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는 말이 절로 가늘게 새어나올 즈음, 콘크리트 바닥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던 규슈의 한 온천지를 떠올렸다. 그랬지. 너는 포근했어. 흰 눈 쌓인 한 겨울에도 너는 여전히 따스하겠지.  

 글, 사진ㆍ안수련 기자｜취재협찬ㆍ화인존 02-725-8232 

평소

벳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 처음 그 이름을 듣고 뿌연 증기를 마구 내뿜으며 뿌우, 뿌 뱃고동을 울리는 배를 떠올렸다. 영국의 화가 터너가 그린 그림도 스쳐갔다. 단지 ‘벳부’라는 두 글자의 울림에 이곳저곳에서 제멋대로 엉뚱한 이미지들을 끌어온 이 골치 아픈 상상력을 어찌해야 할까? 클로로포름을 잔뜩 묻힌 수건 한 장에 마취되어 까무룩 쓰러진 ‘상상력 군’을 뒤로하고 1시간 여의 비행 끝에 마주친 벳부는, 터너의 그림만큼이나 두터운 증기로 가득차 있었다. 아, 미안해. 상상력 군.

벳부가 포근한 이유   벳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온천지다. 무려 2,848개의 원천지가 있으며, 하루 용출량만 13만 6천 킬로리터에 이른다. 한 해 동안 이곳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1천 8백만 명, 한국인 관광객은 벳부 시민의 수와 맞먹는 13만 명 정도다.  

테마파크처럼 흥미로운 온천지   벳부는 원래 화산 활동이 끊이지 않아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곳곳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유황이 피어오르는 이 화산지대를 사람들은 ‘지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20년, ‘아부라야 구마하치’가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옥’은 ‘천국’으로 변했다. ‘관광의 왕’이라고 불렸던 그는 버스로 특색 있는 온천지를 연결하는 ‘지고꾸 온센(地獄 溫泉, 지옥 온천)’ 순례를 정착시키고,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인 ‘버스 가이드(안내양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를 두어 일본 열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벳부를 유명 관광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고꾸 온센은 9개의 작은 온천지들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우미(海, 바다) 지고꾸’에서부터 지옥 온천 투어를 시작한다. 1,200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우미 지고꾸는 200도의 열탕을 하루 3,600킬로리터나 뿜어내는데 유산철이 빛에 반사되어 뽀얀 청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오니이시보즈(鬼石坊主, 스님) 지고꾸’를 제외한 다른 온천들은 우미 지고꾸에서 차로 10분 내외의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다쓰마끼(龍卷) 지고꾸’와 ‘지노이케(血の池) 지고꾸’다. 25분 간격으로 20미터 높이의 온천수를 방출하는 간헐천과 붉은 빛의 온천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 공통 패스(2,000엔)를 이용하면 보다 저렴하게 8개 지고꾸를 돌아볼 수 있다. 돌아다니다 지치면 온천 증기로 쪄낸 도시락과 달걀, 푸딩도 먹어보자.

바닷바람 맞으며 해수 찜질을   온천의 열기가 그리울 땐, 모래찜질이 딱 좋다. 벳부 해변에 위치한 ‘스나유’에서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뜨끈한 해수 찜질을 할 수 있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온천수를 담뿍 머금은 모래에 몸을 뉘이면 종업원들이 몸 위로 모래를 올린다. 이 때 어깨와 목 아래에도 도톰하게 모래를 쌓아올려 주는데, 이렇게 누워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5분도 안돼서 군불을 땐 아랫목에 놓여진 이불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뜨끈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 10분 정도 지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땀이 흐른다. 바닷바람이 반가운 건 바로 그 때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또 말리기를 몇 번 반복하다보면 15분이 금세 지나간다.

모래찜질 후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마감 후, 담, 신경통, 어깨 결림, 혈액 순환을 모조리 달고 일본으로 날아갔던 기자 역시 그 효능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입장료인 1,000엔이 절대 아깝지 않다. 

 

칸나와 무시유에서 흐느적이다   찜질방 마니아라면 ‘칸나와 무시유’에 꼭 들러볼 것. 이곳은 옛 가마에 깨끗한 물에서만 자라는 돌창포를 깐 증기탕이다(짚을 깐 증기탕은 일본에서 이곳뿐이라고 한다.

원래는 남녀 혼탕이었는데 8월에 새단장을 하면서 남탕과 여탕을 따로 만들었다). 원천수의 온도는 98도쯤 되지만 파이프로 온도를 조절해 내부는 70도

정도로 유지된다.

가마는 천장이 낮고 규모도 작아서 한번에 6명씩 밖에 들어갈 수 없다. 증기탕과 온천 이용료는 500엔. 칸나와 무시유 앞에는 온천 증기로 발을 데워주는 족욕탕이 있다. 사용은 무료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10분 이상은 사용을 삼가자.

벳부는 한겨울의 뜨거운 샤워만큼이나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그 유한성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성냥이 꺼지기 전 느꼈을 찰나의 행복이 이런 것이었을까? 눈을 감고 거꾸로 열을 센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찬 바람에 새빨갛게 언 귀는 여전히 먹먹하다. 그러나, 벳부는 여전히 포근할 것이다.

 

 

 

 

 

Travel Point

 벳부에서 정글북 찍기!

 벳부에는 유난히 동물과 관련된 시설이 많다. 일본에 보금자리를 튼 이국의 동물들과 바닷물을 끌어와 만든 수족관의 열대어들, 산 하나를 통째로 점령한 원숭이 무리들까지, 벳부의 또 다른 면모를 살펴보자.

 

 

아프리칸 사파리

 벳부에서 차로 25분 정도 떨어진 언덕에 위치한 아프리칸 사파리(2,300엔)는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다. 사파리는 크게 다섯 개 존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존에는 히말라야 곰과 아메리카 흑곰, 바버리 시프 등 산악동물, 두 번째 존에는 코뿔소와 물소, 세 번째 존에는 얼룩말, 기린 등 초식동물,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사자와 호랑이가 각각 서식하고 있다. 총 길이는 6킬로미터로 그 사이 20여 개의 문을 통과하게 된다. 정글 버스(1,000엔)를 타고 들어가면 집게를 사용해 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다. 리틀 하우스(500엔)에서는 새끼 사자를 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값비싼 애완용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페트 살롱(300엔)에 들러보자.

 

 

우미타마고 수족관

우미타마고 수족관의 로고는 ‘알’ 모양이다. 지금은 규슈에서 3번째로 큰 규모지만 아직 부화되지 않은 알처럼 계속 커나갈 것이라는 의미다. 대형 수조에는 70종 1,700여 마리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머메이드 홀의 바닥에 깔린 특수 유리를 지날 때면 물 위에 선 듯한 느낌이 든다. 바다 표범, 바다 사자, 바다 코끼리, 수달, 그리고 돌고래를 만나보려면 2층으로 가보자. 알 모양의 수조에 살고 있는 3마리의 바다 코끼리 ‘폰타’와 ‘미’, ‘뿌뿌’는 어린 관람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벳부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 스탠드에서 펼쳐지는 바다 사자와 바다 코끼리의 쇼도 놓치지 말자. 입장료는 1,890엔.

 

 

 

 

 

다카사키야마 자연 동물원

 숭이 산으로 알려진 다카사키 산에는 에도 시대부터 원숭이가 서식하 고 있었는데, 1952년부터 본격적으로 원숭이를 모으기 시작해 이듬해 3월에 정식 개장했다. 이 산에는 1,200여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3개 그룹의 원숭이들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세력 다툼에서 패한 무리가 다른 그룹에 예편되면서 현재 공식적으로는 두 개의 무리가 살고 있다. 이들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교대로 먹이를 먹으러 오는데, 이 때 방문하면 수백 마리의 원숭이 무리가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다면 절대 원숭이를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이 녀석들은 조금 오래 눈을 맞추기만 해도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비명을 질러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