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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가는 길
이름: 노시경 ㅣ 작성일 : 2006-09-30 오후 2:57:28

나의 여행 시작은 서유럽이었지만 내 마음은 유럽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유럽의 슬라브족을 만나러 갔고, 거기에서 그들의 삶을 느껴보고 싶었다. 긴 겨울 동안 백야의 눈 속에 묻혀 살아가고 발레를 사랑하며 ‘죄와 벌’을 남긴 사람들. 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슬라브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핀란드 헬싱키(Helsinki)를 떠난 기차는 노을 지는 철로를 보며 러시아로 들어섰다.


쾌청하고 평화로운 미도(美都), 상트 페테르스부르크(Sankt Peterburg)


퇴락한 마을과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시골기차역이 수차례 지나 간 후, 허름한 복장의 러시아 역무원이 나타났다. 차창 밖 사람들도 검은 머리, 검은 눈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기차는 가끔씩 그 길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기나긴 강과 여름의 대지를 스쳐가며 덜컹거린다. 눈 덮인 광야만을 연상케 하는 러시아이지만 여름날의 러시아에는 따스한 햇살이 상큼한 대지에 내리쪼이고 있다.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의 핀란드 역.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역사 안에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조금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차에, 나에게 말을 거는 홍콩 아가씨들을 만났다. 나는 불과 몇 분 전에 만난 여행친구들을 따라 중국의 유학생들이 묵는다는 교외의 한 아파트에 배낭을 풀었다. 을씨년스럽고 잡초가 우거진 곳에 자리 잡은 중국 친구들의 숙소에서 따뜻한 물을 마시고, 그들이 권해준 신 맛 나는 요구르트를 삼켰다.


페테르스부르크에서의 첫 만남은 지하철이었다. 지하 플랫폼에 가기 위해서 100m를 훨씬 넘는 지하를 마치 나락으로 떨어지듯이 내려간다. 네프스키 대로는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이 붐비고, 곳곳에 인형과 기념품을 파는 벼룩시장이 펼쳐져 있다. `피의 일요일`날, 피로 물들여졌던 널찍한 궁전광장에는 에르미타주박물관이 우뚝 서있고, 구육군성 입구의 기마상과 멀리 보이는 구해군성의 황금빛 돔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어찌 이곳이 구소련의 음흉한 이미지로 대변될 수 있는 곳이더란 말인가.


네바강 건너 페테르스부르크 요새 앞. 네바 강은 평화롭고 쾌청하다. 동토의 도시 한복판에서 시원하고 건강미 넘치는 젊은이들이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고 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책과 교육으로만 접했던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강변의 모래사장 위에 앉아 한참 동안 꼬마들이 장난하는 것을 보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일년 중 날씨가 가장 좋다는 오늘, 요새의 금빛 성당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한 친구가 적극 추천해 주었던 여름궁전을 보려고 네바 강의 다리를 단숨에 건넜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모조리 눈에 담아 가려는 욕심 때문에 나의 다리는 점점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여름 궁전은 궁전의 이름만큼 이 여름에 아름다움을 꽃 피우고 있었다. 갑자기 여름궁전과 거리에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 쏟아지는 공원의 거리와 대피한 사람들, 빗줄기 퍼붓는 하늘, 거리에서 내달리는 차들이 모두 아득한 정겨움이 되었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페테르스부르크의 거리를 거닐었다.


숙소에서는 중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 만두를 만들며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만두와 밥을 먹으라며 계속 떠주는 그들의 인정에 가슴이 뻐근했다. 오랜만에 쌀밥을 먹어 입속에서도 활기가 돈다. 내 방에서 조금 쉬려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페테르스부르크의 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너무나 고요했다. 잠을 자다가 얼핏 보니 누가 내 침대 앞에 쪽지를 붙여놓고 나간다. 홍콩 친구 `채`의 메모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와의 만남은 즐거운 것이었고, 홍콩이나 서울에서 다시보자. 아이스크림은 너무 많이 먹지 마!` 친구들 우정에 가슴이 포근하다.


러시아의 어머니, 모스크바(Moskva)


아침 출근길에 묻혀 역으로 가니 모스크바 행 기차표는 여름 시즌이라서 전부 팔렸단다. 나는 한 남자 승무원에게 미국 달러를 준다고 설득하여 무조건 기차에 올라탔다. 급하게 기차에 올라타느라고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하여 배고픔과의 싸움이 컸다. 창밖으로는 질릴 정도의 거대한 광야와 숲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목가적인 강변마을들이 스쳐지나간다. 옆에 앉은 한 러시아 친구가 하는 말, “러시아 상공을 몇 시간 날아도 나는 집 한 채도 못 보았다. 지금 우리는 가난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힘이다.” 백야에 가까운 기간이라 저녁 어스름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내 머리 속에서는 붉은 광장이 곧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설렘이 계속 교차되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여름은 습도가 낮고 상쾌하며 녹음이 짙었다. 레닌묘소 앞의 유명한 위병교대식이 막 붉은 광장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일단의 건장한 러시아 병사들이 크레물린의 스파스카야 탑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그들이 위병교대장소에 도착하여 인형같이 빙글빙글 돌면서 자리교환을 하자, 스파스카야 탑의 시계는 그 동작을 보고 정확히 시간을 알린다. 여행의 정점에 오면 가슴은 흥분으로 식을 줄을 모른다.


트로이츠카야 탑 앞으로 난 완만한 경사의 길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그 속이 정말 궁금했던 크레물린에 드디어 입성하였다. 러시아어로 성벽을 의미한다는 크레물린은 짜르(러시아 황제)의 성으로 점점 확대되었고, 소련 당시에는 전 사회주의 국가들을 주물렀던 심장부였다. 또한 크레물린은 짜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 내부에 많은 러시아 사원 과 보물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러시아 문화 최고의 정수가 몰려 있는 곳이다. 러시아연방 내각관의 크고 둥근 지붕 위에서 언제나 펄럭였다는 낫과 망치의 붉은 깃발은 사라지고, 이제는 온화해 보이는 러시아 깃발이 푸른 태양 아래 빛나고 있었다.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며 레닌동상 앞에서 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음흉함의 대명사인 이곳 크레물린이 화창한 날씨에 바람 한점 없는 평화스러운 곳이어서 나를 혼란시키고 있다`고 적었다.


저녁의 아르바트 거리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한국 유학생 3명을 만났다. 나는 여행일정을 잠시 접고 그들을 따라갔다. 우리는 아름다운 쌀밥과 함께 보드카를 사다 마셨다. 러시아 경제 이야기와 함께 연극과 미술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예술가들의 삶의 영역은 나로 하여금 경외감이 일게 만들었다. 새벽 3시가 되어도 달아오른 분위기가 식을 줄을 모르고, 그 중 한명이 보드카를 더 사러 나간다기에 잠깐 눈을 붙였다. 나는 여독으로 인한 피곤으로 잠이 몰려와 깊은 꿈속에 빠졌고, 그들의 이야기 소리가 귓가에 간간히 들려왔다. 진한 보드카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나먼 러시아에서 하룻밤 스친 인연이지만 그 멋스러운 한국인들과 헤어지기가 서러웠다. 비가 조금씩 추적추적 내렸다.


슬라브 문화의 태생지, 우크라이나 키에프(Kiev)


키에프 가는 기차의 침대칸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나와 같이 침대칸에 탄 할아버지는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쉬지 않고 나에게 자꾸 이야기를 건다. 서로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할아버지에게서 내가 알아낸 사실은 그가 3개 국어를 하고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다는 사실이다. 객실의 천장에서 에어컨이 너무 춥게 나와 그 할아버지와 에어컨 구멍을 막느라 한 동안 부산을 떨었다. 머리맡에 배낭을 베고 이불을 덮고 창밖을 보았다.


키예프를 가로지르는 도니예플 강은 새파란 하늘을 닮아 있었다. 강변은 한여름의 햇살아래 무심하기만 하고, 도니예플 강에서 놀고 있는 꼬마들의 모습이 포근하다. 전몰자 위령비를 향하여 걸어가다가, 네덜란드 아저씨인 요한과 길벗이 되었다. 여름의 태양이 우리를 내리쬐지만 얼굴에 부딪치는 강바람 때문에 더위는 없다.


우크라이나어로 동굴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진 페체르스카야 대수도원은 11세기 키예프공국 시기에 사원을 세운 것이 시초인데, 이 정교의 요람에는 그 후 긴 세월 동안 드넓은 언덕 위에 교회들이 하나둘씩 늘어 갔다고 한다. 이콘 그림이 천정과 벽면을 도배하다시피 가득한 교회의 모습은 약간 동양적인 슬라브족의 미감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공군기에 폭격된 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우스펜스키사원이 대수도원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허물어져 버린 그 모습이 왠지 더욱 장엄한 미감으로 다가온다.


이곳의 일대장관은 지하묘지의 경건함이다. 지하묘지는 반바지 차림으로 입장이 불가한 곳이지만, 수도승이 한눈을 판 사이에 슬쩍 내려갔다. 볼펜보다 더 가느다란 초에 불을 붙이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그것을 끼웠다. 한사람이 지나다니는 좁은 통로와 계단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아뿔싸! 수많은 수도승의 미라들이 바로 옆에 누워 있었다. 어둠 속의 그들은 죽은 채로 옷을 입고 있지만 까맣게 부식된 손이 언뜻언뜻 보인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그 관에 엄숙한 키스를 하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다. 생과 사의 간격이 사라져 버린 곳. 죽음이라는 것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심장을 적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고, 휴일의 햇살을 즐기는 우크라이나 인들의 인파 속에 섞였다.


리보프(Livov)의 깊은 밤



리보프를 통해서 루마니아 쪽으로 남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다시 히치하이킹의 매력에 이 몸을 맡겼다. 고속도로 위의 육교를 건너서 배낭을 내려놓은 후, 차를 얻어 타려고 손을 들었다. 드디어 버스 한대가 멈춰서 태워주는데, 다행히 그 머나먼 리보프까지의 500km 여정을 그대로 간다고 하니, 이렇게 큰 행운이 없다. 이 버스에 올라탈 수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기사 아저씨의 선택에 달려 있는데, 약간은 순하고 답답해 보이는 기사는 예쁜 아가씨가 손을 들면 어김없이 차를 세웠다.


구소련의 식량을 담당했던 곡창지대답게 창밖엔 무수한 농장과 초원지대가 지나간다. 그 끝없는 광활함과 평화스러움에 부러움이 일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자 그 풍경이 질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다지도 조그만 구릉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산, 산이 보고 싶었다. 시골 마을을 굽이쳐 흘러가는 파란 시냇물만이 시야에 다양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해는 지기 시작하고 있었고, 가로등 불 희미한 돌길을 달려 어두운 리보프 거리에 입성하였다. 리보프는 의외로 큰 도시였다. 옛적에는 폴란드 땅이었으나, 지금은 우크라이나 제 2 도시가 되어 있다. 리보프 역에서 루마니아 국경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택시기사들을 뿌리치고, 민박호객을 하는 청년을 만났다. 우산을 들고 그와 나란히 그의 집이 있는 오래 된 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방안에는 풍만한 여자의 나체사진이 곳곳에 걸려있고, 흥분된 성기를 정교하게 그린 남자나체의 그림도 침대 머리맡을 차지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그의 표정을 보니, 이러한 그림을 붙이는 것은 그의 의식수준이 아니라 우리와 그들의 문화차이일 것이다.


빵과 우유를 먹으니 피곤이 몰려오고 졸음이 슬슬 쏟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모든 돈과 여권 등을 챙기지 않고 잠이 들어버린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얼핏 잠이 깨서 보니 그는 옆방에 가지 않고, 팬티만 입은 채로 징그럽게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순간 이 녀석이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 생기면 그때 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우크라이나의 국경 도시로 가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나를 위해서 터미널까지 같이 가 준 그 순한 친구가 버스표를 끊어주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가슴이 훈훈하다. 실업자인 그가 오늘 오후에 무엇을 하며 살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의 인생에도 희망의 빛이 비추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주었다.


체르노우체(Cernovcy) 단상


우크라이나의 국경도시, 체르노우체 행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찼고, 계속 사람들이 올라타는 바람에 서 있는 사람들은 버스의 복도에서 꾸역꾸역 밀리고 있다. 아침부터 이 버스를 기다린 시간이 너무 많아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지금 주위를 보니 일찍 터미널에 도착하여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버스는 도착하는 도시의 터미널마다 멈추어 서서, 많은 사람들을 내리게 하고, 또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우르르 올라탄다. 오래 의자에 앉아서 좀이 쑤신 나의 불편은 오히려 행복한 고민이다. 버스 안은 발 디딜 틈도 없고, 서 있는 자리도 부족한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발을 제대로 못 뻗겠다. 아 ! 시원하게 발 한번 뻗어보고 소변도 시원하게 보고, 그리고 기지개 한번 시원하게 켜 봤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다. 끔찍하게 버스만 타는 하루의 고생스런 여정. 수많은 우크라이나인 속에 내가 가만히 앉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한 한편의 꿈만 같다.


이제 가끔씩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길 밖을 차단하고 길만 보이게 하는 터널 같은 포플러 가로수를 만나면 마음이 아늑해 진다. 커다란 강들이 도시를 감싸고 흘러가며, 퇴락한 도시의 건축물들이 운치 있다.


허름한 옷차림의 시골 아저씨들은 이 혼잡한 버스 속에서도 난상토론 중이고 아주머니들은 쉴 틈 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과일을 나누어 먹고 있다. 나는 이 버스의 코스를 종주하고 있으니, 벌써 내 옆 좌석의 시골 파트너들은 계속 바뀌어 갔다. 우크라이나의 도시 간 버스여행은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거리개념으로 계산하면 큰 오산이다. 각 도시의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길이 2차선 밖에 되지 않아서 시속이 50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체르노우체가 100km 남았다는 길가의 표지판을 보고 기뻐했지만, 그 이후로도 체르노우체까지는 한참을 가야 했다.


벌써 해는 지고 숲과 길가엔 어둠이 내려 괜히 마음이 스산하다. 아무런 여행 정보가 없는 어둠 속 미지의 세계로 가는 불안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체르노우체에 도착하면 루마니아에 가는 차편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만약에 버스가 끊겼다면 어디에서 잠을 청할 것인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불안감이 어두운 바깥 경치와 함께 그 심도를 더해간다. 미지의 도시에 발을 내 딛는 불안감은 역시 여행의 백미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마음을 싸잡았다.


체르노우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한 루마니아 청년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오후 10시 지나서 루마니아의 국경도시인 수치아바(Suceava)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막연한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빛 한 줄기 없는 그 터미널에서 아마도 한국인으로는 처음 그 곳에서 숨 쉬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사기꾼들이 가끔 눈에 띄는 버스터미널에서 옆자리에 앉은 루마니아 친구에게 말로 설명이 안될 만큼 소중한 인간적 신뢰를 느끼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답답한 콘크리트 건물들을 벗어난다는 희망, 입국심사가 까다로운 우크라이나-루마니아 국경을 통과한다는 긴장, 이제는 불쑥불쑥 솟아 있는 산들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졸음이 쏟아지는 밤이다. 버스에 자리 잡고 앉아 피곤한 눈을 붙였다. 정말로 피곤했던 하루가 스치고 지나가면서 졸음이 엄습한다. 드디어 이 버스는 어둠을 뚫고 슬라브족의 우크라이나를 떠나 로마인들의 땅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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