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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유럽에서도 한국산 휠체어는 잘만 굴러가는데...

이름: 천인수 ㅣ 작성일 : 2006-08-23 오후 2:45:37

이야~ 유럽에서도 한국산 휠체어는 잘만 굴러가는데...

무덥지만 맑은 여름의 기운이 마냥 좋은 하루다.
사무실 창을 넘어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섞인 여름바람결도 좋고 사무실 한켠에서 잡담을 늘어놓는 동료들의 속닥거림도 좋기만 하다.
사회가 행복하려면 내가 행복해야 하고, 행복을 품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가장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어서 생각한 것이 바로 여행이다.
2005년 초부터 스스로의 극기와 깡다구(?) 그리고 남들 다하는 추억 만들기에 도전해보자는 계획한 휠체어배낭여행, 하지만 준비부터 만만치 않았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장애인을 위한 여행안내나, 장애인들이 직접 체험한 배낭여행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의 어느 도시에 가면 장애인편의시설이 어떻게 갖추어져 있고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고 등등 여행에 관한 정보는 철저히 비 장애인 위주로 제공되고 구성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여행지로 잡은 유럽각국에 관한 정보를 얻었고 도로와 기타 이동수단에 대한 편의시설은 비장애인들의 여행기 사진에 살짝살짝 찍힌 사진을 토대로 유추해 낼 수 밖에 없었다.

일단 목적지는 복지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서유럽의 3개국(프랑스, 스위스, 독일)과 구소련연방에서 독립해 개발도상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동유럽의 체코 등 총 10일 일정에 4개국을 여행하는 것으로 정했다.

목적지와 기간이 정해졌으므로 다음은 구체적인 관광일정과 숙박지 이동루트 및 이동수단 등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야 했다.
현지 날씨와 안전문제 그리고 휠체어 이동에 걸 맞는 여행지와 이동루트 등 다양한 접근으로 계획서를 하나 하나 만들어 갔다.

배낭여행이라 해도 일반적인 유스호스텔의 다다미방(보통 6명 이상의 공동숙소)에서의 숙박은 무리가 있었기에 투어리스트급호텔(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 한국의 장급 여관정도의 시설)로 인터넷 예약을 하였고 교통수단은 이동이 편한 기차로 정하고 이에 적절한 유레일패스(약정기간동안 무한정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를 구입하였다.
이부분에서 전문배낭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예약을 진행하였고 나름대로 계획한 루트에 대한 조언과 상세한 정보를 얻었다.

배낭은 무게의 압박 때문에 아내가 멜 끌낭(끌고 맬 수 있는 것)1개와 내가 휠체어를 타고도 원활히 다닐 수 있는 작은 배낭 한 개를 준비하고 모든 도전준비를 마쳤다.
(총 준비내역을 잠깐 설명하면 여권과 왕복비행기티켓, 배낭2개, 휠체어(접을 수 있는 것), 지팡이, 유레일패스, 호텔예약바우처, 관광지입장할인권, 국제학생증, 비상약 등이 있다.)

Intro 출발

인천공항은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었고 출국수속을 할 때도 비장애인과 다른 출입구를 사용하며 빨리 마칠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도 미리 티켓을 끊을 때 개인정보가 비행기 승무원에게 전달되어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빠르고 편안하게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유럽까지의 비행시간은 총 12시간 남짓이다.
직항으로 갈 경우 공항에 도착하면 먼저 비장애인들이 모두 내리고 난 다음, 공항요원들이 휠체어를 대기해놓고 장애인승객을 모시고 나간다.
우리는 중간에 환승을 했는데, 유럽은 환승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한다.
이때도 장애인들은 따로 검색과 질문을 받는다.
질문은 유럽에 온 이유와 목적지 경유루트 현재 소유하고 있는 현금 등 여러 가지이므로 간단한 영문회화는 외우고 가야한다. 물론 전혀 영어를 몰라도 눈치코치로 하시면 외국인들도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알아서 통과시켜준다.

첫 여행지로 도착한 파리공항은 생각외로 어마어마했고 장애인 편의시설은 세계적인 공항인 만큼 잘 되어있었다.
오던 도중 네덜란드에서 입국심사를 받아서 인지프랑스의 관문 샤롤드골공항에서는 별다른 제제나 검사를 받지 않고 바로 나올 수 있었다.

공항 프런트에서 이국적인 프랑스의 모습에 도취된 것도 잠시 프랑스의 첫 루트인 시내의 숙소까지 이동할 리무진버스에는 편의시설이 없었다. 할 수없이 휠체어는 접어서 버스짐칸에 싣고 지팡이를 가지고 조심스레 버스에 탑승해서 지하철로 환승하기 위해 몽빠르나스 역으로 향하였다. 파리의 도로상황은 우리나라의 퇴근 무렵과 비슷했다. 파리의 저녁모습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샹송이 차창 밖의 모습과 그냥 잘 어울리는 그런 도시였다.(참고로 우리나라와 유럽의 시차는 8시간이구요 여름의 경우 섬머타임제 실시로 7시간의 시차가 적용된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기위해 몽빠르나스역으로 들어설 무렵, 드디어 첫 난관에 봉착하였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곳에 편의시설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도 경사로도 그 흔한 리프트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조금이나마 보행이 가능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한 장애인들은 지하철은 이용하지 못하는 대중교통수단이었다.(파리여행은 반드시 저상버스를 이용한 루트로 계획하도록 하자. 시내버스는 전부 저상버스다.)
여차여차 해서 내려간 지하철 역사
국내의 지하철역 보다 역 구내가 훨씬 작았고 특이한건 역에 화장실이 없다는 점이었다.
역내 또한 매우 불결하여 외국방문객에게는 결코 좋은 인상으로 남지 않았다.
잠시 후 역내로 들어온 지하철은 가관이었다. 승강장과 지하철의 높이가 약 15cm 정도 차이가 나서 혼자서 휠체어로 승차가 불가능했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지하철 문 역시 자동이 아니라 역에 도착하면 탑승객이 스스로 열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도착해서 알아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 기차가 그냥 출발해 버린다. 주의하길...

이리저리 헤메고 도착한 숙소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은 되어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휠체어는 1층 로비에 맡겨놓고 객실로 기듯이 들어가 무사히 첫날을 보냈다.
(아!! 이곳이 장애인복지선진국 파리란 말인가!!)

Le Matin De Paris(파리의 아침)

파리의 첫 아침은 피곤함 반 낯설음 반으로 시작했다. 파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옆 건물과의 틈새가 없다. 건물을 지을 때 바로 옆 건물과의 틈새를 마감해 버린다. 그런 덕분인지 주거지가 굉장히 답답했다. 일요일이라서인지 성당으로 가는 파리인들의 발걸음으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해준 커피와 간단한 빵 그리고 베이컨 등으로 한끼 식사로는 결코 부족함이 없었지만 커피만큼은 쓰고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충 뱃속을 속여놓고 부지런히 어제 고생한 기억을 더듬어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박물관으로 향했다.
유럽의 9월은 우리나라의 10월정도의 날씨여서 약간 한기가 느껴졌다.
루브르로 향하는 길에 파리시청과 상공회의소 그리고 이름모를 큰 성당에도 잠깐 들러 그네들의 생활을 엿보았다.
예배를 드리는 성당은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잘 꾸미지도 엄숙하지도 않았다. 단지 경건함은 사람들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루브르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은 없었지만 평탄하지 못한 길 덕분에 휠체어를 굴리는 두 손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루브르 박물관 이곳 역시 건물이 거대해서 박물관인 걸 감으로 알고 들어간 것이지 어디에 이정표나 박물관 입구에 커다란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루브르 마당에서 한참을 헤메고 나서야 광장의 유리피라미드가 입구란 걸 알았다.
직접 들어가 본 루브르박물관은 그 규모에서나 수집품의 종류에서나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sorite(출구)

루브르의 입구, 유리로 된 삼각피라미드의 거대함속에는 각국여행객을 위한 안내 팜플렛이 비치되어 있다. 물론 한국여행객을 위한 한국어판도 잘 번역되어 있다. 루브르박물관은 기본적 동선이 장애인들이 잘 관람할 수 있게 되어있어 휠체어를 타고 온 세계 곳곳에서 여행을 온 많은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루브르박물관은 광장에 있는 피라미드 출입구를 중심으로 리슐리외관, 쉴리관, 드농관등 세가지 테마로 각각 조각품과 그림 그리고 각국의 수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하여 하루일정으로 잡아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박물관내에서 회화작품이 전시된 곳에서는 그림의 보호를 위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모나리자를 관람할 때는 안전요원의 삼엄한 경계아래 관람을 하게 되는데 이때 아이들과 장애인은 특별히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편하게 그림을 관람할 특권이 주어진다.
루브르를 돌아보다 결국 지치고 지쳐 출입구를 찾아 나오려 하는데 프랑스어가 익숙하지 않아 이리저리 헤매이다 결국 프랑스어로 출구란 말이 “SORITE"란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시설이 전층 운행이 아니라 어떤 것은 1, 2층 또 어떤 것은 2, 3층 이렇게 미로처럼 얽키고 설키어 출구를 찾는 데만도 30분 이상 헤매야 했다. 그 덕분에 sorite라는 불어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French Kiss & kebab (프랑스 연인들과 음식)

간신히 빠져나온 루브르를 서둘러 뒤로 하고 도보로 이동 가능한 세느강의 퐁네프다리를 향해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루브르는 세느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고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퐁네프 다리도 휠체어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다.
세느강의 풍경은 우리나라 고수부지의 풍경과도 흡사했고 인라인으로 무장한 늘씬한 미녀들로 세느강변은 북적였다.
그 므흣함을 뒤로한 채 퐁네프의 다리로 가 15 년 전 영화로만 동경하던 퐁네프의 연인들의 아련함을 흉내내려 휠체어를 타고 근사하게 폼 잡고 사진도 찍고 다리 난간에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세느강의 강물과 유람선을 바라보며 마음껏 눈의 유희를 즐겼다.

시간이 점심을 훌쩍 지나간 만큼 사전에 알아 두었던 파리먹자골목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곳 역시 퐁네프다리에서 불과 10여분거리에 있고 다음 목적지인 노틀담 사원에서도 가까웠기에 이곳을 탐방하며 먹거리를 탐닉하기로 했다.
먹자골목이란 명성만큼 세계 곳곳의 먹거리로 거리는 넘쳐났다.
인도, 일본, 태국, 중국과 이탈리아의 피자, 그리고 정통 프랑스 요리 등등..
이곳에서도 호객행위는 존재했고 넉살좋게 생긴 차이니스레스토랑 주인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어떻게 한국 사람인 걸 알았는지 “짬뽕!, 짬뽕!!”을 연신 외쳐대며 우리를 불러댔다.
하지만 중국음식의 느끼함에서는 도저히 우리나라의 그것을 기대할 수 없었던 우리는 터키에서 유래되었다는 케밥 전문점 앞에서 케밥 1개(주문시 바게뜨빵과 그냥 밀가루전병을 선택할 수 있다. 잘 구운 바비큐 돼지고기와 후렌치후라이 그리고 야채조금과 소스를 버무린 것으로 양은 엄청 푸짐함. 가격은 4,000원선)를 주문하고 근처 마켓에서 음료와 약간의 과일을 사가지고 세느강변으로 향했다.
노틀담성당 옆 세느강변의 근사한 어느 벤치에 앉아 근사하게 식사를 하였고 그 누구도 휠체어를 타고 온 동양손님이 야외식사를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역시 유럽은 프리~~해서 좋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소화를 시키려 강변을 둘러보니 강변에는 낮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연인들이 진을 치고 앉아 진한 프렌치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 한데로 서로 간에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듯 했다.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일상의 한 풍경일 뿐이었다.
단지 동양적인 시선을 가진 우리 눈에만 이렇게 낮설은 것이었다. 이게 편견이겠지? 하며 다음 여행지로 발걸음을 돌린다.

Tour Bus(투어버스)

북적이는 프랑스의 일상에 뒤섞여 찾아가는 곳은 노틀담 성당이다.
역시 세느강변에 위치한 이곳도 접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입구에서 장애인을 배려한 듯 안내원이 장애인전용통로를 통해 성당 안으로 안내를 해 주어 쉽사리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사원 역시 문화재로 보호되면서도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미사를 드리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진기 플래시를 터뜨리느라 정신이 없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생활속의 선진문화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유럽문화 - 공유, 공생..그리고 암묵적인 합의로 표현하면 좋을까?

간단한 성당구경을 마치고 파리시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투어버스(모 고추장광고에서 차승원이 고추장을 찾는 장면을 떠올려보자.)에 올라탔다. 하지만 유독 투어버스는 장애인 편의 시설이 되어있지 않았다. 비용도 한사람에 30,000원 가까이 하는 비싼 이동수단이었다. 하지만 파리를 한눈에 보기에는 이것처럼 좋은 것도 없었다.
우리가 계획했던 곳들은 모조리 돌아다녀주었고 다음 기착지인 에펠탑과 사이요 궁으로 가는 우리의 눈요깃거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Eiffel Tower(거대한 탑 에펠)

바로 밑에서 바라본 에펠탑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규모도 그렇고 에펠탑 주변을 둘러싼 공원 또한 굉장했다. 이곳저곳 구경을 하며 소문으로만 듣던 에펠탑의 야경을 보기 위해 시간을 세고 있었다.
세계 여러 인종이 다 모였고 간혹 우리나라 배낭여행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한국관광객을 여행 중에 만나게 되면 분명 서로가 한국인인걸 아는데도 인사 한마디 나누지 않고 모른 체 한다는 것!!
한국이 그렇게도 자랑스럽지 못한것일까?

에펠탑은 수명이 훨씬 지나 장수하는 탑으로 알려져 있다. 가까이서 본 에펠은 앞으로도 100년이 지나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4개의 다리는 각각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관광객들을 부산히도 탑전망대로 나르고 있었고 그 밑에서도 운치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우리는 이곳 에펠탑에서 어렵사리 만난 한국대학생 배낭객들과 다음여행을 위한 정보를 나누던 중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바로 유레일패스의 개시와 야간열차의 예약문제다.

Eurail Night train(유레일 패스와 야간열차)

유레일패스 - 약정한 기간(5일~3개월)동안 유럽 17개국의 국영열차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외국인에게만 발행되는 티켓
야간열차 - 유럽여행에 있어 나라간의 이동에 필수적인 이동수단. 컴퍼넌트(일반좌석), 쿠셋(간이침대), 슬리핑카(침대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배낭여행의 경우 저렴한 쿠셋이 많이 이용된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유레일패스는 사용 전 반드시 유럽의 기차역에서 사용개시(open)에 대한 확인 도장을 받도록 되어있다.(기차 탑승 시 패스에 개시확인도장이 없다면 무임승차로 간주)
하지만 이 부분이 한국에서 듣고 간 룰과 실제 현지에서 적용되는 룰이 달랐다.
나라간 이동을 위한 야간열차는 쿠셋석의 확보를 위해 예매가 필수인데(유레일패스 이외에 예매요금 따로 적용/1인 30,000원) 예매를 위해서는 반드시 유레일패스의 사용개시 확인도장이 필요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정보는 사용 전 아무 때나 개시일자의 확인도장발급이 가능하다고 알고 갔으나 현지에서는 사용개시확인도장은 반드시 사용할 날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파리 동역과 몽빠르나스 역을 몇 차례 마음조리며 왕복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짧은 영어통역은 서로가 가능하지만 자국어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영어를 알아도 프랑스어를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간단한 회화 책 하나정도는 준비해 가도록.)

다행히 패스개시 당일 예약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별다른 문제점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지만 현지정보에 대한 미숙함이 드러나 여행의 기분을 망치지 않도록 좀더 꼼꼼한 여행준비가 아쉬운 시점이었다.

파리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패스개시와 예매를 위해 시간을 낭비한 날이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서둘러 예매를 마치고 파리의 번화가인 개선문과 샹제리제 거리를 휠체어로 누비고 다녔다.
개선문에서 내려오며 본 샹제리제 거리는 아름답기도 하고 파리시내에서도 휠체어가 다니기 무척 편리하게 인도가 넓고 잘 다듬어져 있다.
더군다나 개선문에서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이라 정말 편하게 쇼핑을 하였고 그만큼 즐거웠던 곳이 파리의 중심 개선문과 샹제리제 거리다.

파리의 좌충우돌 여행을 접고 이제 다음 나라로 이동하기 위해 동역으로 향했다. 어느덧 도시도 어스름에 잠겨 파리의 야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밤 기차는 어떨까?
간단한 샌드위치로 식사를 하고 열차를 기다리며 생각해 본 것이다. 우리가 타고 갈 열차는 밤 10시에 파리를 떠나 다음날 아침 7시에 스위스 취리히 역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다.

한적한 파리동역에서 이곳저곳 휠체어로 누비고 다니니 어느덧 열차시간이 다 되었다.

열차가 도착하고 실제 올라탄 야간열차의 쿠셋칸은 휠체어의 이동이 불가능해 보였다. 약간의 보행이 가능하다면 쿠셋을 권장하나 전혀 보행이 불가능하다면 침대칸을 권한다.
(장애인의 열차 탑승은 우리나라 KTX와 마찬가지로 이동식 리프트가 사용된다.) 유럽열차의 가장 특이한 점은 이층열차가 있고 열차 대부분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열차마다 커다란 자전거 보관칸이 있다. 휠체어는 이곳에 보관하면 안전하다.

쿠셋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비좁았다.
누워서는 그럭저럭 버틸만 하지만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온통 난리가 아니다.
하지만 고생도 추억이라 치며 스위스로 향했다.

Swiss Zurich (스위스 취리히)
밤새 기차는 달려 아침이 되니 동화의 나라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해 있었다.
스위스의 관문 취리히 역은 굉장히 넓었고 역 자체의 편의시설은 훌륭했다. (유럽여행 중 스위스가 장애인에게 가장 환상적인 편의시설을 제공했다.)
취리히는 다음 목적지인 인터라겐으로 가기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곳이기에 허용된 시간동안 취리히 역의 주변만 잠시 관광을 했다.
취리히역 앞에는 스위스 국립박물관과 리마트강이 둘러싸고 있어 그 어느 곳의 기차역보다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낯선 이방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다름 아닌 트램(전차)이다.
외국의 풍경 중 궁금한 몇 가지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트램이다. 일반도로를 차와 공유하는 기차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새벽녘에 본 취리히 역에서 본 트램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유럽인들의 분주한 새벽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Interlaken(스위스의 동화같은 마을)

취리히 역에서는 2층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Interlaken)으로 이동했는데 이 기차는 우리의 지하철처럼 승강장이 낮아서 휠체어의 진입이 가능했다. 그리고 시설 또한 수준급이라서 유럽여행 중 가장 편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나 싶다.

취리히에서 인터라켄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되지만 차창 밖의 동화마을과 인터라켄을 감싼 툰 호수(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 물색이 참 오묘하다.)의 풍경을 감상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인터라켄은 인구가 고작 5,000명 남짓한 알프스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마을은 마차와 자동차가 공유하고 있었고 각종 레저스포츠(패러글라이딩, 스키)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 작은 마을에는 특성상 두개의 역이 있다.
인터라켄 동역(브리엔쯔 호수)과 서역(툰 호수)이 바로 그것이다.
서역은 외부의 출입구가 되고 동역은 알프스로 오르는 산악열차의 관문이 된다.
두개의 역 모두 장애인 편의시설은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며 도보로 숙소를 찾아갔다.
마을이 그리 넓지 않아서 숙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넓은 초원과 웅장한 산세 그리고 한적한 도로는 이국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가는 길에는 호두나무가 가로수처럼 즐비하게 서있었다.
때가 마침 호두수확기여서 호두나무 밑을 지나면 으레 잘 익은 호두 몇 개는 쉽게 주을수 있었다.

유럽은 사람만 큰 게 아니었다.
호두도 사람만큼이나 크고 단단했다.
견물생심이라 햇나?
외국에서 우연찮게 주은 호두 몇 알은 스위스를 여행하는 우리에게 더욱더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서역에서 도보로 약 20분을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사실 휠체어를 타고 가다보면 인도의 약간의 경사에도 힘이 부친다.
인터라겐의 경우 장애인들이 여행을 즐기려면 활동형 휠체어보다는 동행인이 이동을 도와줄 수 있는 케어형 휠체어를 권할만하다.

Alpina hotel(알피나 호텔)

알피나호텔!!
우리가 묵을 숙소의 이름이다.
경치만큼이나 외경도 스위스다웠고 금발의 주인분도 알프스의 하이디는 아니지만 하이디 옆집아줌마를 연상케 했다. (여기서 잠깐 유럽은 1층이 우리나라의 2층에 해당합니다. 꼭 참고하시고 가세요.)

숙소는 예쁜 분홍색 침대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진 것이 주인장의 인테리어 솜씨를 알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보니 벌써 저녁 무렵이 다가왔다.

스위스는 스위스종(소의 목에 매다는 종)과 황소캐릭터가 기념품의 주를 이룬다.
물론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 물가가 비싸고 유로화 보다는 스위스 프랑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건구입이나 현지 상거래시 가격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참고로 한식 1인분 25,000원선/현지한국식당 찌개와 밥 이외의 반찬은 추가요금 부담)

스위스 종 몇 개와 엽서 그리고 몇 가지의 현지 기념품을 구입하다보니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간다.
한국이나 스위스나 해지면 잠들기 바쁘다.

Balmers (발머하우스)

휠체어를 타고 이곳저곳 인터라켄의 야경을 찍다가 문뜩 멋진 차를 발견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데 어디선가 연세 지긋하신 차 주인이 나타난다. 간단하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 분이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건넨다.
한국인임을 밝히자 금방 화색이 돈다.
자칭 본인이 한국 매니아라며 서울올림픽을 시점으로 화려한 한국 방문담을 넉살좋게 늘어놓으며 우리를 반긴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뭔가 아쉬웠는지 잠깐 기다리라며 바로 옆 자신의 상점에서 발머캐릭터로고가 새겨진 하얀색 보온물통 2개과 스위스 1프랑 동전을 마술하듯 제스추어를 해보이며 나와 아내에게 선물이라며 건넨다.
뒷말에 중국산이 아니라 “made in swiss” 이란 것을 부득불 강조하신다.(중국의 저가정책은 세계시장에서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국가경제정책의 잘못된 사례로 남을 듯 하다.)
이분이 현지에서 제법 유명한 한국매니아 에릭발머씨다.(http://www.balmers.com/)
발머 아저씨는 현지에서 발머하우스라는 유스호스텔, 호프, 레스토랑, 기념품상점, 인터넷카페, 각종 레스츠 시설등을 운영하며 지역지주로써 활동한단다.

선물을 주며 자기소개와 레스토랑을 구경시켜주며 스위스의 넉넉한 인심을 나누어 주었다.
첫날 스위스 퐁듀 치즈를 맛보려 했지만 이름값보다 맛이 별로라는 입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에 동역 앞에 위치한 할인 마트에 들어가 이것저것 눈요기로 허전함을 대신했다.
참 신기한 게 유럽인들의 애정표현인데 마트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그 기세가 대단하다. 키스와 가벼운 터치 그리고 느끼한 눈빛으로 애정표현을 주고받는 모습이 그네들에겐 일상이었다.
이날은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야경을 밤참삼아 맥주와 과일 몇 가지로 새로운 내일을 준비했다.(사실 이날은 브리엔쯔와 툰호수 둘 중 하나의 유람선 관광을 준비했었으나 3시간이란 시간을 보내기에는 매리트가 적은 것 같아 포기했다. 유람선은 동역과 서역에 각각 위치해 있으며 유레일패스가 있을 경우 탑승료는 무료/시간이 넉넉하다면 추천여행코스)

Top of Europe(유럽의 최고봉)

스위스에서의 둘째 날
아침부터 서둘러 숙소 앞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동역으로 향했다.
버스에서는 다음정거장을 우리나라와 같이 안내해 주어 편했고 저상버스역시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좋아서 편한 여행을 도와주었다.

동역의 아침은 무척 분주했다.
융프라우로 오르는 등반열차는 오전 6시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며 막차는 왕복운행 마지막 기차는 오후 4시다.

등반열차는 인터라켄 동역을 시작으로 몇 몇 산악 역을 거쳐 융푸라우에 오르게 되는데 이 기차는 톱니바퀴기차라고도 불린다. 경사진 면을 오르기 위해 기차레일 중간에 톱니바퀴레일이 있어 이 레일에 기차톱니바퀴가 물려 산을 오르는 역할을 한다.
9월의 알프스는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한해를 겪어온 자태를 내뿜는 자연의 파노라마는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융푸라우 정상에 오르는 내내 푸르른 목초지, 그림 같은 집, 하늘과 땅 그 모든 것이 여행객의 뇌리를 가만두질 않는다.
거대한 자연 앞에 경건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기차는 작은 몇 개의 산악 역을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이 와중에 작은 산악 역에서 잠깐 내려 하이킹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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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만에 도착한 융푸라우, 도착하기 30분전 구간부터는 지하터널을 통과하기 때문에 바깥풍경을 구경할 수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처음 한 일이 바로 “컵라면”을 주문해서 먹는 것이었다. 한국라면업체와 한국관광업체의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유독 한국인에게는 융푸라우 정상에서 이처럼 특별한 식사를 대접받는다. 매울辛(신) 하면 떠오르는 모 컵라면이 무료로 제공된다.
펼쳐진 설원의 풍경을 보며 수다스럽게 먹는 컵라면 맛은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

융푸라우는 구름을 내려다보는 전망대와 얼음조각전시실, 썰매장, 기념품 샵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고 장애인 편의시설 또한 잘 갖추어져 있다.

해발 3475m 높이에 위치한 탓인지 먼지하나 없는 하늘과 새하얀 눈밭위에서 찍은 사진은 유럽여행중 가장 예쁜 사진 중에 하나로 남는다.
(맑은 하늘과 태양은 조명이 되어주고, 새하얀 눈밭은 그 맑은 조명을 아래에서 한번 더 비춰주니 자연의 스튜디오가 되어버린다.)
자연스레 외국인과도 친구가 되어 사진을 남기고 집에 놓고 간 세 아이가 아쉬워 알프스 머리맡에 우리가족을 대신한 다섯 눈사람도 만들어 본다.

한참을 놀다보니 벌써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시간을 잠시 내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체통에 “융푸라우”소인이 찍힌 엽서 몇 장을 한국의 소중한 이웃들에게 띄웠다.

융푸라우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반대코스를 택했다. 좀더 많은 풍경을 담아 두리 라는 마음에서였다.
산은 오를 때와 내려갈 때 뭐가 다른지는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리라.

신선한 알프스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인터라켄 동역 앞에 있는 마트에 들러 이런 저런 사람 사는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raining in swiss(스위스에도 비는 내리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기에 호텔레스토랑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자 요리사아저씨가 몇 일 동안의 만남이 서운한 듯 신선한 주스와 따끈한 커피를 정성스럽게 갖다 주신다.
세상어디서나 사람 살아가는 정은 한결같은 모양이다.

어제 저녁부터 날씨가 좋지 않더니 기어코 일을 치른다.
우산도 없는데 하염없이 비가 내려댄다.
어쩌란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시내버스가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버스정거장으로 내달렸다.
아내는 등짐을 지고 나 역시 휠체어와 한 몸으로 정거장 앞에서 비를 맞고 있으니 장관이 따로 없다.
후다닥 도착한 저상버스를 타고 동역으로 다시 기차를 타고 취리히 역으로 되돌아왔다.
두 번째 보는 역이라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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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fest(맥주와 비에 흠뻑 취한 뮌휀)

이제 독일로 가는 열차는 일반열차다.
뮌휀행 열차시간이 네 시간이나 남았다.
여기 저기 취리히 역을 둘러보다 신기한 식당을 발견했다. 각종 음식뿐만 아니라 매장에서 생선도 판다. 그것도 갖가지 생선을....
우리식으로 하자면 분식+패스트푸드+생선가게 식이다.
하지만 매장 디스플레이는 깔끔한 게 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다.
이것저것 먹거리를 둘러보다 감자튀김과 새우튀김등 튀김요리 몇 가지로 점심식탁을 꾸며보았다.
요리를 진열해 놓은 게 예뻐 몇 컷 담아놓다 매장 직원과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디스플레이도 노하우라 촬영이 안 된단다.
법이 다르니 법을 따를 수 밖에....
이것이 법에 지배력을 따지는 속지주의인가 보다.

취리히에서 뮌휀으로는 낮에 움직이기로 했다.
낮 열차면 5시간거리를 야간열차를 이용할 경우 배 이상 걸린다. 유럽의 기찻길도 구경도 할 겸 스위스에서 독일로의 국경이동을 낮 시간으로 정했다. 독일로 가는 열차는 입구칸에 휠체어 지정석이 정해져 있다. 유럽은 기차로 휠체어 여행하기가 무척 재미난 곳이다.

낮 기차를 타고 독일로 가는 길은 일반적인 농촌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우리나라처럼 논농사가 없는 유럽에서의 들판풍경은 풍요로움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듯 널따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단지 비가 얄궃게 내리는 탓에 촉촉한 유럽들판을 질리도록 눈으로 머금을 수 있었다.

간혹 가다 검표한다고 귀찮게 구는 차장만 아니라면 철렁거리는 기찻칸에서 외국인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잔잔한 가을을 머금은 창밖의 풍경감상도 꽤나 좋은 경험이다.

5시간의 기차여행은 그리 무료하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뮌휀의 도착하자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아직 비가 그치지 않는다.
스위스에서 내리던 비가 이곳까지 뭐 좋다고 따라왔는지....

매년 이맘때면(9월말에서 10월초)이 독일의 최대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기간이다.
뮌휀의 중앙역도 술에 취해 술렁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고성방가가 역사 안을 가득 메우며 아릿다운 독일여인들이 허리는 졸라매고 가슴과 치맛단은 넉넉하게 만든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여행객들을 호프로 모셔가기 바쁘다.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때 이러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 어느 곳이나 축제는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고 즐겁게 만들고 또 하나가 되게 만드나 보다.

아내와 나는 뮌휀역 코인락커에 짐을 맡겨 놓고 그 유명한 독일제 쌍둥이칼을 사기 위해 부랴부랴 비오는 시내거리로 향하였다.
엘리베이터부터 시작해서 조금 으쓱한 건물구석이라면 어김없이 소변냄새가 진동한다.
역시 술이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확한 본능(?)대로 움직이게 하는 묘한 약이다.
시간이 밤 7시인데도 벌써 상점은 문을 닫았다.
유럽인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서양인들은 자영업자 역시 정확한 출퇴근시간을 지킨다.
나름대로 삶의 여유를 즐기는 관습법인 셈이다.

시내 곳곳 호프집마다 거대한 인파들의 취기 즐김으로 난리가 아니다.
취기와 빗기가 뒤엉킨 뮌휀의 밤거리에 잠깐 사진요기를 하고 지체없이 빗방울을 피해 뮌휀역으로 돌아왔다.
이곳의 상징은 사자인가보다.
오며가는 상점 앞마다 커다란 사자캐릭터가 진을 치고 있다.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놓은 것이 보기좋다.

뮌휀역에는 각종 먹거리가 무척 풍부하다.
특히 훈제치킨요리는 일품이다.
약 2유로정도 하는 푸짐한 훈제닭다리에 호프한잔 시켜놓고 독일인들과 잠시 여흥을 나누어 본다.

꾸역꾸역 시간의 계단을 오르니 이제 독일을 뒤로 하고 체코 프라하로 떠날 기차가 도착해 있다.

Another traveler(또 다른 추억객)

얼른 패스체킹을 하고 기차에 오르니 우리칸과 옆칸은 모두 동양인이다.
특히 옆칸은 중국인들이 단체로 탄 것 같고 우리칸은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유럽인들로 뒤섞여 있다.
다행히 우리방 쿠셋을 예약한 6명 모두 한국인이다.
(또 다른 추억객들)
한 팀은 벌써 한달 넘게 유럽을 여행해온 연인팀, 그리고 또 한팀은 누나와 동생이 여행을 왔단다.
한국이었으면 휠체어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 자체에 무진 호기심을 가졌을 법도 한데 역시 물이 달라지니 사람도 달라지나 보다. 눈치껏 그려러니 하고 간단히 인사를 하고 서로의 여행담을 조금 나누다 잠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몇 개 안 거치던 간이역을 뮌휀에서 체코로 넘어가는 야간열차는 거의 10분마다 한번씩 역에 정차하는 것 같다.
덕분에 선잠을 잔 듯 자는 내내 힘들었다.
조금씩 밝아지는 창밖의 빛 놀림에 설잠을 깨어보니 체코의 프라하다.
여느 유럽과 달이 도시풍경이 우울해 보인다.
풍경이 거세었던 체코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 하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한국어로 된 민박안내문을 들고 한국배낭여행객을 모객하는 현지체코인들이었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많아지면서 여기에 따른 자연스런 풍경일테다.

Prague for lover(프라하의 연인)

체코는 편의시설이 잘되어있지 않다.
지상교통수단인 트램은 물론이고 지하철 역시 2~3개 역사마다 하나씩의 장애인편의시설(엘리베이터, 경사로)이 되어있었고 아직 공사중인 편의시설도 많았다.

우리가 묶을 숙소는 프라하 관광지에서 가까웠지만 위치가 고지대에 있어 이곳을 찾느라 여간 애먹은 것이 아니다.
숙소역시 편의시설이 없다.
안내직원이 난감했는지 다른 숙소를 알아봐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조금 양보하기로 했다.
얼른 짐을 풀고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다.
프라하는 도로가 작은 돌을 박아 놓아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은 정말 힘들다. 케어형이라면 모를까 활동용 휠체어는 투어하기에 부적합하다.

바츨라프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유로화를 체코화인 코룬으로 바꾸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체코화를 취급하지 않는다. 유로화로 환전한 뒤 뮌휀이나 체코에서 환전을 해야 한다.)

Miluju te (밀루유떼)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국립박물관과 각종 문화유산들이 즐비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동유럽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광장에서 구시가의 얀후스동상(프라하의 연인에서 소원의 벽이 있는 곳)으로 가는 곳곳에는 기념품 상점과 각종공연 및 노상카페가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한참을 거닐다 쉬어간 곳이 프라하의 연인에서 소원의 벽으로 나왔던 얀후스동상앞이다.
이곳에는 몇 개의 벤치가 놓여있어 여행객의 노곤함을 맞이해 준다.

한참을 쉬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여행 오신듯한 한무리의 할머니들 중 한분이 우리부부에게 사진을 찍어 주시겠단다.
할머니의 호의가 고마워 얼른 카메라를 건넸다.
할머니께서는 지팡이를 짚으시고 참 힘겨운 발걸음으로 우리를 배경으로 몇 발자욱을 띄우더니 한손으론 지팡이, 떨리는 또 한손으로는 카메라를 부여잡고(?) 연신 "smile~, smile~"를 외친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할머니의 정성에 웃음띤 얼굴로 포즈를 취해준다.
그 순간 참 힘차게도 흔들리는 카메라속에 우리의 모습을 용케도 담아내는 할머니, 나중에 찾아본 사진은 역시나 심하게 흔들린 사진이었지만 그 정성과 추억은 일품사진보다 훨씬 더하였다.

구시가광장에는 마차투어와 클래식자동차 투어 등 잊혀진 교통수단을 가지고 여행객들의 시티투어롤 돕는 현지인들이 많다.
물론 유료이지만 저렴하기에 한번 쯤 이용해볼만 하다.

구시가 광장에는 천문시계와 화약탑 등 옛 유럽건물들이 자취를 남기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로 유명한 까를교와 블타바 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 프라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도 휠체어가 툴툴대며 힘들게 다녀본다.
까를교 위에 저녁노을과 함께 넘쳐나는 사람들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보이는 프라하성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이 시간 즈음에는 이렇게 붐빈단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까를교 위에는 거리의 화가들과 악사들이 여흥을 돋우어 주고 블타바 강의 노을은 세상 다른 곳의 노을과 같이 사람들 마음속으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 흡사 우리나라의 80년대 도시 분위기와 비슷한 익숙한 내음에 잠시 추억에 사로잡혀본다.

Epilogue in Praha(프라하의 마지막날)

프라하 여행의 마지막 날,
프라하의 관광지는 하루코스면 다 볼 수 있을정도로 한곳에 모여있다. 산책하며 관광하기에 더 없이 좋은곳이 프라하가 아닐까 한다.
대신 각종 편의시설 부족으로 장애인들에게는 조금 힘겨운 관광지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휠체어 장애인들을 자연스럽게 조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로 장애인들의 관광문화 수준은 발달되어 있었다.

오늘의 투어루트는 어제 저녁에 잠깐 스쳤던 블타바 강과 프라하 성으로 향하는 까를교에서 부터다. 까를교를 휠체어를 타고 넘다 보니 현지인들이 자꾸 사진을 찍어준단다.
유럽에 도착하고 느낀 점 한 가지, 이곳에서는 장애라는 게 부끄럽거나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진정 장애에서 자유로와진건 아닐텐데...
여하튼 모든게 자유롭고 모든게 평화롭다.
까를교를 넘어 프라하 성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다.
경사가 심해 오르기 힘들지만 아내가 워낙 튼튼한지라 아내의 팔뚝심만 믿고 올라가 본다.
가는 중간 중간 외국인들이 낑낑대는 아내를 보고 서로 밀어주려고 안달이다.
이런 배려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프라하 성에 오르니 프라하의 온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는 오래된 첨탑 이외에도 건물지붕이 빨간색이 많다. 정갈하고 통일된 느낌의 프라하 시가지가 참 예쁘기도 하다.

프라하성은 현재에도 체코대통령이 사용하는 곳이다.
하루에 두 번 근위병들의 수문장 교대식도 진행되지만 의외로 성내풍경은 자유롭기만 하다.
이곳저곳 휠체어가 돌아보기는 안성맞춤이다.
성내의 장애인 화장실도 잘 꾸며져 있었다.
오래된 고성을 쭉 둘러보며 이제 유럽배낭여행의 마무리를 준비한다.

Two korea(두개의 한국)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와서 근처 동양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주인은 중국인이다.
흔히 말하는 화상(화교, 중국상인의 줄임말)들이다.
우리를 보더니 대뜸 “where are you from?"하며 호감을 나타낸다.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밝히자 대뜸 “north?, south?를 묻는다.
그랬었다. 우리나라는 하나가 아닌 두개의 분단국가라는 것을 이곳에 오니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법으로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늦은 밤 숙소로 들어가며 안내에 내일아침 콜택시를 예약해 놓는다.
이곳에서 프라하공항까지 꽤 멀고,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콜택시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빠진 것 없이 꼼꼼히 집을 싼다.
10일간의 추억도 짐 한 켠에 같이 넣어서 잘 꾸린다.

To korea/From korea (한국으로)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창밖을 보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주스와 바케트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어느덧 유럽인이 된 듯 이런 아침식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밖으로 나오니 가죽재킷을 입은 금발머리 아가씨가 우릴 반긴다.
아뿔사~!! 콜택시 기사가 금발머리아가씨에 차는 벤츠다.
큰 짐과 휠체어를 사뿐히도 들어 차에 싣는다.
차에 타자마자 내달리는 차!!
우와!! 우리나라 총알택시와 견주어도 하나 손색이 없이 무섭게 달린다.
공항으로 가는 길목 길목마다 대한민국 대기업의 로고가 담긴 깃발이 한참이나 길게 늘어서 나부낀다.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프라하공항 .비가 많이 내린다. 우리는 간단한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올랐고, 비행기는 내리는 빗속을 무던히도 잘 빠져 하늘로 날아올라간다.
돌아가며 보는 하늘은 역시 그대로다.
구름 위 하늘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신천지다.
잔잔한 구름 위를 날며 어릴 적 기억에 상상하던 구름 위 천국을 생각해 본다.
이렇게 기나긴 흐뭇함을 되새기며 중간경유지인 네덜란드를 거쳐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Leisure rights(장애인의 당당한 권리 - 여가권)

10일 동안의 유럽배낭여행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절망이 아니고 삶의 일부분이란 것을 알게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고 다시금 삶을 살아갈 10년의 에너지를 충만케 해준 “가득채움”의 시간이었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다.
그러므로 장애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려되어지고 인정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장애가 신체적 쾌락에 저해가 될 수는 있어도 정신적 교감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장애인이 행복할 권리, 장애인으로써 행복할 권리는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찾고 두드리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권리는 자연스레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 것이다.
21세기 장애인의 또 다른 권리 여가권이 생활속 깊숙이 자리잡길 바라며 여행담의 나눔터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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