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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통한 극기, 키나발루 트레킹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07-16 오전 9:19:56

자연을 통한 극기, 키나발루 트레킹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다고 했던가. 거대한 산을 품고 정상으로 오르면서 희망을 갖는다. 어느새 진흙투성이가 된 발이 험난했던 지난 날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 정상을 정복하고 난 뒤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힘들어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끝에 희망이 있는 것을 믿기에. 가끔은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 나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좋은 계기가 된다. 그러고 보니 키나발루 산 트레킹이 꼭 그랬다.

글 한미영 기자│사진 문유선 기자

‘트레킹’이라는 단어에서는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길 따라 바람 따라 쉴새 없이 걸어야 할 것 같고, 그 과정에는 왠지 비도 쏟아질 것 같고 나무 뿌리 하나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비현실적인 상상력 덕에 기자에게 키나발루 산 트레킹이라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평평한 땅을 걷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그래, 한때는 젊은 혈기에 7천 계단의 태산도 걸어 올라갔었다. 하지만 키나발루 산은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동남아 최고봉, 허영호 대장이 에베레스트 등정 전에 고산증 적응을 위한 훈련 장소로 찾는다는 그곳에서 트레킹을 하라니. 기자의 상상은 점점 커져 보르네오 섬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에 들어가면 밀림에 갇혀 살아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의 예상과 같이 이 모든 것은 기우였다.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 많은 사람들이 1박 2일 동안 꾸역꾸역 정상을 향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연산 식물 도감, 키나발루 파크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달리면 키나발루 산을 중심으로 한 키나발루 국립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키나발루 산과 점점 가까워지자 굳이 심호흡을 하지 않아도 청량한 공기가 밀려들어와 몸과 마음이 더욱 맑아짐을 느낀다. 맑은 하늘 아래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은 엉뚱한 상상으로 우울해진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는 듯하다. 맑은 공기에 가득 담긴 숲의 푸른 향기가 머리 속을 채우고 있던 ‘트레킹=고생’이라는 공식을 서서히 지워내고 있었다.

키나발루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기암 절벽과 다양한 생태계가 살아 있는 자연 도감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자이언트 라플레시아, 식충 식물인 네펜데스와 같이 흔히 볼 수 없는 거대한 식물을 포함해 6천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자연을 품은 국립공원은 그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방대한 범위의 식물원이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1,200여 종의 난초를 보유하고 있는 키나발루 마운틴 가든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꽃 핀 난초 구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지만 이곳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난꽃을 감상할 수 있다. 산타클로스 얼굴을 닮은 난꽃, 벌레를 잡아 먹는 식물 등 숨겨두었던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발동 시킨다.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더욱 넓게 펼쳐진다. 우뚝 솟은 높은 산이지만 등반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등반에 자신 없는 사람도 도전해 볼만하다. 또 주변의 식생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어린 아이들은 물론 자연과는 친하지 않은 어른들에게도 좋은 학습장이 된다. 일반 등산객들이 당일 등산 코스로 이용하는 제7 쉼터까지는 힘찬 걸음을 내딛는 어린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산 속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여유로운 트레킹 코스로 추천할만하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팀폰 게이트부터 제1 쉼터까지는 나뭇가지에 이끼들과 난초들이 자생하는 다습한 열대 산림 지역이다. 올라갈수록 변하는 식생과 키가 작아지는 나무들을 볼 수 있어 자연과는 거리를 두고 살던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기자의 투덜거리던 마음 따위는 저 산 아래로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이끼가 있단 말인가. 새록새록 눈에 띄는 식물들과 나무들의 거대한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자연의 푸른 색을 닮아가는 것 같다.

아직도 자라고 있는 150만 살짜리 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키나발루 산은 동남아 최고봉이다. 우선 높이부터가 위압적이다. 한라산 1,950미터, 백두산 2,744미터에 비하면 해발고도 4,101미터라는 높이는 한라산과 백두산을 포개놓은 것과 맞먹는다. 150만년 전에 일어난 화산 작용과 구조 작용, 그리고 신생대 퇴적 작용과 빙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키나발루 산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해마다 0.5센티미터씩 그 높이가 높아진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아직도 키가 자라고 있는 150만 살짜리 키나발루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1박 2일의 일정이 필요하다. 산이 워낙 높다 보니 구름 위로 솟아 오른 산의 정상을 보기 위해서 일찌감치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전 10시 반 정도부터 등반을 시작하는데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에서 입산 신고를 하고 반드시 현지 등반 가이드를 배정받아야 한다. 가이드 배정에 인원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가이드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현지에서 만난 배낭 여행자들이 한 팀을 이루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가이드 배정이 끝나면 배낭을 정리해 필요 없는 짐은 보관해두고 공원 본부가 운영하는 차량을 이용해 해발 1,890미터 지점의 팀폰 게이트로 이동한다.

공원 입구부터 팀폰 게이트까지 트레킹 코스가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산행은 팀폰 게이트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곳에 조금 특이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사람의 이름과 시간 기록이다. 알고 보니 국제 키나발루 산악 마라톤의 기록을 적어 놓은 것이란다. 걸어 오르기도 힘든 산을 뛰어서 올라갔다 오다니. 그런데 더 놀랄만한 것은 총 21킬로미터의 거리를 오르내리는데 3시간도 안 걸린다니 정말 사람의 한계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팀폰 게이트는 육중한 철문으로 막혀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이 철문을 굳게 닫아 등산객들이 산에 오르는 것을 막는다. 정상까지 오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중간 지점에서 돌아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등산객의 경우는 제7 쉼터에서 산을 내려오고, 정상인 로우스 피크(Low’s Peak)까지 오르려는 이들은 제7 쉼터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라반라타 산장에서 1박을 한다. 보통은 오후에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2시경에 기상해서 정상으로 향한다. 라반라타에서 로우스 피크까지는 해발 900미터 거리지만 총 거리는 3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새벽 3시에 출발하면 일출을 볼 수 있다. 물론 산이 높기 때문에 기상 상황이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발 아래 구름이 드리운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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