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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부활 - greece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7-10-02 오전 11:44:57

myth is reborn

오래 전 사라진 무(Mu) 대륙의 환영처럼 바싹 마른 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을 법한 옛 신들의 이야기는 지구 곳곳에서 문화의 고리를 연결하고 있다. 단단한 껍데기는 무너진 신전과 쓰러진 기둥 사이에 가지런히 벗어둔 채. 글, 사진·안수련 기자 | 취재, 협찬·유레일 그룹, 유레일 한국홍보사무소, 그리스관광청, 앤디스투어

기본적으로 신화는 드라마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견뎌내고 당당하게 지위를 되찾는, 이 일련의 드라마는 셀 수 없이 많은 각색을 거듭하다 진원지인 그리스와 로마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한민국의 안방극장마저 장악했다.

로마 역사 길들이기, 혹은 길들여지기 로마의 가이드들은 웬만한 역사학자 못지않게 박학하다. 어떤 유적 앞에 서도 그들은 청산유수로 그에 얽힌 이야기를 읊어낸다. 어디든 수천 년의 역사가 담기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야기는 끊일 줄을 모른다. 그러니 ‘깃발 따라다니는 여행’을 질색하는 사람이라도 로마에서라면 재담꾼인 가이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역사의 향취를 두루 맡아볼 일이다.

여유가 있다면 ‘로마제국 흥망사’나 ‘로마인 이야기’같은 역사서를 미리 읽어두는 것도 좋다. 로마에서만큼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으니까.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고대 로마사는 이야기가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다. ‘벤허’나 ‘글래디에이터’는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만든 시대극의 고전. 실제로 콜로세움 근처에 가면 글래디에이터를 흉내낸 검투사들이 포즈를 취해주고 돈을 받기도 한다.

이들 고전을 통해 고대 로마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을 풀었다면, 이제 중급 코스를 밟을 차례다. 이번 코스를 마스터하려면 총 22시간의 수업을 받아야 한다. 얼마 전 HBO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롬(Rome)’ 이야기다. 롬은 ‘보레누스’와 ‘풀로’라는 두 명의 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역사의 큰 줄기만 남기고 수많은 가지치기와 접붙이기를 통해 만들어진 ‘신에픽(新-epic)’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서사시와 달리, 이 새로운 장르는 역사의 그늘에 묻혀있던 ‘개인’을 발굴한다. 고대 로마사라는 특급 재료 위에 감칠맛 나는 일상의 양념을 바른, 이 훌륭한 성찬은 누운 자세로 먹어도 어렵잖게 소화해낼 수 있다.

역사가 아로새겨진 도시 고대 로마의 역사는 카피톨리네 언덕의 중심, ‘카피톨’에서 시작된다. 16세기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이 언덕 위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세나토리오 궁전과 누오보 궁전, 카피톨리네 박물관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중 고대 로마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놓치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은 카피톨리네 박물관이다. 박물관 내에는 곳곳에 ‘S.P.Q.R.’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각각 ‘원로원(Senator)’, ‘민중(People)’, ‘그리고(and)’, ‘로마(Rome)’를 뜻한다. 주피터 신전이 있던 ‘그라운드 제로’, 브론즈와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콘스탄티누스 동상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재건된 ‘늑대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동상은 로마 역사에 조예 깊은 가이드가 꼭 짚어 ‘별 표 5개’를 쳐 준 유물들이니, 감상 시 참고할 것.

언덕 위가 박제된 역사를 보관해 놓은 곳이라면, 언덕 아래의 ‘로만 포룸’은 역사가 여전히 뜨거운 숨을 내쉬고 있는 곳이다. 드라마 롬을 눈여겨 본 이라면, 이곳이 웬지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카피톨의 주피터 신전으로 향하는 승전 행진을 하던 곳,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뚱뚱한 서기관이 로마 시민들에게 공고문을 읽어주던 곳이 바로 로만 포룸이었기 때문이다.

그 옆으로는 콜로세움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원래 이름은 ‘안피티아타 플라시우스’로,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은 후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폭군 네로가 죽은 뒤 그를 미워한 시민들이 네로가 지었던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새로 건물들을 지었는데, 콜로세움도 그 중 하나다. 콜로세움은 지금의 스포츠 경기장들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좌석도 요즘의 R석, S석, A석처럼, 황제와 그 가족을 위한 ‘포룸’, 로마 시민을 위한 ‘미디움’, 스탠딩석인 ‘에포티칼’ 등 3종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노예 신분의 검투사들 중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시민권을 얻기도 했는데, 이들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자 나중에는 평민들이 자원해서 검투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단다.

세계의 배꼽, 델포이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고대 로마사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B.C. 4세기 경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만큼, 그리스의 고대사는 가벼운 흥밋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 역사의 중심은 물론 아테네다. 그러나 옛 그리스인들은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세상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각각 독수리를 날렸는데, 이들이 만난 곳이 바로 델포이였다고 한다. 델포이의 유적들 가운데 ‘세계의 배꼽(옴팔로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테네에서 델포이까지는 2시간 반이 걸린다. 아침 9시 쯤 출발하면 충분히 하루 안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다. 델포이의 유적지로 향하는 길, 누군가의 넋 같은 나비가 날아들었다. 종종 지중해의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바람이 불어와 주는 이탈리아와 달리, 그리스의 산하는 금방이라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릴 듯 건조하다. 돌산과 침엽수들, 그리고 녹색 스펀지를 군데군데 심어놓은 것처럼 낮게 자란 나무들이 델포이의 풍경을 완성한다. 산을 따라 나 있는 험준한 도로 끝으로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박물관 내에는 번영했던 시절의 델포이를 재현해 놓은 구조물이 전시돼 있다. 이후 돌아보게 될 유적의 원형이다. 한때 지중해 전역에서 가장 이름 높았던 성지답게 꼭대기에 지어진 신전까지 가려면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해 올라가야 한다. 델포이는 또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도시기도 하다. 주변 여러 나라의 제왕들이 신탁을 받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신에게 금화를 바쳤기 때문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언하면서 번영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허물어진 델포이의 유적들은 여전히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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