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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10-03-20 오후 1:05:25

Four Stories Of Okinawa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탄 이곳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네 가지의 공간에서 또각또각 느릿하게 흐르는 오키나와의 시간을 만끽하다보면 쉼 없이 달려온 지친 마음은 어느덧 느긋하고 여유로워진다. 반짝반짝 눈이 부시고 새로운 것들이 가득한 신천지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은 없지만 오랜만에 들른 시골 할머니 댁에 머무를 때 느낄 수 있는 정겨움과 아련함이 마음 가득 묻어난다. 단, 온 마음을 던져 더디게 가는 시간의 흐름에 흠뻑 취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몽환의 극(極) 츄라우미수족관

온종일 멍하니 수조만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이곳은 츄라우미 수족관이다. 미지의 세계였던 바다 밑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의 궤적을 눈으로 쫓다보면 내 몸 어느 곳에선가 아가미가 뚫리고 지느러미가 돋아 바다 밑을 부유하는 듯한 기분 좋은 몽상에 빠진다.

해양생태공원의 한 축인 츄라우미 수족관은 쿠로시오 난류와 산호가 만들어낸 오키나와 심해의 생태를 그대로 재현했다. 투어는 불가사리와 말미잘같은 미끌미끌한 바다생물들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관에서 시작해 산호가 서식하는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고 사육한 후 바다로 이식하는 산호관, 다양한 색과 모양의 어류들을 볼 수 있는 여러 콘셉트의 수족관을 거쳐 흑조의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수족관에서 절정을 이룬다. 수조높이 8.2미터 길이 22.5미터의 거대한 규모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어류인 점박이 고래상어를 사육하는 곳이며 좀처럼 보기 힘든 5미터 크기의 쥐가오리 무리를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쥐가오리가 무리지어 떠다니고 그 위로 고래상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심해가 아닌 우주를 유영하는 비행물체가 등장하는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하루에 20킬로그램의 새우를 먹는 고래상어의 식사 시간을 잘 맞추어 가면 고래상어를 가까이서 오랜 동안 볼 수 있어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흑조의 바다 수족관 옆에 위치한 상어의 방은 실제 상어를 볼 수 있 있음은 물론 상어의 이빨과 지느러미 등을 박제로 만들어 채집한 체험 전시관이 있다. 상어의 박제된 이빨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수조안의 상어들이 눈 맞추며 그 섬뜩한 이빨을 드러내고 유유히 유영할 때는 머리털이 쭈뼛 설 만큼 공포스럽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고서는 가까이에서 상어를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그 날카로운 이빨도 귀엽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수족관을 나와 바다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돌고래 사육장이 있다. 사육사의 휘각소리에 맞춰 서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박수도 치며 멋진 고공점프를 구사하는 돌고래쇼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화려한 쇼 뒤에 감춰진 최고의 인기스타는 단연 ‘후지’라는 이름의 돌고래다. 꼬리지느러미가 부패하여 고무로 인공 꼬리지느러미를 만들어 단 후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돌고래 후지와 인공 꼬리지느러미 부착을 위해 애쓴 사육사와 수의사의 감동실화를 다룬 영화 돌핀블루(마에다 테츠 감독, 2007년 개봉)를 본 후 츄라우미 수족관을 방문 한다면 후지와의 만남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제멋대로 뻗어도 아름답기만 하다. 강가라계곡

입구를 들어서면 종유동굴 안에 조그마한 트럭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카페가 있다.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강가라 계곡의 투어는 카페에서 예약을 확인한 후 가이드가 나와 계곡 전반에 관해 간단히 설명한 후 시작된다. 계곡으로 돌이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강가라강가라’처럼 들린다고 하여 의성어 그대로 ‘강가라’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수십 만 년을 이어온 오키나와의 원시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자연의 보고로 잘 알려져 있다. 종유동굴과 억겁의 세월동안 자라난 듯한 남근모양의 종유석, 많은 종류의 식물군과 곤충 등 볼거리와 학습할 거리가 가득하다. 그중 가장 진귀한 전경은 ‘가즈마루’라는 이름의 나무다.

뿌리가 물길을 따라 흘러내리며 자라나 특이한 형태와 구조를 만드는데 마치 일본 만화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괴이하고 진기한 풍경을 연출한다. 계곡 안에 있는 여러 군데의 동굴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져 사당의 기능도 담당했다. 그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딸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여체의 종유석이 있는 동굴과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기도하는 남근모양이 종유석이 있는 동굴이 있다. 최근 2008년에는 2500년 전 사람으로 추정되는 미이라가 알칼리성을 짙게 띄는 동굴의 환경적 특성 때문에 훼손이 거의 없는 상태로 발굴되어 탐사가 시작되었으며 50만 년 전 사람이 살았던 주거흔적이 남아 유적지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자연환경과 풍경자체는 모험과 스릴 넘치는 트래킹 코스 같아 보이지만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간단하게 삼림욕하는 기분으로 투어하기에 무리가 없다. 연중무휴로 하루 네 번의 투어가 있다. 각 20분 코스로 예약은 필수이며 입장료는 성인 2000엔이다. www.gangala.com

오키나와 서민들의 주방, 공설시장

그 이름 그대로 다양한 먹거리로 가득하다. 국제거리(고쿠사이도리)를 걷다보면 공설시장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있다. 과일가게와 기념품가게를 비롯해 오키나와만의 별미 ‘사타 안다기’라는 이름의 설탕 튀김빵과 각종 모찌 등을 판매하는 가판대가 아케이드 지붕 밑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어 배고픈 여행객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공설시장의 별칭이 오키나와의 부엌이라 하니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을 체감할 만큼 이곳은 신선한 먹거리가 가득하다.

아케이드를 걷다보면 공설시장 입구라고 적혀 있는 간판을 보게 되는데 사실 여기부터가 진짜 공설시장이다. 해산물을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공설시장은 보기에 낯설어 맛도 궁금한 해산물 천국이다. 시장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구입한 후 2층으로 올라가면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호객꾼들도 있으니 잘 골라 들어갈 것.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모두 비슷한 맛과 같은 가격으로 서비스하기 때문에 어느 곳으로 들어설지 너무 골몰히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식당에서는 500엔을 지불하고 1층 시장에서 구입한 해산물로 조리한 메뉴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공설시장을 실컷 구경하고 맛있게 요리된 해산물로 허기를 채웠다면 공설시장과 이어진 도자기거리로의 산책코스를 추천한다. 도자기 거리라 이름 붙은 이곳은 상권이 형성된 거리보다는 조용한 동네에 도자기 파는 가게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는 느낌이 더 강하다. 어린 시절 친구 집을 찾아가던 소박한 동네 골목길을 걷는 기분이다. 산책 중 여기저기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단연 ‘시샤’다. 오키나와 말로 사자를 의미하는데 오키나와의 수호천사로 알려져 있는 시샤는 귀신을 물리쳐 준다는 구전으로 대만에서 유입된 액막이의 일종이다.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기와지붕 위에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건축물들이 현대화 되면서 지붕 위보다는 건물 입구에 많이 둔다. 보통 암수가 짝을 이루는데 수컷은 오른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고 암컷은 왼쪽에서 입을 닫고 있다. 수컷이 행복을 받으면 암컷은 수컷이 받은 행복이 도망가지 않게 입을 닫고 있는 것이란다.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기념품이기도 하거니와 각기 다른 모양과 다른 표정을 하고 입구나 지붕위에 앉아있는 시샤를 구경하며 동네를 구경하다보면 모든 나쁜 일이 나를 비켜갈 것 같은 안도감마저 드니 이보다 더 좋은 산책코스가 있을까. 도자기 거리에는 시샤를 직접 만들어 집까지 가져갈 수 있는 공방도 있으니 직접 자신만의 수호천사를 만드는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키나와 바다를 즐기는 고수들의 방법

바다 고유의 이름은 그 만의 장단을 가지고 있다. 발음할 때 입안을 맴도는 장단에 맞춰 품은 느낌도 각기 다르다. 오키나와 바다라고 소리 내어 이야기하면 왠지 모를 낭만이 더해지고 따뜻해지는 것은 글자와 억양이 만들어내는 장단과 바다 앞에 붙은 오키나와라는 특별한 이름 때문이리라. 막연히 동경했던 오키나와 바다의 느낌과 직접 본 후의 느낌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크고 넓지만 조용하고 소박한 성격의 바다. 외로울 때 가면 외로운 바다고, 즐거울 때 가면 즐거운 바다인 것이 바다를 찾는 이가 느끼는 보통의 감정이라면 오키나와 바다는 찾는 이의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 느낌이다. 항상 같은 모습으로 덤덤하고 온유한 느낌만 전해줄 것 같다. 바다냄새가 진하게 나지 않는 이유도 한몫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산호가 많아 정화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데 그만큼 깨끗한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무궁무진하다. 오키나와섬의 대표적인 해양스포츠 클럽인 탑 마린(www.top-mf.com)에서는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데 글라스 보트, 스노우 쿨링, 스쿠버 다이빙을 비롯해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진행한다. 온나지역과 후차크지역 그리고 잔파지역에 지점이 있으므로 숙소에서 가까운 곳으로 예약한 후 오키나와 바다를 활기차게 즐기는 것, 오키나와에서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두루두루 섭렵했다면 현지인 스타일로 바다를 즐겨보자. 보통의 오키나와 사람들은 해변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비치발리볼로 친목을 다지고 더위에 지치면 바다로 들어가 대화를 한다고 한다.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낭만, 멋, 여유가 어우러진 진정으로 아름다운 오키나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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