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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유레일 여행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7-04-23 오후 2:12:39

Travel Eurail

A Eurail Traveler`s Note

`낭만의 기차여행`은 언제나 유효하다

유레일 패스를 사는 것은 ‘경제적인 열차 티켓’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무한한 자신감과 여유를 사는 것이다. 무언가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구방위대 비밀요원증’을 만들어 친구끼리만 공유하던 어린 소년의 자신감만큼이나 큰 설렘을 다 큰 어른에게 선사한다. 그 설렘은 좀처럼 멈추지도 않는다. 플랫폼 저편에서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부터 뛰기 시작한 가슴은, 귀국 비행기가 서울을 향해 이륙하는 순간까지 멎을 줄을 몰랐다. 글, 사진ㆍ김보람 기자 ｜ 취재협찬ㆍ유레일 www.eurail.com

비행기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내린 다음날, 모차르트와 클림트의 흔적을 뒤쫓아 다닌 하루는 짧았다. 모차르트의 위대한 40번 교향곡 1악장이 도심 뒷골목의 그렇게 허름한 방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클림트의 키스가 달력이나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보며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눈부시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각각 250년과 140여 년 전에 탄생한 두 사람은 여전히 비엔나의 낮을 지배하고 있었다. 거리는 흰 머리를 양쪽으로 꼬아 올린 모차르트들(음악회 티켓 판매원)로 가득하고 제체시온과 부르크극장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 클림트의 작품과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저녁 어스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왕궁과, 달콤 쌉싸름한 멜랑쥐(흔히 말하는 ‘비엔나 커피’의 원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구시가 구석구석의 카페는 덤이다. 이곳에서 기차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젬머링(Semmering)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놓치기 아까운 장소. 알프스 철도의 모델이 된, 세계 최초의 산악 철도 노선인 젬머링 라인 역시 하루 시간을 내어 유레일 패스로 둘러볼 수 있다.

저녁 8시 28분, 비엔나의 서부역(Westbahnhof)에서 출발하는 열차(CityNight Line Donau-Kurier)를 타고 독일의 쾰른까지 가는 하룻밤 여정을 시작했다. 열차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열차는 유럽을 운행하는 몇 개의 호텔 열차(일반 열차의 침대칸에 비해 내부가 훨씬 고급스럽고 안락하다) 중에 하나다. 기차 여행을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은 야간 열차의 매력을 잊지 못한다. 유럽의 야간 열차는 라면과 소주 박스 위에 앉아 두 시간 만에 술에 떡이 되도록 마셔대던 대학 시절의 경춘선과, 세상 모든 역에 다 서는 것 같던 청량리-부산간 무궁화호 밤 기차의 업그레이드판이다. 중앙선 어느메쯤 까무룩 잠이 들게 만들었던 무궁화호의 스펀지 좌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이 ‘호텔급’ 열차의 침대는 좁고 딱딱했으며, 그만한 운치 또한 있었다. 최상의 안락함은 숙면을 불러오지만 적당한 불편함은 사색을 낳는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식당칸에서 와인과 파스타를 느긋하게 먹고 들어와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하고 있노라면, 간간이 점멸하는 창 바깥의 불빛 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이 많다. 소주 박스나 친구의 수다는 없더라도 말이다.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아마도 린츠(Linz) 부근이었을 것이다. 풍기 어디쯤에서 결국 눈꺼풀을 주저앉혔던 그 옛날 509 야간열차를 추억하다 스르르 잠이 든 것이.

신을 향한 열망 아래서 퀼쉬를 마시다

승무원이 침대까지 가져다 준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있으려니 기차가 곧 쾰른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잠이 든 새 딴 나라에 와 있다는 얘기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나와 열차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창 밖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가 창 밖을 흐르고 있다. 비엔나의 서부역에 비해 훨씬 크고 모던한 느낌을 주는 쾰른역을 나서니 거대한 그림자가 거리에 드리워진다. 바로 쾰른 대성당. 쾰른에서 가장 높은 이 고딕 건축물의 뾰족한 첨탑은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바로 옆에 고속철과 화물열차가 수시로 다니는 역이 있는 것이 다소 의외다. 쾰른 정부와 유네스코는 열차들로 인한 지반의 흔들림보다는 무엄하게 하늘로 뻗은 이 건물이 주는 웅장함을 해치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쓴 게 아닐까. 그래서 시민들이 ‘돔(Dom)’이라 부르는 쾰른 성당보다 더 높은 건물은 이곳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은 라인 강 건너편에 있는 현대적 빌딩인 ‘쾰른 트라이앵글’이 돔 보다는 더 높긴 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전에 건설을 시작했기 때문에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한다. 쾰른에서 잊지 말고 맛보아야 할 것은 역시 맥주(여기는 독일 아닌가!). 독특한 발효 맥주인 퀼쉬(K쉕sch)는 오직 쾰른에서만 주조할 수 있는 대표적인 로컬 맥주다. 시원하고 혀끝에 남는 씁쓸한 맛이 일품인 이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강을 따라 쭉 나 있다. 1231년도 문서까지 발견된 바 있다는 오래된 레스토랑인 ‘학센하우스(Haxenhaus)’에 들러 퀼쉬와 함께 우리의 족발과 비슷한 독일 전통 요리인 ‘학센’을 주문했다. 전혀 느끼하지 않은 돼지 정강이 살과 고소한 으깬 감자, 그리고 퀼쉬 몇 잔이면 금새 여행의 피곤함이 잊혀진다. 첨탑들 사이로 해가 지도록 맥주잔을 기울여도, 그래서 그 아름다운 쾰른의 석양을 놓쳐도 이대로라면 후회는 없다.

유럽의 옛 광장에 서서

오스트리아의 젬머링에서 완행(?) 열차도 타 보았고 쾰른으로 오는 길에 호텔 열차도 타 보았으니, 이제는 독일이 자랑하는 고속철인 이체(I CE)를 타 볼 차례다. 쾰른에서 벨기에의 브뤼셀로 가는 ICE 16번 열차가 오전 9시 14분에 쾰른역을 떠난다. 미끈한 유선형의 흰 몸체가 발 앞에 멈춰 섰다. 유럽의 열차답게 ICE 에도 우리나라에 없는 컴파트먼트 식(한 방 안에 6개의 의자가 마주보도록 놓여있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좋은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 때론 이야기하고 때론 그간 사 모은(?) 캔맥주를 마시며 기차 여행을 즐기려니 기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브뤼셀의 중심인 그랑 플라스(Grand Place)는 열차가 도착한 브뤼셀 북역(Bruxelles Nord)에서 남쪽으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미로같은 브뤼셀의 구시가 모퉁이를 빠져나오는가 싶을 때 멋진 광장이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진다. 폭이 좁고 높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도시의 전형적인 건물들이 광장 주변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다. 오래된 모습이지만, 낡았다는 느낌보다는 화려하고 정교하다는 표현이 이 광장에 더욱 어울린다. 한때 유럽의 중심임을 자처했던 장소고 유럽을 주름잡던 대상인들이 밤낮으로 모여들던 곳이다. 시청사 왼쪽, 세월이 녹아든 섬세한 외벽 장식 사이로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칼 마르크스가 머물던 방이 보인다. 그 맞은편에는 빅토르 위고가 살던 집도 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상인과 부르주아들을 보며 어떻게 한 사람은 사회주의 혁명을 생각했고 또 한 사람은 장발장을 떠올렸을까(물론 가정일 뿐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보듬어 안거나 치열하게 묘사했던 그 둘 사이에 유사성도 없진 않은 듯하다. 그랑 플라스 동쪽에 있는 거대한 쇼핑 센터인 생튀베르 갤러리(Galaries Saint-Hubert)를 지나 왼편으로 꺾으면 브뤼셀의 대표적인 먹거리들을 맛볼 수 있는 부셔 거리(Rue Des Bouchers)가 나온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집은 1893년에 문을 연 셰 레옹(Chez Leon)으로, 벨기에 사람들이 사랑하는 물르(Moules)와 각종 해물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브뤼셀에서 잊지 못할 맛이 바로 이 물르인데, 우리나라의 홍합탕과 유사한, 그러나 버터가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느끼하지 않은 그 맛은 술안주로 최고다.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

다음날, 잠시 시간을 내어 브뤼셀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소도시 브뤼헤에 다녀 온 뒤 자주색 컬러가 인상적인 벨기에의 고속열차 탈리스(Thalys)를 탔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까지는 약 2시간 30여 분. 유레일의 오퍼레이션 매니저인 피터 빌렌(Pieter Beelen)씨와의 대화 도중 알아낸 재미있는 사실은 탈리스라는 이름에 아무 뜻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 그저 빠르고 첨단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름을 만들어 붙인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암스테르담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유다. 자유로운 빛의 사용과 캔버스를 가득 메우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무수히 교차하는 인물들의 시선으로 미술사에 혁명적인 자취를 남긴 램브란트와, 생애와 작품 모두 파격적이기 그지없는 고흐를 낳은 이 도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라는 단어밖에 필요치 않다.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가며 도시를 세운 사람들에게 금기와 터부가 어디 있었겠는가. 스키폴 공항 한가운데에 공중에 뜬 것 같은 미술관까지 설치해 놓았을 정도로, 그들은 파격을 좋아하고 고정관념을 싫어한다. 예술과 성, 그리고 술에 대해 솔직한 그들이었기에 저 유명한 화가들과 거대한 홍등가, 그리고 세계적인 맥주도 탄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램브란트의 대표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라익스뮤지엄(Rijksmuseum)도 예외가 아니다. 여느 박물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전시실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해도, 대 작가들의 작품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괜찮다. 도시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운하의 수상 가옥과 도심 한가운데의 거대한 홍등가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면 이 도시의 저녁은 더욱 화려해진다. 아직 패스의 빈 공간은 많이 남아 있는데 내일이면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떠들썩한 길거리 카페에 앉아 또 한번의 ‘맥주타임’을 가진 후, 아직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안으로 몸을 섞었다.

자세한 문의 유레일 홍보대행사 맥스컴 02-553-4696

타고 안 타고는 내맘대로,

유레일 플렉시 패스

너무나 유명한 유레일 패스. 이 패스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는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등 유럽의 18개 주요 국가들이다. 이번 취재에 사용된 플렉시패스(Flexi Pass)는 사용을 하든 안하든 일정 기간이 되면 효력이 소멸되는 기존의 유레일 패스의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2개월 내에 원하는 날짜에만 자유롭게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15일짜리 플렉시 패스를 구입했다면 현지에서 처음 사용한 날부터 2개월 안에 원하는 날짜만 골라 총 15일간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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