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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향기는 영원할지니, 난징 투러우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10-22 오후 5:12:11

Travel Nanjing

Timeless Time, Timeless Home

과거의 향기는 영원할지니, 난징 투러우

하나 뿐인 입구로 들어서니 오래된 시간의 향기가 가만히 에워쌌다. 마치 자신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들을 탐색하듯, 소리 없이 아주 조용히. 무어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곰팡이나 먼지가 내뿜는 해묵은 냄새는 아니었노라 말하고 싶다. 어쩌면,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그 곳의 분위기에 취한 착각이 만들어낸 향기는 아니었을까.

글, 사진 김영리 기자

중국 푸지엔성의 시아먼에서 버스를 타고 ‘투러우왕국(The Kingdom of Tolou)’이라고 불리는 난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들은, 가장 오래된 투러우(한국명 토루)의 나이는 700여 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굳건히 이 땅을 지켜온 투러우와 그 안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굽이굽이 산을 휘감는 좁은 도로를 타고 세 시간 남짓을 달려서야 깊은 산속 곳곳에 자리 잡은 투러우들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객가족의 튼튼한 아파트, 투러우 세계적으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투러우는 명나라 때 전란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족-지금은 이들을 객가족이라고 부른다-들이 푸지엔성 일대에 자리 잡으면서 짓기 시작한 단체 주거지다. 보통 수백 명에서 많게는 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따지면 ‘아파트’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투러우는 3층~5층 높이의 원형이나 장방형 벽을 만든 후 하나의 입구만 남겨 놓았는데, 마치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성과 같은 모양이다. 투러우의 주인인 객가족들이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니, 외침으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독특한 건축물을 탄생시켰으리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객가족들은 보통 원형이나 장방형으로 투러우를 지었지만 의자형이나 먹자(목수가 쓰는 연장으로 ㄱ자나 T자 등의 모양)형, 팔괘형, T형, U형 등 다른 형태로 지은 것도 있다.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가장 큰 투러우는 직경이 46미터에 달하고 벽을 따라 250여 개에 이르는 방이 늘어서 있을 만큼 크다. 크기만 할 뿐인가. 그 튼튼함은 또 어떠한지. 수백 년 전에 지어진 높은 건물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이 땅을 덮친 여러 번의 강진도 너끈히 이겨냈을 만큼 강인하다. 220여 년 전, 늪지 위에 소나무 뗏목을 넓게 펴고 지은 허구이러우라는 투러우가 아직도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며 서 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모양 때문에 에피소드도 생겼다. 땅을 관찰하던 미국의 인공위성이 ‘중국에 수백여 개의 비밀 미사일 기지가 있다’고 오해한 것. 이 재밌는 에피소드는 투러우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푸지엔성 지역에는 이런 크고 작은 투러우들이 약 800여 개 남아있는데, 그 중 46개는 지난해 8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그 독창성과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투러우 왕국의 대표 얼굴, 티안루오캥 어떤 지역을 소개하는 책자나 브로슈어의 첫 장을 장식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지역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진을 싣는 것이 정석일테다. 그런 의미에서 투러우 왕국의 대표 얼굴은 바로 티안루오캥이다. 각종 책자나 브로슈어는 물론, 이 지역의 대표 로고로도 만들어진 티안루오캥은 4개의 원형 투러우와 1개의 장방형 투러우로 이루어진, 말하자면 투러우 군락이다. 워낙 높은데다가 크기까지 한 건물 다섯 개가 모여 있어 한 번에 보기 위해서는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 물론, 티안루오캥을 아주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티안루오캥은 밥상 위에 탕 1개와 요리 4개를 올리는 중국인들의 전통을 따라 지었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말로 밥상 위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반찬 그릇들을 보는 것 같다.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티안루오캥은 전라갱, 즉 우렁이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티안루오캥에는 황 씨 가족이 모여 살고 있는데, 대대로 닭과 오리를 많이 키웠다. 그들은 닭과 오리들의 먹이로 우렁이를 먹였는데, 우렁이를 잔뜩 먹은 닭과 오리들이 쌍알을 낳아 가계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그래서 우렁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마을 이름을 티안루오캥이라고 지었다-쌍알을 낳아준 닭과 오리에게는 고맙지 않았을까? 4개의 건물 중 하나는 완벽한 원이 아닌 타원형이다-고 한다. 현재 120여 명의 황 씨 가족들이 아직 이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다.

최고령 위창러우 VS 장수마을 타샤춘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투러우 중 가장 오래된 투러우는 위창러우다.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700살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창러우는 5개 성씨가 모여 만든 투러우인데, 독특한 것은 층마다 기둥이 지그재그로 엇갈려 있다는 사실. 각각 다른 층에 살게 될 5개 성씨가 저마다 특색을 나타내고 싶어 기둥을 엇갈려 만들었다고. 기둥들 중에서 기울기가 가장 큰 것은 15도에 이른다. 외관만 보면 마치 금방이라도 와장창 소리를 내며 무너져 앉을 것 같지만 위창러우는 지진도 이겨내며 7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그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위창러우의 또 다른 특징은 다른 투러우들이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했던 것과 다르게 집집마다 우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투러우의 1층은 사람이 사는 방이 아니라 부엌으로 만들었는데 위창러우에는 부엌마다 우물이 있다.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맑고 깨끗한 물이 샘솟고 있다.

위창러우처럼 큰 규모의 투러우는 없지만 작은 투러우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타샤춘은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현재 타샤춘에는 모두 천 여 명이 살고 있는데, 이 중 100명 이상이 고령인구다. 현재 최고령자는 105년을 살아온 쩡숭 할머니. 80세가 넘은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 할머니 외에도 타샤춘에는 100살이 넘은 노인이 3명이나 더 있다. 지금까지 100살 이상 살았던 사람들도 많다.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는 작은 사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마당 앞에 서 있는 30여 개의 탑들 중 10개 이상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100년이 넘게 살았던 사람들을 기리는 탑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타샤춘(탑하촌)이다. 마을 사람들도 왜 이 마을에 유독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 이유는 아닐까, 라고 추측할 뿐. 기자는 마을 곳곳에서 너무나도 순수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부모님이, 그 부모님의 부모님이 살아왔을 그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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