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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의 도시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8-01-04 오전 11:25:48

아르누보의 도시

1904년, 노르웨이 북서부의 작은 어촌이었던 올레순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불길이 16시간 동안 860여 채의 건물을 집어 삼킨 것. 이후 도시는 당시 유럽에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아르누보 스타일로 재건되었고, 올레순은 해마다 7~8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인기 관광지로 거듭났다.

글·안수련 기자 | 사진·문유선 기자

베르겐에서 출발한 북유럽의 대표적인 크루즈 선박 후띠루튼은 하룻밤 새 올레순에 닿았다. 수도인 오슬로에서 올레순까지는 550킬로미터 거리로 차로는 8시간이 걸린다. 항구에 발을 딛는 순간 와락, 바람이 쏟아졌다. 북해 저편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마치 진군 중 세가 잔뜩 불어난 민병대처럼 거칠고 당당하게 노르웨이 북서부 연안의 작은 마을 올레순으로 진격해 왔다.

휴일의 디즈니랜드, 올레순 거센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서둘러 항구를 떴다. 매섭게 쫓아오던 바람은 항만 안쪽의 건물들 사이로 들어선 후에야 겨우 잦아들었다. 고개를 들자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장식적이고 앙증맞은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길을 따라 이어진 수십 채의 매력적인 건물들을 눈으로 훑는 동안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휴일의 디즈니랜드는,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도시의 운명을 바꾼 1904년의 대화재 올레순에는 4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왜 이들은 바람 많고 살기 힘든 이 바닷가에 정착했던 걸까?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라도 하루 이틀이면 지루해지는데 말이다. 답은 바로 ‘생선’이다. 송어, 연어, 대구 소비량의 대부분이 북서해안에서 이뤄지며, 여기서 냉동 저장된 물량은 자메이카, 브라질, 산토도밍고 등 90여 개국으로 수출된다.

올레순은 다양한 크루즈 선박들의 주요 기항지인 만큼 선박 관련 산업도 발전했다. 후띠루튼의 신형 선박 중 다수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리모콘과 전기장치 등 선박 소품의 제조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게이랑 피요르와 가까워 일년 내내 이곳을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볼 수 있다.

지금이야 나라 안팎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관광도시지만, 오래 전 올레순은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1904년 1월 23일 일어났던 대화재는 올레순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16시간동안 860여 채의 건물을 태우고 나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1명뿐이었지만 갈 곳 잃은 12,000여 명의 주민들은 넋을 잃고 폐허가 된 마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르누보의 도시를 걷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노르웨이 안팎에서 도움의 손길이 쇄도했다. 작가이자 지역장이던 알렉산더 키엘랜드(Alexander Kielland)를 비롯해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등 각국에서 찾아온 50여 명의 건축가들은 제각기 실력을 발휘해 올레순의 재건을 도왔다.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해바라기 집(Sunflower House), 오선지 위로 흐르는 선율이 건물 가득 물결치는 노르웨이의 현대 작곡가 아르네 노드하임 센터(Arne Nordheim Center) 등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인상 깊은 건물들은 모두 이때 지어진 것.

올레순은 대화재 이후 3년 만에 완벽한 아르누보 스타일로 재단장을 마쳤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 가운데 아르누보 스타일이 일부 적용된 곳이 있긴 하지만, 타운센터를 비롯해 도시 전체가 아르누보 스타일로 지어진 곳은 올레순 뿐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 해마다 7~80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현재 올레순의 인구가 4만 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올레순 아트 갤러리(Jugendstil Senteret) 아르누보 스타일의 정점에 지어졌던 올레순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올레순 아트 갤러리를 찾아보자. 2003년 개관한 올레순 아트 갤러리는 원래 약국(Svaneapoteket Pharmacy)으로 쓰였다. 건물 안쪽에 일본에서 수입해온 벽지가 발라져 있는 걸 보면 이 건물의 주인은 꽤 부유한 사람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건물 1층 안쪽에 마련된 방에서는 100여 년 전 화재가 있던 날을 인터뷰와 나레이션을 통해 재구성한 짧은 영상을 틀어준다. 2층 전시실에는 1백년 전 일본에서 수입해온 목판화와 프랑스의 포스터들이 전시돼 있다. 1층 로비에서는 아르누보 양식의 일러스트와 전문서적, 기념품들을 판매한다.

바다 속을 생중계합니다 출렁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자리잡은 아틀란틱 씨 파크(Atlanterhavsparken)는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차에서 내리니 어김없이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비도 얼굴을 때린다. 두꺼운 털옷과 장갑으로 중무장한 아이들은 빨간 볼을 하고도 마냥 좋단다. 수족관 내부는 어둠침침하다. 안으로 더 들어가니 4만 리터의 대형 수족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리벽 너머로 이 지역에 서식하는 수상생물들이 유유히 헤엄쳐 지나간다. 바다 깊은 곳 어딘가를 정육면체 모양으로 잘라 꺼내놓은 것 같다. 수족관에서 사용되는 물은 거르지 않은 해수로, 바다 속에서와 거의 같은 환경을 제공한다. 한 쪽에 설치된 낮은 수조에는 불가사리와 가재가 놓여있다. 여전히 볼이 발그레한 아이들은 불가사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여름에는 매일 오후 1시, 다이버가 수족관 안으로 들어가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레순의 ‘어깨’에 오르다 올레순을 조망하고 싶다면 악슬라(Aksla) 산으로 올라가 보자. 악슬라라는 이름은 ‘어깨’란 뜻으로 어깨처럼 각진 모양에서 나온 것. 어깨의 끝 부분이 바로 악슬라 산의 뷰 포인트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집들이 듬성듬성 지어져있다. 간혹 지붕 위에 풀이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노르웨이의 전통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인데, 풀이 자람으로써 보온 효과가 생긴다고 한다. 산 위 쪽은 시내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신흥 지구다. 국내에 한옥 붐이 불고 있는 것처럼 최근에는 다시 이 같은 전통 양식의 집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친환경에 포인트를 맞춘 이 집들은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단다.

전망대에 서면 예외 없이 거센 바닷바람이 휘몰아친다. 목도리나 모자는 물론, 옷깃을 제대로 여미지 않으면 외투까지도 날아갈 정도의 광풍이다. 그러나 비바람을 맞으며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7개의 푸른 섬들과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1910년대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건물들이 선사하는 감동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주칠 수 없는 것임을, 그들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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