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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캐니언을 품다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10-22 오후 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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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캐니언을 품다

라스베이거스 여행 4일째. 휘황찬란한 도시의 컬러에 익숙해지고 있을 즈음, 어떤 생각 하나가 번쩍,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곳이 어디인가, 광활한 사막과 캐니언(Canyon) 한가운데 위치한 도시가 아니던가?’ 생각을 했으면 실천해야 하는 법. 그래서 곧바로 내달렸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준 그 엄청난 선물을 만끽하기 위해.

글, 사진 김영리 기자

몇 년 전, 가난한 배낭여행객 신분으로 라스베이거스에 들린 적이 있었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9시간. 그동안 그랜드 캐니언을 비롯한 사막을 둘러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결국 도시만 여행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의 느낌이란 마치 마늘과 파절이만 넣은 상추쌈을 먹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이번에도 똑같은 아쉬움을 경험할 수는 없었다.

사막과 캐니언을 경험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적당한 이동수단이다. 현지인들은 한여름에도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하곤 한다지만 구름 한 점 찾아보기 힘든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과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 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건강을 해치기 십상이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종류의 캐니언 투어(국제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차를 렌트해서 스스로 오프로드를 달려보는 것도 좋겠다)가 준비되어 있는데 기자가 선택한 것은 소규모 여행객들을 위한 ‘핑크 지프 투어(Pin k Jeep Tour)’다. 사막에 익숙한 가이드가 운전하는 핫핑크색 지프차가 호텔 앞까지 마중을 오는데, 일행들끼리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어 좋다. 드디어 출발. 도시를 등지고 달린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광활한 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사막의 열기를 느끼다 라스베이거스의 캐니언, 하면 누구나 그 웅장함에 압도되고 만다는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을 떠올린다. 그러나 기자가 선택한 곳은 그보다 조금 덜 알려진 레드록 캐니언(Red Rock Canyon)이다. 최소 왕복 열네 시간은 걸려야 다녀올 수 있는 그랜드 캐니언에 비해 이동 거리가 짧다던가, 작렬하는 태양 빛을 온 몸으로 견뎌내며 걷는 시간이 길지 않으리라는 이유 때문은 절대로-레드록 캐니언에서도 동남아인의 피부 색깔 부럽지 않을 정도로 탈 만큼 걸었기에 심하게 부정해도 찔리지 않는다-아니었다. 그저 ‘얼마나 붉길래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했고, 수천, 수만 년 전 이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개척했던 아메리칸 인디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마음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네바다 주에 넓게 형성되어 있는 사막은 바위산과 흙, 선인장 같은 사막 식물이 살고 있는 곳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40여 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레드록 캐니언도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다른 캐니언과는 분명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온통 붉은 기운을 품은 바위와 흙이 가득하다는 것. 가이드에게 그 원인을 물어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어떤 성분과 도저히 이해 안 되는 화학 작용에 대해 들었지만, 사실 이것이 중요하진 않다.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 일, 이곳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낸 붉은 바위와 산들은 웅장하다는 몇 음절의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캐니언 속으로 들어가서는 또 어떤지! 수십만 년 전, 아니 어쩌면 수백만 년 전 일어난 지각변동으로 새겨졌을 바위의 무늬들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수분이라고는 전혀 없을 법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식물들을 보며 감탄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지프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차 천정에 몇 번이고 머리를 찧을 각오를 해야 하는 오프로드에 들어선 것이다. 좀 더 깊은 곳의 캐니언을 경험해 보기 위해 들어선 이 도로는 수십, 수백 년 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감자를 나르기 위해 마차로 덜컹거리며 달렸던 ‘포테이토 로드(Potato Road)’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가이드를 따라 올라가니 작은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사막에서 물을 만날 줄이야. 기대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레드록 캐니언에서는 고대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위에 새겨진 손바닥 자국이나 별, 점, 원 등의 록 아트(Rock Art). 그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이런 그림들을 새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오래 전 이 척박한 땅을 개척하면서 살아갔을 사람들의 흔적을 마주하는 것만으도 충분한 추억이다. 사막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자라고 있는, 인디언들의 옷이 되었던 나무나 음식이 되었던 풀을 통해 그들의 삶을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사막에 자리 잡은 대자연의 선물들 핑크 지프 투어를 타고 경험할 수 있는 곳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또 하나의 명소는 데스 밸리(Death Valley)다. ‘죽음의 골짜기’라는 무서운 이름이 붙은 이유는 온도 때문이다. 한여름 연평균 기온은 45°C에 육박하고 어떤 날은 55~56°C까지 올라가(최고 기록은 58.3°C라니 무시무시하다)는데,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80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주의 금광지역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길을 찾지 못해 물 부족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로 4시간 가량, 사막 도로를 질주하면 데스 밸리 국립공원의 시작점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한정된 몇 마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 가봐야 할 곳은 서반구에서 가장 낮은 땅, ‘배드 워터 바신(Bad Water Basin)’이다. 이곳은 바다보다 85.5미터가 낮은 땅으로, 아주 오래 전에는 바다였지만 지각변동 때문에 호수가 된 뒤, 다시 물이 증발해 땅이 된 곳이다. 이 넓은 평야 지역은 물과 함께 증발하지 못한 소금 결정들이 하얗게 뒤덮고 있는데, 뜨거운 사막을 뒤덮은 하얀 눈 같기도 하고 하얀 융단 같기도 한 광경은 정말이지 절경이다. 울퉁불퉁한 지표면을 소금 결정들이 끝없이 뒤덮고 있는 악마의 골프코스-악마들이 내려와 골프를 칠 것 같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재치 가득한 작명센스에 박수를-도 놓쳐서는 안 될 곳 중 하나다. 14평방마일의 넓은 모래동산, 샌드 듄(Sand Dune)과 전망대 위에서 데스 밸리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 돌들이 움직이면서 궤적을 그려 놓은(돌이 움직이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바람 때문일까?) 바싹 마른 호수 레이스트랙 플라야(Race Track Playa)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해가 무척 짧다.

가장 유명한 곳을 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그랜드 캐니언을 선택하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한 장소는 그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는 이동 시간만 최소 10시간이 걸리지만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이 대협곡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파웰 호수에서 미드 호수까지의 90킬로미터 구간. 이곳의 사우스 림(South Rim, 협곡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전망 포인트들이 설치되어 있다. 수억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콜로라도 강에 의해 깎이고 또 깎여 탄생한, 장엄하고 거대하고 환상적인 자연 앞에 서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다. 그저 이 거짓말 같은 풍경에 감탄하고 또 감탄할 뿐.

사막을 경험하고 캐니언을 만나면서, 아마 다른 여행객들도 그랬을 테지만, 감탄사 외에 할 수 있는 말이란 많지 않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저, 잠시라도 인간이란 하찮은 존재의 오만함에 머리를 숙이는 것에 만족했다. 이 위대한 자연이 인간의 힘에 의해 파괴되지 않길 빌면서. 내 후손도, 그 다음 후손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하면서.

발문

사막을 여행하는 것은 인내를 필요로 했다. 더위와 모래 먼지, 뜨거운 태양과의 싸움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막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해 주었다

사막 곳곳에 어찌나 많은 절경이 펼쳐지는지. 비슷한 느낌을 가진 곳이라고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이곳에는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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