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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타의 숨은 보석을 찾아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11-30 오후 3:42:20

계절이 바뀌면서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서랍들을 뒤집어 대청소를 했다. 한 서랍 틈 사이에서 무언가 반짝했다. 오래전 선물 받은 귀걸이 한 짝. 오랫동안 액세서리함에 잠들어 있던 한 짝의 귀걸이가 다시 생명을 얻은 순간이었다. 다케타와 고코노에에 대한 느낌이 그랬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귀퉁이에서 아주 반짝거리는 보석을 발견했을 때의 그 설레고 행복한 느낌. 글, 사진 김영리 기자

일본의 오이타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대게 벳부나 유후인으로 향한다. 같은 현 안에 있지만 다케타나 고코노에를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아니, 다케타나 고코노에라는 이름 자체를 들어본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여행 중독증에 걸린 기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단언하건데,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가지 않는 이유는 여행지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단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다.

무척 기대하고 본 영화가 그저 그렇다면 실망도 그만큼 크다. 그런데, 그저 시간에 맞춰 선택한, 들어본 적도 없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 외로 괜찮다면 그 만족감은 몇 배로 뛰는 법이다. 다케타와 고코노에, 오이타 현의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이 시골 마을에서 기자는 그런 만족감을 얻었다. 왜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저 그것이 의아했다.

꿈같은 온천의 마을, 고코노에

벳부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고코노에 마을은 아소산과 구주산에 둘러싸여 있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마을이다. 아소산이 활화산인 덕분에 마을 주변에 천연 온천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데, 예로부터 일본인들은 이 마을을 ‘꿈의 온천마을’이라고 불러왔다고. 꿈의 온천마을에서 온천을 경험하지 않고 갈 수는 없는 법. 고코노에의 여러 온천 지역 중 스지유 온천지대의 시라타키 료칸으로 향했다. 가을의 초입인데다 저녁-게다가 18호 태풍 멜로르가 엄청난 비와 강풍을 데리고 일본 열도를 덮쳤다-이 되어 몸은 이미 얼어 있는 상태. 이럴 때는 뜨거운 온천물로 직행해야 한다. 고코노에 지역의 온천이 다른 곳에 비해 가지는 장점은 료칸이나 온천수의 질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조용하고 편안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도 없는 노천온천탕에 들어가 몸을 녹이니 여행의 피로라는 단어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태풍의 사나운 바람이 머리를 흩날리지만 추위는 이미 방해꾼이 아니다. 스지유 온천은 오랜 역사로도 유명하지만 고쿠라쿠온닭이라 불리는, 온천 열로만 익힌 닭요리와 질 좋은 소고기로도 유명하다. 얼마간 노천온천을 즐긴 후 기름기가 완전히 빠진 닭요리와 소고기 구이, 따뜻한 사케 한 잔을 곁들이면 나른하고 따뜻한 기분으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고코노에에는 ‘고코노에 9탕’이라고 불리는 온천 지대들이 있다. 바위를 도려낸 듯한 천연동굴 온천 가베유와 반딧불이의 명소로 유명한 호센지 온천지대, 강 바닥에서 온천수가 솟아나오는 가와조코 온천, 폭포에서 미끄럼틀을 탈 수 있는 류몬 폭포의 류몬 온천지대, 산골 특유의 그윽한 정취가 감도는 우케노구치 온천지대 등 종류도 다양해서 9곳 모두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온천 유랑만 해도 며칠은 금방 지나갈 정도다.

유메오츠리바시, 하늘을 걷다

이른 아침, 고코노에의 또 다른 명물이자 ‘천공의 산책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유메오츠리바시로 향했다. 해발 고도 777미터 높이의 산 중턱에 지어진 다리 앞에 도착하자 쉽게 발을 떼기 어렵다. 산 중턱에 세워져 있어 777미터 높이는 아니지만 지표 위 173미터 높이의 허공에 걸쳐져 있으니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20억 엔이라는 돈을 들여 만들었다는 이 다리는 고코노에 주민들의 유메, 즉 꿈을 실은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006년 완공된 이후 연간 200만여 명, 지금까지 수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늘어났다 하니 과연 꿈의 다리라 할만하다. 다리를 건너가기 위해 첫 발을 내딛었다. 식은땀 한 방울이 등줄기를 따라 흘렀다. 두 손 꼭 잡고 두려울 것 없다는 듯이 앞서나가는 젊은 연인 한 쌍을 부러워하며 난간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앞만 보며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으로 절경이 펼쳐진다. 저만치서 두 개의 폭포는 힘차게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있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 손자 폭포라는 이름을 가진 신도 폭포 중 두 개의 물줄기다. 지금은 두 개의 물줄기만 흐르고 있지만 강우량이 많아지면 온 가족이 총출동한다고. 다리의 한 쪽으로는 폭포가 흐르는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면 다른 한쪽으로는 산 정상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어디쯤에선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어디쯤에는 구름도 걸려 있다. 11월이 되면 수많은 나무들이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일본 전역의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는 이유다.

개발보다 보존을 택한 이들

고코노에에서 다시 차를 타고 30여 분. 다케타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케타 용수군. 다른 지역에서 물을 사러 올만큼 깨끗한 물이 솟아나는 곳이다. 활화산인 아소산 곳곳에서 용수가 흘러내리는데 그 수만도 60여 개에 이른다. 다케타 사람들은 이 물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밥도 하고 물고기도 기른다. 미네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물이 흘러내리는 곳 중 5곳을 개방해 다른 지역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개방해 놓았다고는 하지만 깨끗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로 꾸며놓지는 않았다. 그저 산골 마을 어딘가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작은 냇가 정도다. 하지만 그 물 맛만큼은 달디 달다.

다케타 용수군이 그렇듯 다케타의 관광지들은 자연 그 자체를 즐기기에 좋다. 많은 건물이 있지 않고 인공적인 느낌도 덜하다. 대표적인 것은 스카이파크. 구주산과 아소산 사이에 있는 이 공원에는 다케타의 특산품을 파는 건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 아래 풍경이 다다. 그런데 이 경치가 예사롭지 않다. 산 사이에 펼쳐진 너른 평지에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멀리로는 높은 산과 구름이 어우러진다.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에는 분명 그림 같은 풍경-하필 이 때 태풍이 덮쳐왔는지. 하늘을 원망하는 수 밖에는 없다-이 펼쳐질테다. 일본의 근대 문학가인 요시노 아키코가 이곳의 경치에 감탄하고는 여러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잔뜩 흐린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얼른 시 한 수 지어 읊고 싶을 정도다.

쿠주꽃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20만 평방미터의 넓은 대지에 100만여 송이의 코스모스와 200만여 송이의 다른 꽃들이 모여 살고 있다. 봄에는 포피와 비올라가 꽃을 피우고 6월과 7월에는 넓은 라벤더 밭이 생겨난다. 가을에는 사루비아와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룬다. 원래 이곳에 있던 숲을 원내에 그대로 보존해 놓기도 했는데 용담과 제비꽃, 오이풀 등 들에서 자라는 많은 풀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허브가든과 영국 스타일로 꾸며놓은 플루루 가든은 최고의 산책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에도 시대의 정취 그대로, 조카마치

다케타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조카마치다. 다케타는 에도시대에 오카번 나카가와 영주의 성하 마을로 크게 번영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의 역사를 알려주는 거리 풍경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우선 찾은 곳은 오카성이다. 1185년, 당시 영주가 미나모토노 요시쓰네라는 장군을 맞아들이기 위해 이 지역에 오카성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성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성터가 남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성터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봄과 가을이 되면 이 성터를 방문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2000여 그루의 단풍나무가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기 때문이다. 특히 4월 초순에 열리는 벚꽃축제와 11월에 열리는 대나무-다케타는 대나무로도 유명하다-축제 시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오카성터에서 내려와 성하 마을로 향했다. 성주나 사무라이들이 머무르곤 했다는 사보 오카쿠야는 여전히 그 시절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고, 손님이 있다는 표시로 불을 밝혔다는 언덕 위의 탑은 수 백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마을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길가에는 아기자기한 집들은 어깨를 맞대며 서로를 지탱하고 있고, 사무라이가 하인들을 거느리고 살았다는 집과 오래된 손때가 묻어 있는 절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다. 에도 시대가 끝날 때 쯤 이곳에 살았던 화가의 집인 치쿠덴소에 오르면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마을을 거닐다 여기저기서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조노쓰키(황성의 달>로 유명한 작곡가 타키 렌타로가 이 마을에서 살았었기 때문이라고. 그가 살았던 집도 물론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방문객들을 반긴다.

이제 다케타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시간이다. 마지막은 뭐니뭐니해도 특산품 쇼핑이 아닐는지. 조카마치의 특산품을 꼽으라면 단연 달걀 인형이다. 달걀 인형이야 일본 전체의 특산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특히 조카마치와 달걀인형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달걀이 귀한 시대에 껍질도 버리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서 여자들이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대다수 여인들이 달걀 인형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조카마치의 달걀 인형이 더욱 좋은 것은 단지 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갈 수 있어서다. 1,200엔 정도만 내면 달걀 인형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는데, 대부분 수대에 걸쳐 달걀 인형을 만들어 왔던 여인들이 선생님으로 나선다. 숯가루-계란 껍질과 숯가루의 성분이 서로 잘 맞아 부식되거나 변색되지 않기 때문에 숯가루만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로 만든 먹을 갈아 달걀 위에 조심스레 그림을 그리고 형형색색 예쁜 기모노를 입히면 완성이다. 집으로 가져갈 최고의 여행 기념품 하나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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