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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모닝커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당신이라면, ‘커피’라는 단어만으로도 코 끝에서 살랑거리는 커피향이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이곳은 그대에게 천국임이 분명하다. 세계의 커피 애호가들에게 황금의 땅이라 불리는 중국 윈난. 그곳에서 윈난의 자연과 문화를 담뿍 받으며 자라나는 달콤 쌉싸래한 최상의 커피맛을 찾아 떠나본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데이트 신청에 이보다 좋은 말은 없다. 꼭 데이트 신청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듣는 ‘커피 한 잔 함께 하자’는 말은 어쩐지 기분이 좋다. 커피를 즐기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둥굴레 차 한 잔 할래요?” 혹은 “오렌지 주스 한 잔 할래요?”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기자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커피만 마셨다 하면 뱃속이 부글거리는 것이, 영 몸이 받아주질 않는다. 하지만 커피 취재를 떠나기 전부터 설랬던 건 ‘커피’라는 단어가 가진 묘한 매력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커피 농장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건 엄청난 행운임이 분명했다. 까다로운 재배 조건 탓에 재배지가 많지 않을뿐더러 커피로 유명한 브라질이나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에 가더라도 농장을 방문하는 건 결코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茶)로 유명한 중국 윈난에서 커피가 재배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하지 않은가.

이 모든 이유로 뱃속의 문제 따윈 말끔히 잊고 그곳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자의 뱃속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독이라는 단어는 커피와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 잠시 멈추고 커피를 한 잔 내려와야겠다. 혹, 지금 페이지를 넘기려는 당신의 다른 한 손 역시 허전하다면, 커피 한 잔 함께 하면서 윈난으로의 커피 여행에 동참하는 건 어떨는지.

첫 번째 잔, 티피카를 아세요? 윈난으로의 커피 여행은 쿤밍(昆明)에서 서쪽으로 약 500킬로미터 떨어진 바오산(保山)에 위치한 구공관(邱公館)커피회사에서 이루어졌다. 쿤밍에서 비행기로 40분, 그곳에서 또 차로 1시간 넘게 달려 미얀마와의 국경 근처 산골짜기에 가서야 구공관커피공장에 닿을 수 있었다.

거대하게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공장을 상상했는데 그곳은 30여 명 남짓한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공장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한쪽에선 커피 열매를 말리고, 다른 한쪽에선 커피콩을 일일이 손으로 고르는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이는 커피의 상태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과정으로 커피콩을 한가득 선반 위에 쏟아두고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봐가며 커피를 구별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그 세심함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커피는 감미로운 향과 뛰어난 산미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품종인 티피카(Typica)다. 티피카는 최상급으로 알려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등과 같은 품종으로 여기서 잠시 커피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커피는 보통 아라비카(Arabica)와 로브스타(Robusta)종으로 구분된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종은 향미가 풍부하고 카페인 함유량이 적은 것으로 우리가 원두 커피라고 마시는 대부분 커피가 이것이며, 로브스타종은 자극적인 향이 특징으로 주로 인스턴트 커피에 애용된다. 이 두 종의 하위에서 주목받는 몇 가지 품종이 있는데 아라비카의 재래종에 가장 가까운 대표적인 품종이 티피카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자라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병충해에 약하고 격년 수확으로 생산량 또한 낮아 일찍부터 티피카를 재배하는 타 국가에서도 산지가 전멸하거나 생산성이 높은 품종으로 대체되는 등 티피카는 점차 희귀한 품종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윈난 역시 마찬가지여서 현재 윈난 커피라고 유통되는 대부분의 커피는 아라비카와 로브르트종의 개량품종인 카티모르(Catimor)종이라고 한다. 카티모르는 티피카에 비해 더욱 많은 수확량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어 생계 수단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에겐 당연히 인기인 것.

이렇게 윈난에서도 티피카 종이 점차 사라져가는 찰나, 티피카를 남겨 윈난 커피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뛰어든 사람이 현재 구공관커피회사의 회장인 치우용한(邱永漢) 씨다. 일본에 거주하는 대만 출신의 경제전문가이자 기업가로 유명한 그는 2003년 이곳에 지금의 회사를 설립하고 재배부터 가공까지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며 윈난 티피카 커피를 통한 커피 본연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잔, 커피 재배에 유리한 윈난성 그렇다면 윈난의 커피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공부하는 김에 조금 더 살펴보자면 윈난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약 100년 전에 프랑스인 선교사에 의해서라고 한다. 당시 아라비카종이 들어왔지만 도중에 재배가 중단되는 등 여러 사정을 거치다가 5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윈난 뿐 아니라 중국의 하이난이나 광둥성 등에서도 커피가 재배되고 있지만 아라비카종을 재배하는 곳은 윈난이 유일하며 바오산, 시수앙반나(西雙版納), 위시(玉溪), 푸얼쓰(普市) 등 윈난성의 총 9개 지구에서 커피가 재배되고 있다.

윈난이 커피 재배지로 적합한 것은 이곳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 커피는 주로 열대성 기후의 강우량이 많은 곳에서 재배된다. 특히 아라비카종은 해발 1,000~3,0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좋은 품종이 생산되는데 이는 천천히 자랄수록 향미가 더 농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남쪽의 평균해발이 1,500~2,000미터, 북쪽의 해발이 3,000~4,000미터로 고도가 높아 겨울은 온난하고 여름은 서늘한 아열대 기후의 윈난성은 커피 재배에 제격인 것. 더구나 바오산은 누(怒) 강을 끼고 있어 기름진 토지는 물론 배수가 잘 되는 이점 덕에 지난해 윈난성 한 해 커피 산출량인 3만 8,550톤 중 약 8,000톤가량이 이 누강 주변에서 생산될 만큼 커피 재배에 이상적인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 번째 잔, 커피의 탄생 커피 공부는 이쯤 해 두고 본격적으로 커피 농장으로 가보자. 커피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들은 다음 날 우리는 공장에서 차로 약 20분쯤 떨어진 곳의 농장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비탈길을 따라가는 길은 다소 불편했지만 옛 시골길을 연상시키는 정겨움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차창 밖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나무를 짊어지고 가는 말과 이를 끄는 농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한참을 올라가던 차가 한 농가 앞에 멈췄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어 여기서부턴 걸어가야 한단다. 차에서 내려 옥수수와 사탕수수밭을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니 그제야 비탈길에 계단식으로 펼쳐진 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래로 보이는 농가의 풍경 감상도 잠시, 초록색 잎에 빨간 체리가 대롱대롱 매달린 생전 처음 보는 커피나무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이내 시선은 그 속에서 허리에 바구니를 두른 채 먹음직스럽게 익은 새빨간 열매를 따서 바구니에 담는 농민들로 옮겨간다. 어찌나 손놀림이 빠른지 그들의 손을 뒤쫓는 내 시선이 꼭 한 박자씩 늦는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탐스럽게 익은 열매를 하나 따서 슬쩍 베어 물었다. 커피 맛까진 아니더라도 달콤한 맛을 기대했는데 약간 매운맛이 나는 게 영 별로다.

그렇게 그들의 손을 거쳐 바구니에 담긴 열매들은 그날 바로 공장으로 옮겨진다. 당일에 가공해야 커피가 신선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커피 열매가 많은 날은 새벽까지 작업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늦어지는 작업에 얼굴을 찡그릴만도 한데 그들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가 처음 발견된 7세기경, 커피를 ‘졸음을 쫓고 영혼을 맑게 하며 신비로운 영감을 느끼게 하는 성스러운 것’이라 여겼다는데, 즐겁게 작업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 듯하다.

공장으로 옮겨진 커피는 먼저 깨끗한 물로 씻어 낸 다음 수작업을 통해 덜 익거나 속이 빈 것을 가려내고 기계로 껍질을 벗겨 낸다. 껍질을 벗겨 내면 끈적끈적한 젤리 같은 것에 둘러싸인 단단한 껍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파치먼트(Parchment)’라고 부른다. 이 파치먼트를 발효시키기 위해 물에 담아 놓는 일까지가 이날의 업무. 24시간 동안 발효시킨 파티먼트는 다음날 통풍이 잘되는 선반에 얹어 햇빛에 1주일간 말리게 된다. 그리고 윈난의 따스한 햇볕을 담뿍 받은 파치먼트는 포대에 쌓여 수확일, 수확장소, 가공방법 등이 적힌 라벨이 붙은 채 창고에 보관된다.

커피를 출하할 때가 되면 파치먼트 상태로 보관된 커피의 2차 작업이 이루어진다. 바로 처음 공장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등급을 나누는 작업으로 우선 단단한 껍질을 벗겨 그 안에 생두(生豆)를 꺼내 하나하나 농민들의 손을 거쳐 피베리(Peaberry, 커피 열매 안에는 두 쪽의 생두가 들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간혹 한 알의 생두가 들어있는 것. 수작업이 아니면 구분해낼 수가 없고, 맛 또한 뛰어나 최상급의 커피로 구분된다.), AA, A, B 등급으로 나눈다.

졸릴 때 한 잔, 친구를 기다리며 한 잔, 이렇게 별생각 없이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탄생과정을 둘러보니 몇 모금 마시다가 내버린 커피 생각에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구공관커피의 매력은 단순히 품질에만 그치지 않는다. 물론 그 풍미도 훌륭하지만 커피가 더욱 매력적인 건

바로 커피 잔 속에 윈난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윈난의 기름진 토양과 따스한 햇살 등 윈난의 자연을 품은 커피 열매는 윈난 소수민족의 정성과 땀을 통해 진한 향기를 내는 커피로 탄생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소수민족들은 주로 따이족(族)과 미아오족(苗族)으로 평소에는 각자의 농장을 가지고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다가 커피 수확기가 되면 이곳에서 커피 재배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단순히 커피 재배 과정에서만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쿤밍의 취호호텔 내에 자리하고 있는 구공관카페에는 카페의 간판부터 잔 받침대까지 소수민족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동물들과 커피콩이 어우러진 이 그림은 지금까지도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알려진 나시족(納西族)의 문자를 변형하여 디자인한 것. 커피 원두를 넣어 판매하고 있는 천 케이스에는 따이족의 전통복장에 사용하는 천 문양을 볼 수 있고 벽에 걸린 액자 또한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등 곳곳에 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어 커피와 소수민족의 문화를 동시에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설명한들 안타깝게도 글만으로는 커피의 맛과 향을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윈난에 간다면 꼭 구공관커피 한 잔을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쓴맛, 단맛이 아니라 커피의 이미지를 마신다고 생각한다는 구공관커피회사의 부사장 무라다 씨의 말처럼 작은 잔에 담긴 커피 한 잔 속에서 윈난의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소박하면서도 다채로운 소수민족의 문화를 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기자가 반한 커피를 어디서든 손쉽게 맛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구공관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윈난 내에서 단 한 곳뿐이다. 쿤밍의 취호호텔 1층과 2층에 마련된 구공관카페가 그곳으로, 이곳은 윈난의 커피를 맛보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모두 바오산의 구공관커피농장에서 재배한 것으로 티피카 외에도 카티모르종으로 만든 커피와 푸얼차, 위스키 등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고 있으며 포장된 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직접 만든 케이크 맛도 일품인데 특히 부드러운 치즈케이크가 인기다. 쿤밍의 취호호텔 외에 현재 중국에는 베이징에 다섯 개, 상하이에 한 개의 매장이 있으며 성도에 매장 오픈을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