 나 자신을 180도 바꿀 수 있다. 특히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내가 평소하고는 다른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한들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성격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Personality은 Persona라는 라틴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뜻은 `가면`. 예전 사람들은 인간은 항상 사회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가면으로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이러한 가면을 여행지에서는 벗어버릴 수 있어서 한편으로 자기자신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든다. 항상 쓰고 다녀 본 모습을 잊어버린 나에게는 특히.

이제껏 다녀본 곳이 워낙 적은지라 목적지가 어디인가는 아직까지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독특하게도 난 입소문이 났거나 그 나라 정부가 지정한 여행 명소들은 그리 끌리지 않으니 말이다. 또한 같은 곳을 가더라도 이미 그곳은 예전과는 같지 않으므로 늘 내게 새로운 곳으로 다가 올 것이다.


하지만 딱 한군데, 내가 가면을 벗을 수 없었던 여행지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홍콩이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해도 모자른 듯한 느낌이 드는 홍콩이란 도시는 정말 동서양이 절묘하게 한 곳에 어우러졌다. 우연찮게 다른 곳을 갔다가 스탑오버로 4일간 있었던 홍콩은 그 4일이라는 시간동안 지루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구룡반도에서 바라보는 홍콩섬의 야경과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의 판타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서울과는 또 다른 사람들의 활발함에 나 역시 자연스레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날씨조차 활발한 홍콩이란 곳은 도무지 지루함을 찾을 수가 없는 곳이다.

 밤의 침사추이는 거대한 네온사인들의 공연장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네온사인들은 서로 자신을 뽐내면서도 조화롭게 사람들을 환영한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빨간색을 제일로 쳐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빨간색 네온사인은 여기서는 귀한 왕비 대접을 확실히 받는 듯하다. 눈에서 사라지지 않는 쇼핑몰과 네온사인을 보고 있자니 내가 확실히 한국이 아닌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다.

 침사추이가 아시아 문화의 대변자라면 홍콩섬은 서양의 문화가 우세한 곳이다.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답게 유명 건물들은 모두들 은행간판을 자랑스레 달고있다. 이곳 사람들의 활기참은 침사추이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뭐랄까, 훨씬 다듬어진 세련됨이라고 하나. 침사추이의 구수함과는 차이를 보인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차이가 문화적으로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는 것에 놀래는 것도 잠시 어느덧 중경삼림에 나왔던 세계에서 제일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있었다.

 홍콩섬에 위치한 란콰이펑은 홍콩의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왁자지껄한 동네다. 온갖종류의 레스토랑과 펍이 가득한 이 곳은 낮에는 잠시 활기를 비축해 두었다가 밤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잠시 담배 불을 빌리다가 얘기를 나눈 어느 캐나다인은 `이봐, 여기야말로 해가 지지않는 곳이지. 안그래?` 라며 웃음을 던진다.

 4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공항으로 향하는 날 여기서 나중에 일자리를 구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친구가 없어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 인천행 비행기를 타며 몇자 끄적이려 꺼낸 노트에서 관광 안내도를 보다가 문득 빅토리아 피크를 올라가지 않았다는걸 알았지만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색다른 가면을 쓰게 해준 이 홍콩이라는 도시를 다시 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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