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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on the Bridge - 칸차나부리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7-04-23 오후 1:41:18

Travel Kanchanaburi

Peace on the Bridge

이제는 평화로운 길

태국 북부의 깐짜나부리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들의 분투를 그린 동명의 영화로 인해 더욱 잘 알려진 콰이 강의 다리가 있다. 그러나 수많은 포로들의 희생을 딛고 선 이 다리는, 이제 평화와 안식을 기도하는 이들로 붐빈다.

글, 사진ㆍ안수련 기자｜취재협찬ㆍ황금깃털여행 1577-2585 www.wawatravel.co.kr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은 18세기까지만 해도 쇄국정책을 고수한 폐쇄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서구의 영향력이 증가하자 이를 과감히 버리고 영국, 미국, 프랑스 등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고, 그 덕분에 태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주변국들이 속속 열강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 동안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을 이용해 이들의 침략을 피할 수 있었다.

한편 국내의 정치 상황은 날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1932년에는 무혈혁명이 일어나 장기간 이어져 온 전제군주제를 타파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는데, 이때 권력을 쥐었던 무관파는 1942년, 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일본과 공수동맹체제 조약을 맺고 영국과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해질 조짐이 보이자 1944년에는 일본과의 전시협정을 파기, 자국내의 친일파를 숙청하고 영국과 프랑스에 자진해서 손해 배상을 해주었다. 그 결과 태국은 전쟁 발발국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도움으로 유엔에 가입하게 된다.

이처럼 태국은 시류에 따라 유효적절한 외교 전략을 구사하며 광폭한 세계대전의 파도를 비교적 순탄하게 통과했지만, 세계를 살육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차대전의 날카로운 발톱은 이곳에도 예외 없이 깊은 상흔을 남겼다. 전쟁의 그림자는 태국 전역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전후에 가장 많이 잘 알려진 지역은 아마도 태국 북부의 ‘깐짜나부리(Kanchanaburi)’ 지역일 것이다. 어딘지 잘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콰이 강의 다리’는 어떤가?

태국의 수도가 ‘천사의 도시(Krung Thep)’라는 뜻을 가진 ‘방콕’이라거나, 가장 존경받는 태국 국왕 라마 9세의 이름이 ‘푸미폰 아둔야뎃’이라는 사실은 몰라도 방콕에서 3시간 떨어져 있는 태국 중부의 시골마을을 가로지르는 ‘콰이’라는 이름의 강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57년 아카데미 영화상의 7개 부문을 휩쓸었던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콰이 강의 다리’ 때문이다. 사실 ‘콰이’는 잘못된 영문식 표기를 그대로 읽은 것으로, 현지인들은 이 강을 ‘매남 쾌’라고 부른다(장예모 감독의 영화 ‘추국타관사-秋菊打官司’사가 영어식으로 ‘Qui Ju’라고 표기되면서, ‘귀주 이야기’라는 원제와 전혀 다른 이름으로 수입된 것과 비슷한 경우다).

죽음의 레일 너머

이 강에 얽힌 이야기를 다 하자면 아마 며칠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묻힌 영혼을 위로하는 데는 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비극의 시작은 이렇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연합군이 바다쪽의 통로를 차단하자 일본은 군사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414킬로미터에 이르는 버마-시암 철도의 건설을 계획한다. 적어도 4년은 필요한 대공사였지만, 한시가 급했던 일본은 6만 명의 연합군 포로와 30만 명의 아시아인 노동자를 동원해 하루 18시간 교대 근무를 시키며 불과 1년 만에 기적적으로 철도를 완공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만 2천 명의 연합군 포로와 10만 명의 아시아인 노역자가 콜레라와 말라리아, 영양실조, 그리고 혹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깐짜나부리에서 동남쪽으로 5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농플라둑’에서 미얀마 해안의 ‘탄뷰자야트’를 연결하는 철도는 수많은 포로와 노역자들의 끔찍한 희생을 통해 완공됐지만, 2년 만에 운행이 중지된다. 1944년부터 부쩍 늘어난 연합군의 집중 폭격으로 심한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갔지만, 콰이 강에서 벌어진 참상과 그 지옥도를 만들었던 이들의 속내는 아직도

역사의 검증을 받지 못하고 세차게 흐르는 시간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콰이 강 위에는 희생된 이들의 시체가 쌓여 만들어졌다는 ‘죽음의 레일’이 서 있다. 거짓말처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하지만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전쟁 통에 몇 번이나 폭격을 당한 다리가 그래도 남아 있다니 말이다. 사실 콰이 강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다리는 전후 일본이 전쟁 배상 차원에서 옛 모습 그대로 재건한 것이다. 암울한 역사는 아직도 무겁게만 느껴지지만, 덕분에 이곳은 매년 퇴역군인과 사망자의 친척들,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추모하는 이들과 영화의 배경이 됐던 장소를 구경하려는 이들로 언제나 붐빈다. 전쟁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는 이 지역을 돌며 무거워진 마음은 미니 기차에 올라 훌훌 털어버리자.

이 미니 기차는 20분 마다 종착지인 남똑 역까지 77킬로미터 구간을 오간다. 강바람과 함께,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저녁 해의 온기가 온 몸에 스며들어 한층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잔물결 위, 평화로운 삶의 터전

같은 물길이지만 콰이 강과 전혀 다른, 쾌활함이 묻어나는 곳이 있다. 바로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담넌사두악 수상시장이다. 이곳에서는 좁은 클롱(운하)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찰랑이는 물 위에서 살아가는 태국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보트를 타고 운하를 돌아다니다보면 막 따온 과일과 야채, 각종 주전부리를 가득 실은 수십 척의 배를 지나치게 된다. 빨간 촉수를 뻗은 람부탄과 달콤한 망고, 마늘장아찌를 닮은 망고스틴 등 신선한 열대과일은 생각만 해도 금세 입에 침이 고일만큼 맛있다. 가장 번잡하고 볼거리가 많은 시간은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로, 담넌사두악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시간대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빠르게 달리는 보트 옆으로 이를 닦거나 빨래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른다. 운하를 따라 즐비하게 서있는 수상가옥 아래로 오리가 둥둥, 물결에 밀려간다. 운하의 물결만큼이나 잔잔한 일상이다. 전쟁을 건너온 이들에게, 이 평화가 계속되길.

Places

제스 전쟁 박물관과 전쟁 묘지

다리 근처의 제스 전쟁 박물관(Jeath War Museum)에는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제스’라는 이름은 콰이 강의 다리 건설과 관련된 6개국(일본, 영국, 호주, 미국, 태국, 네덜란드)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이곳에는 매년 희생자의 가족과 친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박물관과 함께 이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은 당시 사망한 7천여 명의 포로들이 묻혀있는 묘지다. 이 지역에는 ‘와트탐카오푼’과 ‘충카이’, 두 개의 묘지가 있는데, 지금은 두 곳 다 영연방 전쟁 묘지 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Person

라마 9세, 그들의 국왕

태국인들의 국왕 사랑은 유별나다.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관대하기로 유명한 그들이지만 국왕과 관련된 일에는 무척 민감하다. 19세에 왕좌에 올라 60년간 통치해온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권위는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쿠데타에 가까운 정권 싸움이 있었을 때도 국왕의 한 마디에 모든 소란이 깔끔하게 정리됐었다. 지난 여름 태국에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유독 많았는데, 이는 국왕의 60주년 대관식 행사를 기념하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입었던 것이라고. 이방인의 눈에는 야단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처럼 온 국민이 믿고 의지하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어찌됐든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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