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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곤증이었다. 왜 이렇게 자꾸 눈이 감기나 했더니 그곳에서 기자는 춘곤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12월 한겨울에 겪는 춘곤증이라니, 그 어색함이 반가워 내려앉는 눈꺼풀을 힘겹게 끌어올리면서 배시시 웃는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온종일 걷고 싶은 이곳, 봄의 도시라 불리는 쿤밍이다. 글·주소영 기자｜사진·정수임｜취재협찬·구공관(윈난)유한공사 86-871-3639893 www.qs-coffee.com, 취호호텔 86-871-5158888 www.greenlakehotel.com

중국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昆明)은 참 포근하다. 평균 해발 1,900미터의 고원에 위치한 아열대 지역으로 언제 가도 늘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 느껴지는 이곳은 그래서 ‘춘성(春城)’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중국인들에게, 특히 대륙성 기후의 혹독한 겨울에 시달리는 북방 사람들에게 ‘한번 살아보고 싶은’ 이상향 같은 도시로 여겨지는 쿤밍. 여기에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풍기는 이국적 정취와 길을 걷다 마주치는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쿤밍의 매력을 더한다.

도시를 돌아보기에도 짧은 시간에, 자꾸 졸음이 밀려온다고 자신을 탓하지 말자. 아름다운 풍광을 느끼며 유유자적 거닐다가 졸리우면 공원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며 잠시 졸아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쿤밍은 그런 곳이니까.

한겨울의 봄맞이 쿤밍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쿤밍시를 중심으로 북서로 깔린 ‘취호공원(翠湖公園)’이다. “공원이 다 그렇지 뭐”라고 한다면 그렇다, 공원이 다 그렇다. 온종일 늘어져 있어도 특별할 것도,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는 흐느적거리기에 딱 알맞은 곳. 쿤밍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네 개의 큰 호수와 호수 주위로 길에 늘어진 버드나무, 그리고 그 둘레에 자리한 정자가 쉬었다가라는 듯이 손짓하는 이곳은 쿤밍 시민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으로, 이미 그곳에는 손짓에 유혹당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취호공원은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으로도 유명한데 봄에는 화사한 벚꽃이, 여름에는 만발한 연꽃이, 가을에는 알록달록 단풍이 공원을 물들인다. 그리고 우리가 찾은 12월에는 붉은 입 갈매기 떼가 이곳을 찾았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추위를 피해 날아온 갈매기 떼의 모습이 어쩐지 타국에서 이곳을 찾은 기자의 모습과도 닮은 듯하다.

한겨울에 맞이한 봄으로의 여행은 화훼시장으로 이어진다. 쿤밍은 1990년대 초부터 화훼시장을 개발한 이래 급성장을 거듭해 중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계획 중인 곳으로 도심 곳곳에서 크고 작은 화훼시장을 만날 수 있다. 윈난 최대이자 중국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인 두남화훼시장 역시 쿤밍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새벽 3시면 중국 각지에서 도매상들이 달려와 꽃과 화분을 트럭째 실어간다는 말에 아쉽지만 취호공원 근처 작은 화훼시장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향긋한 꽃향기에 코가 먼저 반응한다. 겉보기엔 작은 듯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골목골목으로 이어지는 점포가 수십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이곳에는 각양각색의 장미, 카네이션, 심비디움 등 다양한 종류의 꽃과 화분이 줄지어 있다.

꽃 내음에 취한 채 쿤밍시 북쪽에 위치한 ‘위안통쓰(園通寺)’로 향한다. 1,200년 역사를 지닌 쿤밍시 최대 규모의 불교사찰인 이곳은 언제나 참배객들로 북적인다. 가운데 연못을 중심으로 천왕전, 원통보전, 팔각정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원통보전 뒤편에 있는 태국풍의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동불전 내부에는 1990년 태국 불교협회에서 기증한 동물상이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윈난의 예술이 숨쉬는 곳 베이징의 ‘따산즈(大山子)’, 상하이의 ‘모간산루(莫干山路)’ 같은 예술가 거리의 모티브가 된 곳이 바로 쿤밍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양한 문화가 숨쉬는 이곳에서 예술이 발달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쿤밍의 예술가 거리라 불리는 ‘추앙쿠(創庫, Loft)’는 시바루(西路)에 위치한다. 빈 공장이 있던 이곳에 2000년부터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추앙쿠가 형성되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많은 예술가들이 대도시로 옮겨가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엔 이르다. 적지만 여전히 각종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와 카페, 소수민족 공연장 등이 있어 쿤밍의 예술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유독 관심을 끄는 곳은 ‘윈난위안셩팡민족문화발전센터(雲南源生族民族文化發展中心)’라는 이름의 공연장. 윈난 TV 다큐멘터리 PD 출신의 리우샤오진(劉曉津)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소수민족들이 그들의 사랑 노래, 양떼몰이 노래 등을 춤사위와 함께 선보이는 원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연출도, 배우도 모두 소수민족들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가져 뉴욕 등 미국 동부와 프랑스에서 초청공연을 갖기도 했다. 공연장 밖에는 카페가 있어서 공연 관람 후 차 한잔 마시기에도 좋다.

바로 옆에 자리한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카페, ‘노르디카(TCG Nordica)’도 이국적 정취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갤러리와 카페의 복합형태로 북유럽 작품과 음식 등 북유럽 문화를 만날 수 있으며 토요일마다 춤, 노래, 개인연주회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카페 윗층에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는 말에 구경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취재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업실을 구경시켜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까다로울거라는 예상과 달리 흔쾌히 작업실 문을 열어 준 그는 윈난대학교 회화과 교수이자 중국의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인 마오쉬후이(毛旭輝) 씨. 알고보니 위안셩팡 공연장 운영자의 남편이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쭉 쿤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계를 다니면서 전시회를 열다가도 작업할 때면 늘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배가 고프면 멈춰라 여행지에서의 먹거리는 늘 여행자의 희비를 엇갈리게 한다. 아무리 볼거리가 많아도 먹거리가 마땅찮으면 여행의 묘미는 반으로 줄어들게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쿤밍은 (적어도 기자에게는) 여행을 두 배쯤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한 곳이다. 소수민족이 많아 쿤밍을 중심으로 각 지방의 소수민족 요리가 다양하게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윈난에 왔다면 꼭 맛봐야 할 음식이 바로 ‘궈챠오미시엔(過橋米線)’이라고 불리는 쌀국수다. 그 맛을 보고자 들어선 취호공원 근처의 쌀국수집 ‘챠오샹위안(江氏兄弟橋香園)’은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주문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궈챠오미시엔을 주문하면 세 가지가 서빙된다. 면발과 뜨거운 닭 기름 국물, 그 안에 넣는 각종 채소와 고기 등의 음식재료가 그것으로, 먹는 방법은 먼저 뜨거운 국물에 익힐 것부터 차례로 넣고, 재료가 다 익으면 면발을 넣은 후 입맛에 맞게 간장과 고추기름을 뿌려 먹으면 된다.

뽀얀 국물의 깊은맛도 일품이지만 음식에 얽힌 유래는 음식의 맛을 더한다. 옛날, 윈난성 남쪽 ‘멍쯔(蒙自)’라는 곳의 작은 섬에서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위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가곤 했는데 매번 섬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 그곳까지 가는 동안에 음식이 식어버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암탉을 잡아 뚝배기에 푹 삶은 다음 그 국물에 면을 넣어 가져갔는데 놀랍게도 남편이 음식을 다 먹을 동안 닭고기 국물이 식지 않았던 것. 이후 아내는 여기에 국수와 다양한 재료를 넣어 남편에게 먹였고 사람들은 선비의 아내가 매일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다리를 건너다녔다 하여 이 음식을 ‘다리를 건넌 쌀국수’라는 뜻의 ‘궈챠오미시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녀처럼 정성으로 챙겨줄 남편은 없지만 어쨌든 따뜻한 닭 국물과 함께 먹는 쌀국수 맛은 별미임이 분명했다.

쌀국수로 간단히 배를 채웠다면 저녁엔 윈난의 전통 가정식 요리를 먹어보자. ‘홍떠우위안(紅豆園)’은 쿤밍 시민들이 즐겨 찾는 윈난요리점으로 쌀로 만든 떡 ‘얼콰이(餌)’를 비롯해 소고기를 튀겨 만든 매콤한 맛의 ‘간빠(干巴)’, 감자튀김 요리 등을 1인당 20~30위안으로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윈난의 먹거리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샹윈메이스청(祥雲美食城)’도 저렴한 가격에 윈난 음식을 맛보기에 좋다. 쌀국수, 윈난식 버섯 샤브샤브, 바비큐와 각종 꼬치 가게가 시장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데 너무 많아 어느 곳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가장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가게에 인심을 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듯.

고급스러운 곳을 찾는다면 ‘스핑후이관(石屛會館)’과 ‘추이후후이(翠湖會)’를 추천한다. 스핑후이관에서는 옛 건물의 고풍스러움을, 추이후후이에서는 모던한 분위기의 최고급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또한 추이후후이는 갤러리를 함께 운영해 식사와 세계적인 윈난 출신 작가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총 16개의 크고 작은 룸이 마련되어 있어 모임을 하기에도 적합하다.

식사 후 마시는 차 한잔, 푸얼차 윈난에 왔다면 절대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푸얼차(普茶)’다. 소화를 촉진하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하여 우리나라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푸얼차의 원산지가 바로 윈난이기 때문. 그 까닭에 쿤밍에서는 서울의 커피전문점만큼이나 많은 푸얼찻집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찻집의 개념처럼 차만 마시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푸얼차를 마신 후 마음에 드는 차를 구입하는 곳. ‘롱룬(龍潤)’, ‘위린차항(雨林茶行)’ 등 체인으로 운영하는 고급 찻집 외에도 골목골목에 자리한 아무 푸얼찻집에 들어가 푸얼차를 사겠다고 하면 찻집 주인이 정성스럽게 차를 대접한다. 공짜로 몇 잔을 마신다 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단, 내어주는 차를 마시며 윈난과 푸얼차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니 이 점은 유의할 것.

차를 다량으로 구입하고 싶다면 쿤밍에서 북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차 도매시장에 가보자. 얼핏 봐도 1,000개 이상의 찻가게가 들어선 이곳에서는 푸얼차 외에도 녹차, 홍차, 철관음 등 다양한 중국 차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느릿느릿 걸어라 맛있는 음식에 차 한잔까지 하고,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지면 난핑지에(南街)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차가 없는 보행자 거리로 쿤밍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쇼핑거리이자 곳곳에 들어선 고급스런 건물이 유럽풍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 난핑지에와 정이루(中必路)가 교차하는 사거리의 쓰따이광창(時代廣場) 바닥에는 청나라 시대 쿤밍의 모습이 그려진 옛 지도가 새겨져 있는데 지도 위에 서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보행자 거리 한쪽 골목에 즐비한 포장마차에서 꼬치를 하나 사서 입에 물고 길거리를 활보해보자. 청나라 시대 사진사, 물 긷는 청년 등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동상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그 길을 따라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과거 쌀과 옷가지 들을 팔았던 쿤밍 최고(最古)의 상점거리 통런지에(同仁街)를 지나 어슬렁거리며 걷다보면 쿤밍의 상징이라 불리는 ‘진마비지팡(金馬碧鷄坊)’에 다다른다. 명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4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진마비지팡은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문, ‘진마팡(金馬坊)’과 ‘비지팡(碧鷄坊)’을 가리키는 말로 60년에 한번씩 비지팡 뒤로 해가 지고, 진마팡 뒤로 달이 뜨면 양쪽 문 가운데 광장에서 두개의 그림자가 정확하게 포개진다고 한다. 진마비지팡 뒤쪽으로는 쿤밍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술집과 바 등이 들어서 있다.

쿤밍의 밤을 즐기기에는 윈난대학교 뒤편의 문화거리라 불리는 윈린지에(文林街)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이대 앞 골목 같은 곳으로 한국식당뿐 아니라 인디아, 타이, 일본 등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으며 이국적 찻집과 바가 늘어서 있어 특히 외국인들에게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