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 이스탄불을 이야기하기 위해 읽었던 수십 권의 책, 들었던 수만 마디의 말들을 옹골차게 응집하여 올바르게 뱉어낼 수 있을까.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동시에 공유하는 세계 유일의 도시를 거창한 수식어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는 있을까. 깜냥에 과분하기만 한 이스탄불을 설명하기 위해 구 시가지에서 보낸 짧은 여정을 기록해 본다.
어떤 도시에 관한 기사를 쓸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인터넷만 치면 다 나오는 역사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하지 않기. 직접 가서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기. 그러나 터키에 와서 이 원칙은 무너지고 있다. 달리 방법이 없다. 역사를 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도시 앞에 서니 그간 쌓아 온 방식에 혼란을 겪는다. 생각 없이 만지는 작은 돌기둥에서도 유럽과 아시아, 중동의 혼합된 역사가 무더기로 날아드는 이 도시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버티기란 불가능하다. 이스탄불이 품고 있는 것은 한두 세기, 한두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유럽을 탄생시킨 거대 제국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들이 가장 차지하고 싶어한 도시 고대 연구가들은 이스탄불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이스탄불처럼 완벽하게 수도의 운명을 타고난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말처럼 이스탄불은 세계 역사의 수많은 열쇠를 쥐고 살아왔다.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삼을 때 이스탄불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었다. 기원전 660년 그리스 시대에 불린 이름은 비잔티움(Byzantiu)이었고. 이후 1453년 술탄 메흐메드 2세가 황제가 되어 오스만 제국의 수장으로 군림할 때도 이스탄불은 왕의 땅이었다. 그러니까 1923년 앙카라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1,600년 동안 이스탄불은 수도로 살아왔다. 이 말은 즉 15세기가 넘는 역사 동안 세계사를 뒤흔든 왕조의 역사가 이스탄불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이야기다.
이스탄불에서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은 의무적인 일이 아니다. 교통체증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인들에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지상의 좁은 골목 하나도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도로를 넓힐 수 없고, 땅만 파면 수많은 유적이 쏟아져 나오는 탓에 지하철 노선을 넓힐 수도 없다. 몇몇 터키인들은 이 점에 불만이 있지만 필자는 그저 부럽기만 하다. 식량과 보물이 넘쳐 나 사람들은 게으르고 도시의 편리함은 떨어진다는 것. 그것은 세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랜 수도의 천명이니까.
구 시가지 최고의 유적 3선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Bosporus Str.)을 사이에 두고 유럽 땅과 아시아 땅으로 나뉜다. 서쪽인 유럽 지역은 골드 혼(Golden Horn)을 중심으로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로 분리된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목적지는 ‘세계의 박물관’이라 불리는 구 시가지다. 이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도 관광객의 호기심을 끌어들인다. 구 시가지는 실제로 보고 있어도 현실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이국적이고 이질적이다. 단지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모스크나 전차 때문만은 아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 이스탄불이 주는 이질감은 시간적이고 공간적이며, 그 두 가지에 눌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지는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아야소피아 성당(Aya Sofya Church): 아야소피아는 구 시가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건축술이 뛰어나고 역사가 깊어서만이 아니다. 아야소피아는 537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마식 건축물, 그리고 한 건물 안에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가지 종교를 담고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916년간의 성당 역사를 마치고 이후 481년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각 기둥마다 붙여 놓은 커다란 아랍어 캘리그래피다. 로마식 성당에 아랍어 캘리그래피가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믿기 힘든 일이다. 일반적인 정복자라면 타 문화와 종교에 대해 관대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건축물은 완전히 헐고 새롭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당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메흐멧 2세는 신을 형상화하는 그리스 정교의 우상 숭배 방식에만 제재를 가하고 다른 부분은 그대로 둘 것을 명령했다. 그 결과 성당 천장에 있던 수많은 성화는 회칠로 덮어졌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성당 측은 칠을 조금씩 벗겨내고 있다. 현재도 이 복원 작업이 한창인데, 조금씩 드러나는 성당 내부 벽화는 아야소피아가 건너 온 수많은 세월을 보여주는 듯하다.
술탄 아흐멧 모스크(Sutan Ahmed Mosque): 모스크의 의미는 아랍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다. 이스탄불에만 3만여 개의 모스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술탄 아흐멧 모스크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14대 술탄인 아흐멧 1세가 건축을 명령한 것으로, 맞은 편 아야소피아 성당보다 화려하게 지으라는 지시 아래 1616년에 완성됐다. 그 결과 이스탄불을 넘어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 되었다. 사원 내부가 2만 1천 개의 파란색 이즈닉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모스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른 모스크와 달리 여섯 개나 되는 첨탑이 있다는 것이다(황제의 명령으로 세운 모스크에는 4개의 첨탑이 있다). 이와 관련된 비화가 있다. 아흐멧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첨탑을 황금으로 만들 것을 명령했다. 첨탑은 대양을 항해하는 선단들과 사막을 가르는 캐러반들의 눈에 띄어 세계 다른 도시에도 소문이 나기 좋은 이정표였을 것이다. 황금으로 만들면 이스탄불의 풍요로움이 알려지고 더불어 술탄의 명성도 자자해질 테고. 그러나 당시 재정 상태를 걱정하던 신하들은 ‘황금(알튼)’을 ‘숫자 6(알트)’으로 잘못 알아들었다고 말하며 여섯 개의 첨탑을 만들었다고 한다(단순한 실수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첨탑 6개는 메카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로 인해 메카는 첨탑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랜드 바자(Grand Bazaar): 그랜드 바자는 터키어로 ‘카팔르 차르쉬’, 즉 지붕이 있는 거대한 시장이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로 5천여 개의 상점들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과거 중국을 떠난 상인들의 목적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서 흔히 그랜드 바자를 두고 ‘실크로드의 종착지’라 부른다.
시장 안팎을 조금만 돌아다니다 보면 중세 유럽의 상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독특한 활기참에 덩달아 마음이 들뜬다. 그러나 쇼핑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 한다. 이들의 선조는 과거 세계 최고의 상인들이었다. 조상의 피를 물려 받은 그랜드 바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어느새 비싼 값으로 사는 것에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완벽한 상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당신의 배우자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에요. 이토록 아름답다니!’ 같은 말을 하더라도 처음 가격의 절반은 깎을 줄 아는 똑똑한 쇼퍼가 되길 바란다.
터키항공이 제안하는, 이 유적들을 무료로 보는 법 이스탄불의 유적들에 매료되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이스탄불이 아닌 당신. 걱정할 필요 없다. 터키항공은 오히려 당신 같은 환승객을 환영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스탄불에서 연결 항공편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터키항공은 무료 숙박 혹은 무료 관광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들이 만든 ‘이스탄불 시티 투어 프로그램’은 잠깐의 환승만으로도 이스탄불의 핵심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이스탄불 아타투르크(Ataturk) 공항에 도착해 터키항공이 운영하는 호텔 데스크를 방문하면 전담 가이드가 역사적인 장소들로 안내해 준다. 환승 시간이 비즈니스석 7시간, 일반석 10시간을 초과하는 일정으로 여행하는 승객에 한하며 술탄 아흐멧 모스크, 아야소피아 성당, 히포드롬 광장 및 카리예 박물관과 톱카프 궁전 등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에 끌려 터키항공 대표 테멜 씨를 만났다. 그의 전적은 화려하고 목표는 원대했다.
Interview
터키항공 CEO 테멜 코틸(Temel Kotil)이 말하고 싶은 것
테멜은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11시간 30분 동안 승객들이 비행기에서 제공 받은 것들의 탄생 배경을 말했다. 직접 들어보자.
만나서 반갑다. 나는 터키항공의 대표 테멜 코틸이다. 예전에 미국 미시건에서 공부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룸메이트가 한국인이었다. 같이 공부를 하면서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특히 테크놀로지 분야에서의 변화를 눈 여겨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축하를 표한다.
터키항공에 대해 몇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터키항공은 1933년 설립되었으며, 1947년에 앙카라-이스탄불-아테네 구간 첫 번째 국제선 취항을 시작했다. 장거리 노선은 1986년에 시작했는데 타 항공사에 비해 늦게 출발한 편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한 가지 비유를 하고 싶다. 혹시 소나무를 알고 있는가? 소나무를 심으면 뿌리를 내리고 물을 빨아들이는 데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뿌리를 내리면 그때부터 성장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터키항공도 이와 같은 원리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얼마 전 집계된 ‘전 세계 20대 항공사’에 터키항공은 20위를 차지했다. 이것이 대단한 랭킹은 아니지만 140위에서 20위까지 상승했으니 빠르게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소나무처럼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 첫 째는 이스탄불이 타고난 세계적 허브라는 것. 27퍼센트의 승객이 동쪽에서 와 이스탄불을 거친 후 대서양 또는 서유럽으로 향하고, 또 78퍼센트 정도가 동쪽으로 향한다. 두 번째는 승객을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들이다. 당신은 누가 터키항공의 보스라고 생각하나? 물론 나는 아니다.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보스니까 우리의 보스는 승객이다. 터키항공은 2006년 민간항공사로 독립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가지고 있는 지분은 굉장히 적다. 그러니까 2006년에 우리는 승객을 보스로 임명한 것이다. 그 결과 승객수송량이 2002년 약 천만 명에서 시작해 2007년 약 2천 7백만으로 3배가 증가했다. 여기에는 우리만의 노하우도 있다. 터키항공에는 ‘우리는 기내식의 규칙을 만든다’라는 스토리가 있다. 터키에는 ‘마음은 요리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터키에서 음식은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기내식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참고로 터키항공의 기내식은 기자가 여태 만난 기내식 중 최고였다. 기내식을 제공하고 있는 ‘DO&CO’는 아메리카스컵에서 케이터링을 맡을 만큼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업체다). 세 번째 이유로는 미래에 대한 투자다. 우리는 인천을 포함해 119개의 국제 도시에 취항지를 두고 있다. 새로운 취항지를 오픈하는 것은 정말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터키항공은 이러한 시도로 인해 많은 손해를 보았고 손익분기점에 가까이 갈 정도로 위험했으나 리스크를 감수하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우리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측면에서, 또한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속 이러한 시도를 했다. 앞으로 인천으로의 취항도 늘려나갈 생각이다. 많은 이용 바란다(현재 인천-이스탄불 구간은 월, 수, 금, 일요일 주 4회며 밤 11시 55분에 출발한다. 터키항공은 2011년까지 주 7회 운항을 목표로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