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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물로 둘러싸여 있고 아름다운 운하와 이를 따라 늘어선 고풍스러운 집, 그리고 수많은 돌다리가 서 있다. 중국 강남지역인 장쑤성에 위치한 세 개의 마을, 통리, 무두, 루즈 이야기다. 이곳에 서서 물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시간은 그렇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역사의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철저한 이방인이 되어 도시를 관찰하던지, 아니면 도시 속으로 들어가 그곳의 정취와 어우러지며 당시의 사람이 되어 보던지. 도시에 따라, 취향에 따라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그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지만 시간을 뛰어넘는 여행의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이왕 이곳에 왔다면 후자를 택하는 게 어떨는지.

참,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기로 마음먹었다면 마을에 들어서기 전 지도는 잠시 접어두자. 복잡한 골목골목을 무작정 걸어보는 것이 이들 도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운하가 흐르는 탓에 도시가 여럿으로 나뉘어 있고, 또 나뉜 도시를 수십 개의 다리가 연결하고 있어 사실 지도가 있다고 해도 길 찾기란 만만찮으니 지도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같은 다리를 몇 번씩 건너면서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되더라도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들 도시의 매력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 많은 당신에게 경험을 빌어 미리 귀띔해두자면, 헤매긴 해도 길을 잃어 전혀 엉뚱한 곳에 떨어질 일은 없고, 그렇게 헤매는 동안 강남 지방의 참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통리에서 만나는 천 년 전 그 시간 이곳 장쑤성(江蘇省) 수향 마을로 떠난 역사 여행의 첫 번째 종착지는 통리(同里)다. 통리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인 타이호(太湖) 호반, 쑤저우에서 남동쪽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그 역사는 천 년을 거슬러 송나라 시대로 올라가는데, 그 이전에 이곳은 ‘푸투(富土)’라는 명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부자들의 땅’이란 뜻이었는데 그 이름이 너무 사치스럽다 하여 당나라 시대에 와서 ‘통리(銅里)’라고 부르다가 송나라 시대에 다시 ‘통리(同里)’라고 고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지명을 살펴보면 당나라 시대 지명과 발음은 같지만 원래 도시의 이름이었던 ‘富土’의 두 글자를 하나로 겹쳐서 제일 위 점은 버리고 다시 두 글자로 나눈 것임을 알 수 있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부자들의 땅이었다. 운하를 끼고 있어 명, 청나라 시대 교역과 수공업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것. 그로 인해 많은 원림과 사택이 지어졌는데, 복잡한 수로망으로 인해 전란의 피해를 별로 입지 않아 당시에 지어진 건물들이 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퇴사원(退思園)이다. 청나라 때 한 관리가 고향에 돌아와 1885년부터 1887년까지 2년에 걸쳐 세운 건물이다. 퇴사원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취재팀에게 청시대 정원의 장점을 집결해 강남 고전 정원의 경전 작품으로 불린다는 퇴사원의 거창한 의미를 설명해주었지만, 미안하게도 기자에게 그녀의 설명은 잘 들리지 않았다.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가운데 물을 중심으로 정자와 누각이 마치 물에 떠 있는 듯, 단아하고 우아한 풍경에 그저 이곳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과거의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으므로. 그리고 확신하건대, 이 같은 꿈을 꾸는 이는 기자뿐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들으며 정원의 정자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는 동네 사람들, 당시 손님을 위한 방이었다는 정원 앞 건물 2층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긴 여행객, 그리고 퇴사원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정원이라며 사진찍기 좋은 포인트를 안내하던 할아버지 등,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느새 주인이고 손님이 되어 있었다.

가이드는 계속해서 청나라에 세워졌다는 가음당(嘉蔭堂), 명나라 시대 진왕돈의 딸 취아와 방칭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시작된 곳이라는 진주탑(珍珠塔)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역사적, 예술적 가치에 관한 많은 설명이 이어지지만 설명 이전에 고풍스럽게, 때로는 장엄하게 서 있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 이미 천 년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리야 다리야, 내 소원은 통리는 15갈래의 강줄기로 갈라진 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그래서 통리에는 7개의 섬을 연결하는 49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반드시 건너봐야 할 다리가 있다. 세 줄기 강이 합류되는 곳에 ‘品’자 모양으로 놓여있는 태평교(太平橋), 길리교(吉利橋), 장경교(長庚橋)가 바로 그것. 건강과 행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다리로 이곳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결혼을 할 때 그리고 66번째 생일날이 되면 반드시 이 세 개의 다리를 건너면서 행운이 깃들길 기원한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재빠르게 세 개의 다리를 건너려다 돌아선다. 이곳에 당도한 순간 이미 나에게 행운은 시작되었으니까.

이곳의 다리 중에서 진주탑 근처에 있는 ‘부관교(富觀橋)’는 가장 신비한 다리로 꼽힌다. 중국 전설에 잉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용문(龍門)’이라고 하는 폭포를 뛰어넘으면 용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부관교가 바로 그 용문이다. 여기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져 내려오는데 옛날에 잉어 한 마리가 부관교를 넘어 용이 되려다 다리 위를 걸어가던 예쁜 여자에 반해 반만 다리를 넘어 머리는 용이 되고 꼬리는 잉어로 남았다는 전설이다. 그 재미있는 상상력에 피식 웃어본다.

바삐 걸을 까닭이 없는 곳이므로 때때로 운하를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는 것도 이곳에서의 낭만을 더한다. 눈에 띄는 찻집에 들어가도 좋고, 운하를 따라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도 좋다. 오랜 전통을 느끼고 싶다면 남원찻집(南園茶社)에 들러보자. 1898년, 남쪽 지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찻집으로 운하를 바라보며 홍자, 녹차, 화차 등을 맛볼 수 있다.

시간은 또다시 천오백 년을 거슬러 천 년 전 여행을 마쳤지만 아직 서기 2007년으로 되돌아올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이왕 떠난 김에 더 아득한 과거로 떠나보자. 쑤저우의 서쪽, 링옌산(零岩山)을 등에 업고 있는 도시, 무두(木瀆)는 산수가 수려하고 고전적인 정원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무두라는 이름에는 유래가 있는데 이야기는 2,500년 전 춘추말기 시대로 올라간다. 춘추말기 오(吳)나라 왕이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인 서시(西施)에게 반해 그녀를 위해 이곳에 궁전을 짓기로 했다고 한다. 궁전을 짓기 위해선 많은 목재가 필요했는데 그에 필요한 목재를 물에 흘려보내 목적지에 다다르게 한 것. 그런데 이렇게 쌓인 나무가 산 아래에서 하류를 막히게 했고 여기서 무두라는 지명이 유래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600여 년 전 명·청시대에 지어진 30개 이상의 개인정원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원은 엄가화원(嚴家花園)이다. 정원을 네 개의 작은 정원으로 분류, 각각에 ‘춘하추동’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에 맞는 느낌을 담아 정원을 꾸몄다. 이 중 여름정원에는 재미있는 형상의 돌이 있다. 말이 원숭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을 한 돌인데, 사실 가이드가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형상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얘기를 듣고 봐도 도통 어디가 말이고 어디가 원숭이인지 알 수가 없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을 바라보는 기자에게 가이드는 웃으며 말한다. 70퍼센트의 상상력이 동원돼야만 볼 수 있다고. 이런! 부족한 상상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일단 말과 원숭이가 보이는 척, 패스!

쑤저우와 상하이 사이에 자리한 루즈(直) 역시 1제곱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마을이지만 2,5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마을 입구에는 이 마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루단(端)이 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을 맞이한다. 루단은 용과 사자를 섞어 놓은 듯한, 독특한 모습의 동물로 이 마을에 평안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루즈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은 보성사(保聖寺)다. 1,500년 된 50미터 높이의 은행나무가 자리한 이곳은 기원전 503년에 건설된 사찰로, 현재의 사찰은 보수한 것이지만 사찰 내에는 여전히 중국 당나라 때의 석각, 명나라 건축 등 유물이 보전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벽을 따라 조각된 나한상. 원래는 18개의 부처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1928년 화재로 인해 9개가 무너져 지금은 9개만이 남아있다. 어떤 것은 산 속에, 어떤 것은 동굴 속에 앉아있는 등 모두 제 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하나하나의 표정이 살아있는 듯 섬세해 엄숙한 기분마저 든다.

수향을 느끼는 특별하지만 당연한 방법 이 세 도시에서 땅 위로 바쁘게 명소만을 쫓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물의 도시인 만큼 이곳을 보다 확실히 느끼는 방법은 배를 타고 돌아보는 것. 이곳의 배는 여느 관광지의 그것처럼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지만 소박한 모습에 정겨움이 느껴진다.

물 위에선 또 다른 모습의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동네 꼬마가 뛰노는 모습부터 운하의 돌계단에 걸터앉아 빨래하는 아낙네의 모습, 물고기를 잡는 새인 가마우지를 거느린 낚시꾼, 버드나무 밑에 모여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 그리고 마주 오는 배에 탄 생동감 넘치는 관광객의 얼굴까지.

그리고 이 모든 건 아슬아슬 건너 편의 배와 부딪힐 듯,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좁은 운하를 능숙하게 헤쳐나가는 뱃사공의 안내로 이루어진다. 약간의 팁을 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마을의 전통민요를 들려주기도 한다. 루즈에서 특이한 복장을 한 뱃사공의 노래는 쑤저우와 물에 관한 노래였는데, 비록 가사를 알아들을 순 없지만 귓가에 들리는 노래는 그 어떤 소리보다 정겹다. 그리고 이렇게 구수한 노랫가락을 들으며 마을 곳곳을 돌다 보면 어느새 마을 풍경 하나하나가 눈과 귀로 들어와 마음에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