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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빛날 여행의 기술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07-16 오전 9:33:01

프라하에서 빛날 여행의 기술

여행을 결심할 때, 데스티네이션을 정했을 때, 드디어 여행 가방을 꾸리는 그 순간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여행에의 막연한 기대 혹은 목적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여기, 천 년의 역사가 반짝이는 아름다운 프라하가 있다. 그리고, 여행할 장소에 대한 정보는 흔하지만 목적지에 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조언은 구하기 힘들다 꼬집는 알랭 드 보통 식의 ‘여행의 기술’을 프라하에 적용했다.

글, 사진 김선희 기자

프라하에서 찍어온 필름을 의기양양하게 내밀자 조모 사진기자가 대학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전공수업이 있던 어느 날, 교수님이 프라하에 다녀온 얘기를 해주더란다. 프라하 루지네 공항에 내려 도심으로 들어서려는데, 웬 남루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길가에 좌판을 펴놓고 앉아 있었다. 뭔가 싶어 다가가보니 다양한 앵글에 담긴 프라하의 모습들이었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더란다. 사진을 가르치는 자신 보다 오히려 실력이 빼어난 듯 해 살짝 소심해진 채로 프라하 시내로 들어가고 나서야 깨달았단다. 그의 사진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프라하는 누구의 렌즈를 통하더라도 아름다운 피사체가 된다는 것을.

여행을 분류하는 몇 가지 기준 감탄사가 연발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그리고 그 풍경이 생소한 경우에 사람들이 대는 가장 흔한 비유는 ‘그림 같다’ 혹은 ‘엽서 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류 일 것이다. 장소에 도취된 가장 흔한 경우이다. 여행을 결정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역시 목적지가 된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누구를 만나게 될지 역시 장소에 좌우되기 마련이니, 여행을 구성하는 그 외의 요소가 많음에도 ‘여행=새 장소를 찾아가는 일’ 정도의 공식이 일반화되었다.

철학과 예술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그만의 예리한 통찰력을 황금 비율로 버무린 글을 써내는 스위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그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을 구성하는 요소를 대략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출발에 앞서는 여행지와 여행에의 기대, 이국적이거나 호기심을 일으켜 여행을 결심하게 하는 동기, 시골과 도시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숭고한 풍경, 빛을 발하는 예술, 마지막으로 습관처럼 돌아오게 되는 일상으로의 귀환 등. 여행이 이렇게 거창하고 복잡한 과정의 뒤범벅인가 싶지만, 듣고 보면 여행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준비하고 떠나기까지의 과정, 목적지에서의 일정, 집에 닿기까지의 여정 모두가 여행을 이루는 순간들임을 우리도 모르는 건 아니다. 그저 의식하지 않고 있었을 뿐. 그리고 그 낱낱의 조건들 역시 동떨어지기보다는 많은 교집합으로 엮여 있다. 그렇다면, 체코의 천년 고도 프라하 역시 알랭 드 보통 식의 잣대로 나눌 수 있을까? 대답은 ‘물론 그렇고말고’다. 사실 프라하는 알랭 드 보통의 어떤 기준을 대입해도 너끈하게 만족시키기에 더 없이 적합한 곳이다.

프라하에 대입된 여행의 기술 음악에 조예가 깊은 당신, 늦게나마 드보르작과 모차르트의 숨결을 가까운 데서 느끼고 싶지 않았는지. 프라하 북부 블타바 강 인근 소도시에서 태어나 체코의 국민음악가로 불리는 그는 프라하에서 어떤 음악적 영감을 받고서 슬라브 무곡을 작곡했을까. 오스트리아 출신의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빈의 시민들은 그를 외면했지만 프라하 시민들은 오히려 열광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38번을 발표할 때는 프라하에서 초연했고, 이름까지 ‘프라하’라 붙였다. 한번쯤 옥토버 페스트에 참가해 뮌헨의 밤의 끝을 맥주와 함께 누리고 싶었던 당신. 기자는 체코 출장 중에 오리지널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을, 그것도 물보다 저렴한 가격에 원 없이 마시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프라하 공항 면세점에서 중간 사이즈의 6개들이 캔 맥주 세트까지 챙겨서. 나중에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체코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법학자이지만 소설가로 더 알려졌던 프란츠 카프카 역시 체코 출신이다. 그러고보니 블타바 강 남쪽에서 카를 교를 건너 북쪽으로 향하던 중, 강변에서 ‘카프카 뮤지엄 오픈’ 플래카드를 본 기억이 난다.

각기 다른 관심과 취향을 가진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아이콘을 제시했는데, 프라하라는 곳으로 떠나고픈 마음이 좀 생기셨는지. ‘아이콘이 극단적이야!’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불특정 다수에게 툭 던져놓아도 안전한 ‘사랑’과 대중매체의 힘을 빌어도 좋겠다. 이미 방영된 지 4년이나 지났지만, 전도연과 김주혁이 출연했던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은 블타바 강변을 중심으로 프라하의 아름다운 풍경을 브라운관에 고스란히 담아내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프라하의 로맨스를 꿈꾸게 했다. 구시가 광장에 선 두 주인공이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며 얀 후스 동상에 쪽지를 붙이던 로맨틱한 장면은 가히 상징적이었다. 그렇다고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내 사랑도 기원하겠다며 따라하지는 마시길. 실제로는 없는 풍습일뿐더러 문화재 훼손 명목으로 고발당할 지도 모른다. 차라리 카를 교로 다시 돌아가 성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을 찾으시라. 줄지어 선 사람들 때문에 유독 눈에 띄는 동상 아랫부분 동판의 그림을 손으로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전해내려 온다더니, 정말 그 부분만 반질반질 닳아 금빛으로 윤이 난다.

기자 역시 동판에 한 손을 얹은 채 소원을 빌었다. 나름 간절하고 절실한 무엇이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한 가지였는지 두 가지였는지조차 헷갈린다. 소원을 빌고 돌아서자마자 다리 저편으로 보이던 프라하 성과 그 일대의 풍경에 시선을 뺏기며 카를 교를 오가던 인파에 뒤섞여 정신없었던 때문일 것이다. 프라하를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 강을 연결하는 다리는 모두 13개 쯤 되는데, 그중 사람이 걸어서 지날 수 있는 다리는 카를 교(Karluv Most)가 유일하다. 천천히 다리 위를 걸으며 강 양 편을 조망할 수도, 다리 중간에 서서 넋 놓고 강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프라하에서 시간은 무의미하다. 기원전 4천 년도 전에 켈트 족이 살았다가 나중에는 보헤미안 왕국의 수도였고, 또 오늘까지 굳건하게 체코의 중심을 지켜오고 있는 프라하에는 유럽 어디를 가도 보이는 그 특유의 붉은 지붕에, 폭이 좁은 골목길에, 그리고 외진 길모퉁이에 조차 그 긴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부수고 새로 짓고’의 과정을 거치기보다 한참을 퇴적되기만 한 시간은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혼재되어 나타났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안목이나 식견이 부족한 기자에게는 그저 이 거리는 바로크 양식, 저 건물은 고딕 양식 하는 식으로 유독 드러나는 특징만 눈에 담을 뿐이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한 달을 꼬박 머물며 둘러보아도 시간이 부족한 곳이 바로 프라하다.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었다는 프라하 성 뒤쪽의 황금 소로, 아르누보 건축물인 시민회관의 스메타나 홀, ‘돈 지오바니’를 비롯해 모차르트의 많은 작품이 공연되고 체코 국가가 처음으로 연주된 에스타테스 극장, 공산체제에 저항하는 체코의 민주 인사들이 주동했었던 ‘체코의 봄’이 시작된 바츨라프 광장, 그 바츨라프 광장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를 바라보는 국립박물관, 매 정시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나와 원을 그리며 도는 구시가 광장의 천문 시계탑 등 그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중간 지점이자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는 프라하의 야경 감상 포인트인 카를 교는 프라하를 찾는 여행객들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굳이 이 지면에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체코와 관련되는 온갖 브로슈어와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지 몇 곳을 훑는 사이에, 여행의 기술 중 풍경과 예술에 대한 부분이 뭉뚱그려 지나갔다. 남은 것은 ‘귀환’에 대한 이야기이니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통할 테지만, 프라하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 침착하게 사물과 상황을 주시하고, 차분하게 그만의 분석을 해내는 알랭 드 보통은 또 한 번, 기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제법 그럴싸한 여행의 이유를 제시했다. 여행을 앞두고 설레거나 들뜨는 마음은 목적지보다는 심리에 더 좌우되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일 때 여행은 더 즐거워진다고 덧붙였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보다, 티켓을 예매하고 스케줄을 짜고 공항에 가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의 시간이 더 두근거렸던 걸 생각하면 그의 말이 영 틀리지는 않다 싶다. 모두가 꿈꾸는 카리브 해의 섬나라 쿠바를 여행했을 때, 혼자 배회하던 기자에게 가짜 시가를 팔기 위해 접근했던 쿠반 총각에게 감정이 상해 일정 내내 쿠바의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던 데 반해 한층 더 덥고 습한 데다 시끄럽기까지 한 방콕에서 더 즐거웠던 기억 역시 사실이다.

당신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막연하게라도 프라하를 드림 데스티네이션으로 오매불망하는 독자가 있다면, 당신이 프라하를 여행하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특유의 쌉싸래한 맛이 일품인 필스너 맥주나 오래 농축된 예술의 혼 또는 눈 돌릴 곳 없이 펼쳐지는 프라하의 그림같은 뷰? 아니면 당신 역시 프라하에서 생겨날지 모르는 우연한 로맨스를 꿈꾸는지. 뭐 어떤 이유라도 좋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프라하는 그 어떤 조건이라도 충분히 만족시키고 남을 테니.

하지만, 언제인지 모를 가깝고도 먼 훗날. 당신이 떠날 다음 여행지에는 또 그만의 잣대가 기다리고 있다. 다른 장소에 대한 다른 기대와 호기심 따위. 그렇다고 아주 예리하게 분석한 알랭 드 보통 씨의 여행에 대한 철학에 100퍼센트 대입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질이 아닌, 오히려 마음에 더 좌우되는 ‘여행’이란 것은 1부터 10까지 세세하게 쪼갤 만큼 명료하게 나눠지는 게 아니니까. 자질구레한 요소들은 생략해도 좋다. “나 떠나고 싶어.” 마음이면 된다. 그리고 그가 말한, 가장 중요한 여행을 하는 심리, ‘무엇이든 받아들이리’하는 수용성만 잊지 않는다면 분석 없이, 준비 없이, 기대 없이 떠나도 충분하다. 세상은 넓고, 그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낯선 세상은 당신을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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