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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e My Footprints at the `Top of Europe` - 스위스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11-30 오후 5:04:04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구름 위를 걸어서 기자도 다녀왔다. 스위스에 가본, 아니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는 이들은 모두 가봤다는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요흐를. 그리고 깨달았다. 남들이 다 가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몇 년 전 배낭여행 당시 너도나도 융프라우요흐를 간다는 말에 괜스레 반발심이 생겨 그곳에 가지 않았던 건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것을.

글 주소영 기자│사진 문유선 기자

융프라우 지역은 스위스 중앙부의 고지대인 베르너 오버란트(Bernese Oberland)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의 삼두마차 아이거(Eiger), 묀히(M쉗ch), 융프라우(Jungfrau)로 둘러싸인 경관, 그 웅장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투명한 빛깔의 호수, 넓은 초원에서 소가 풀을 뜯고, 소의 목에 걸린 워낭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산악마을의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 등.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쏠리는 건 바로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요흐 때문이다.

융프라우요흐는 ‘젊은 처녀’라는 뜻의 ‘융프라우(Jungfrau)와 ‘봉우리’라는 뜻의 ‘요흐(Joch)’가 합쳐진 말로, 융프라우와 묀히 산 사이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곳을 가리킨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 있어 유럽의 정상으로도 불리는데, 새하얀 눈이 사방을 덮고 있는 그야말로 알프스의 설원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알프스 산맥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기도 한 융프라우와 알레취 빙하(Aletshgletsscher)를 체험할 수 있는 곳, 인터라켄(Interlaken)부터 융프라우요흐까지의 여정을 만나보자.

유럽의 정상을 향해서 아침 일찍, 인터라켄 오스트(Interlaken Ost) 역으로 향한다. ‘호수와 호수 사이’라는 뜻을 지닌 인터라켄은 이름처럼 브리엔츠(Brienz)와 툰(Tune) 호수의 가운데 자리한 마을로, 융프라우 지역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융프라우의 관문이라 불리는 곳이다. 열차는 이곳 인터라켄 오스트 역을 출발해 약 2시간 20분 만에 융프라우요흐 역에 도착하는데, 혹 그 여정이 지루할까 걱정한다면 장담하건대, 당신은 융프라우 지역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일 게다. 창밖으로(우리가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 펼쳐진 알프스의 전원적인 풍광을 감상하다 보면 2시간이 아니라 4시간이 걸린대도 시간가는 줄 모를 테니 말이다. 해발 3,454미터의 융프라우요흐까지 연결된 철길을 오르다 보면 느껴지는, 인간의 의지와 스위스 철도 기술에 대한 경이로움도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서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방법은 라우터브룬넨(Lauterbrunnen) 쪽과 그린델발트(Grindelwald) 쪽으로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감히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양쪽 모두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니 라우터브룬넨 쪽으로 올라갔다가 그린델발트로 내려오면 어떨까? 오전 8시 5분, 드디어 기차의 출발신호가 올리고 ‘꿈에 그리던 그곳’을 간다는 설렘에 여행객들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참, 인터라켄 오스트 역을 출발한 기차는 츠바이뤼취넨(Zweilutschinen)역에서 두 개로 분리돼 한쪽은 라우터브룬넨으로, 다른 한 쪽은 그린델발트로 향하므로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으려면 승차 전 플랫폼을 반드시 확인할 것.

동화 속 마을의 풍경을 지닌 곳 인터라켄에서 출발한 기차는 20분 후 라우터브룬넨에 도착한다. 라우터브룬넨은 800년 역사를 지닌 아담한 마을로, 알록달록 피어 있는 꽃과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와 말, 스위스 전통 가옥인 샬레를 볼 수 있는, 조금 전 인터라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는 곳이다. 기차역에 내리자 몇 년 전 배낭여행 당시 며칠 간 이곳에 머물면서 보낸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백패커를 위한 호스텔에서 여행객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맥주를 마시며 쏟아질 듯 촘촘한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던 여행의 추억. 알프스는 그런 곳인 것 같다. 처음 만난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게 되는 곳 말이다.

라우터브룬넨은 ‘폭포의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는 72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쏟아지는데, 800년 전 이곳을 찾은 스위스 남부 사람들은 ‘폭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라우터브룬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기차역을 나와 중심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면 보이는 슈타우바흐 폭포(Staubbachfall)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낙차를 자랑하는 곳으로, 산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빙하가 녹아 약 300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장관을 연출한다. 여름에는 풍부한 수량 덕에 엄청난 위엄을 자랑한다는데, 아쉽게도 기자가 찾은 날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산 위에 얼음이 얼어서 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와 소의 목에 걸린 맑은 워낭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다시 벵엔(Wengen)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가이드는 ‘베스트 포토 스팟’를 알려준다. 5분쯤 철길을 달려 벵엔 방향으로 코너를 돌기 직전, 라우터브룬넨의 한 교회 너머로 슈타우바흐 폭포가 바라다보이는 곳인데, 잠깐 스쳐 지나간다는 말에 오른쪽 창문을 열고 카메라를 들고 대기했다가 사정 없이(?) 셔터를 누른다. 해발 1,274미터, 라우터브룬넨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 벵엔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청정마을로, 휘발유 차량의 진입은 조금 전 지났던 라우터브룬넨까지 가능하고 이곳에서부터는 전기 자동차만 운행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자동차만 없는 것이 아닌 듯하다. 소음도 없고 먼지도 없는, 그야말로 한적한 산촌마을이다. 그러나 마을 전체를 둘러보는 데 걸어서 두세 시간이면 충분할 만큼 아담한 이곳이 겨울이면 엄청난 스키어들로 북적인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바로 라우버호른(Lauberhorn) 스키장 때문으로, 라우버호른 국제 스키대회로도 잘 알려진 이곳은 긴 슬로프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스키 리조트다. 전체 인구 1,200명의 자그마한 마을에 호텔 수만 40개에 달하고, 대부분 집도 여행객을 위한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하니 그 명성을 짐작할 만 하다.

열차가 아이거 북벽을 통과한다고? 기차는 다시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으로 향한다. 벵엔까지만 해도 푸릇푸릇한 풀이 돋아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클라이네 샤이덱이 가까워질수록 초원이 아닌 설원이 펼쳐지더니 역에 도착하자 만년설이 쌓인 그 유명한 아이거가 눈앞에서 위용 넘치는 모습을 뽐낸다. 해발 2,016미터의 클라이네 샤이덱은 아이거 북벽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로, 라우터브룬넨에서 출발한 열차와 그린델발트에서 출발한 열차는 모두 이곳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멈춘다. 융프라우요흐 역까지 경사가 워낙 심해 여기서부터는 톱니바퀴 레일의 등산열차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클라이네 샤이덱과 융프라우요흐를 연결하는 융프라우 철도에 대해 알아보자면, 건설하는 데만 16년이 걸려 1912년 완공된 융프라우 철도는 5,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스위스 철도 기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해발 3,454미터라는 단순히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도의 철도여서가 아니다. 물론 그 높이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철도가 아이거와 묀히의 암반을 뚫고 간다는 사실이다. 이 철도를 설계한 사람은 아돌프 구에르첼러(Adolf Guyer-Zeller)라는 엔지니어로, 스위스 알프스의 상징적인 세 봉우리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중 두 개의 봉우리를 뚫고 지나가는 이 원대한 계획은 스위스 의회의 논의까지 거쳤다고.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아이거 북벽을 향해 수직으로 오르던 열차는 빙하지역인 아이거글래쳐(Eigergletscher) 역에서 잠시 정차한 후 곧 터널로 들어간다. 이곳이 바로 아이거 암반 속으로, 그저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니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르지만, 잠시 후 아이거발트(Eigerwald, 2,865미터) 역에 정차하면 그 진가가 펼쳐진다. 암벽 내부에 커다란 관측창을 통해 바라보는, 열차가 막 지나온 그곳의 잘려나간 암벽의 흔적. 인간이 이뤄낸 대단한 결과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5분간 정차한 열차는 잠시 후 아이스메어(Eismeer, 3,160미터) 역에서 역시 5분간 정차하는데, 이곳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빙하 지역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쯤 오면 조금씩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고산증세가 시작된 탓이다. 처음 겪는 고산증세에 당황도 잠시, 가이드의 말에 따라 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심호흡을 하니 신기하게도 몸이 금방 적응을 한다.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요흐에 서다 클라이네 샤이덱 역을 출발한 지 50여 분 만에 열차는 드디어 유럽 최고(最高)의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다. 열차가 도착하는 곳은 레스토랑과 카페테리아, 기념품숍이 있는 복합구조물로, 이곳은 1924년 지어져 불타버린 산정 휴게소 대신 1970년대에 건설된 건물이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은 혹독한 자연환경과 싸워야 했음은 물론 전기와 에너지 공급에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결과 낮에 모은 태양열을 밤에 저장하고 전구, 전기용품, 심지어 방문객의 체온까지 난방을 위해 사용하는 고차원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건물은 야간에 실내온도를 18도로 유지하기 위한 난방을 제외하고는 외부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에도 별다른 방열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건물 위로 올라가면 마치 알프스 동화의 나라에나 있음 직한 얼음궁전(Ice Palace)이 자리한다. 푸른빛을 발하는 투명한 얼음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안에는 북극곰과 물개, 이글루, 에스키모, 펭귄 등 얼음 조각품들이 전시된 얼음세상이 펼쳐진다. 얼음조각이야 흔히 보는 거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동굴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빙하 아래를 뚫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

이곳은 1934년 벵엔과 그린델발트 출신의 두 산악 가이드에 의해 만들어진 곳으로, 관광객들이 서 있는 곳은 실제 알레취 빙하 20미터 아래다. 지금도 매년 50센티미터씩 아래로 이동하는 빙하 때문에 정기적으로 보수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에는 얼음이 녹지 않도록 특수장치를 이용해 항상 영하 2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장치는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체온을 모아 융프라우 레스토랑 난방에 사용하는 역할도 한다고. 얼음궁전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플라토(Plateau) 전망대가 나온다. 생생한 만년설 위를 걸을 수 있는 작은 고원지대인 이곳에서는 알프스에서 가장 긴 알레취 빙하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수많은 알프스의 명봉과 맑은 날에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스위스 주변 국가와의 접경지대까지 조망할 수 있으며 꼭 그렇지 않더라도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는 부드러운 눈 위를 걷는 기분이 무척 상쾌하니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눈부신 설원 위에서 펄럭이는 빨간색 스위스 국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말 것.

융프라우요흐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1996년에 오픈한 스핑크스(Sphinx) 전망대다. 처음 기차가 도착한 곳에서 연결된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스핑크스 전망대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데, 해발 3,571미터 높이의 야외 테라스에서 360도로 바라보는 알프스의 파노라마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본래 산 위 날씨라는 것이 워낙 변덕이 심해 스핑크스 전망대의 장관은 산이 허락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인 법인데, 기자는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멀리 독일의 검은숲 지역인 슈발츠발트(Schwarzwald)까진 아니더라도 눈앞에는 마치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한 융프라우가, 발아래로는 독특한 형상의 알레취 빙하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융프라우에는 관리와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서가 있고, 연구소와 천문대도 자리한다. 여행객들에게는 최고의 경관을 선사하는 관광지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이곳은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위한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우체국이 있어 누군가에게 엽서를 쓰느라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 ‘Top of Europe’이라는 소인이 찍힌 엽서를 받은 사람은 감동보다는 부러움을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불편한 매력, 산장에 머물다 어느덧 오후 5시 50분, 융프라우요흐를 떠나는 마지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자의 종착역은 클라이네 샤이덱이다. 알프스의 낭만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자 산장에서 머물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터라켄까지 바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이왕 이곳까지 왔다면 산장에서 하룻밤 머무르는 건 어떨까? 융프라우 지역의 각 역에서는 한 개에 10프랑에 원하는 기차 역까지 짐을 옮겨줘 무거운 짐을 들고 기차를 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고급호텔보다야 모든것이 부족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산 아래로 석양이 지면 고요함 속으로 빠져드는 밤 풍경, 새벽 하늘에 초롱초롱 떠 있는 별빛과 아래 지역보다 조금 일찍 뜨는 해, 그리고 눈을 뜨면 창 밖으로 남성미 넘치는 아이거 북벽의 위풍당당한 모습까지,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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