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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예술과 21세기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8-03-06 오후 12:05:51

vienna

City of brilliant Art

20세기의 예술과 21세기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황금빛으로 빛나는 가치를 아는 이에겐 그 자체로 빛나는 보석상자가 된다.

글·김선희 기자 | 사진·문유선 기자 | 취재협찬·오스트리아관광청 02-773-6428 www.austria.info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비엔나국제공항에 내려 세관을 향해 좁은 복도를 걷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벽면의 광고판을 메우고 있는 클림트의 ‘키스’였다. 팬시 숍이나 명화를 테마로 한 기념품 숍에서나 보던 그림이 비엔나에서는 도시의 얼굴인 공항에서부터 사람들을 반긴다. 그가 존재하던 공간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 여기는 비엔나다.

클림트를 찾아가는 길 비엔나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도로인 링을 따라 시내로 접어드는 길, 아주 평범한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빈 국립대학교의 미술대학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응용미술관(MAK)으로 변신한 건물의 평범한 외관을 바라보다 입이 떡 벌어진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화려한 대형벽화가 눈에 쏙 들어왔다. 비엔나에서 두 번째로 보게 되는 클림트(Gustav Klimt)의 흔적이다. 눈부신 황금빛 바탕에 파란 가운을 입은 여인이 황금관을 쓴 채 선명한 빨강의 카울을 두르고 있는 그림은 ‘정의의 여신’을 나타낸 것이다. 오른쪽 발아래의 올빼미가 여신을 돕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림은 백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려하다. 확실한 사실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때 유럽을 장악했던 히틀러가 여러 차례 빈 미술대학에 입학을 청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클림트의 족적을 따라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여러 미술관이 모여 있는 MQ(Museums Quartier Wien) 내의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이다. 지하에서부터 3층에 이르는 전시관에 클림트와 에곤 실레(Egon Schiele)를 비롯하여 콜로만 모제르(Koloman Moser) 등 여러 화가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지만, 사실 이 곳은 클림트와 더불어 실레의 작품을 많이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럽의 많은 미술관 중, 클림트와 실레의 작품으로 특화한 것이나 마찬가지. 1층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걸린 액자가 실레의 자화상이다. 붉은 꽈리를 배경으로 경계하는 눈빛의 그림은 실레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실레 작품의 대부분은 누드이거나 일그러진 형태의, 일반인의 잣대로는 조금은 비정상적인 것이기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 지난 2005년에는 그런 실레의 이미지와 맞게 누드로 입장하는 관람객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대성황을 이뤘다는 후문. 연이어 오토 바그너가 디자인한 성당을 그린 그림, 실레 자신의 누드화를 비롯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클림트의 대형 그림 등이 가득 채우고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은 그들의 팬에게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나 마찬가지이다. 2층에 마련된 기프트 숍에도 클림트와 실레의 그림을 테마로 한 다이어리와 뮤직박스, 액자 등의 기념품들이 가득하다.

자칭 클림트의 마니아라면, 특히 클림트의 대표적인 그림 ‘키스’에 목말라 있다면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은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다. 쇤부른 궁전이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졌다면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디자인한 벨베데레는 정문에서부터 황제를 상징하는 사자 문양이 새겨져 남성적 아름다움을 발한다. ‘좋은 전망의 테라스’라는 의미에서 짐작되듯 수려한 전망을 자랑하는데, 터키의 침략에서 오스트리아를 구해낸 장군의 개인 별궁으로 쓰였다. 상궁과 하궁이 대칭을 이루고 있고, 그중 하궁이 오스트리아 미술관(쉝terreichishe Galerie)으로 변모했으며, 클림트의 ‘키스’ 역시 여기에 있다.

유럽의 어느 미술관을 가도 마찬가지이듯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가득하지만 구구절절한 감상평은 접어두자. 벨베데레를 찾은 이유는 ‘키스’를 직접 보겠다는 일념이 가득했으니. 수많은 작품들을 지나고 지나 3층에 올라서도 몇 개의 방을 더 지났을 때, 비로소 고대하던 ‘키스’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서 마주보이는 벽면 중간에 전시된 그림은 상상보다 작품 사이즈가 크고, 또 화려했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황금빛 색채와 남자의 품에 안긴 채 다른 일은 잊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유리관 안에서도 충분히 그 아우라를 풍겨내고 있었다. 거의 두 전시관에 한명 꼴로 지키고 선 안내요원이 혹여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이댈 세라 근엄한 눈동자를 빨리 움직인다. 그저 멍 하니, 입을 헤 벌린 채, 목이 아프도록 그림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황홀경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여전히 감탄하는 눈빛으로 그림을 보고 선 사람들. 누군가는 잽싸게도 안내요원의 시선을 피해 후다닥 카메라를 꺼내 찍기도 한다. 키스만큼이나 유명한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도 같은 방에 전시되어 있었지만, 미안하리만치 시선은 줄기차게 키스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이나 옮길 수 없었다.

클림트의 또 다른 대작, ‘베토벤 프리즈’를 보려면 제체시온(Secession)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네모난 하얀 건물의 루프에 번쩍이는 황금돔이 얹혀져 있고, ‘시대에는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예술의 자유를’이라고 금으로 새겨진 문구도 멋있거니와 칼스 플라츠(Karls Platz) 광장과 비엔나의 큰 재래시장인 나슈마르크트(Naschmarkt)가 교차되는 지점에 있는 탓에 어디에서든 눈에 쉽게 들어온다.

‘황금빛’이라는 수식어에서 짐작했듯 이 역시 클림트의 솜씨다. 사실 클림트와 다른 화가들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 그의 작품에는 유독 황금이 많이 쓰인다는 거다. 그저 물감이 아니라 정말 황금을 물감에 섞어 쓴 것은 그가 엄청난 부자여서라기 보다, 아버지가 금 세공업자였던 까닭에 집에서 금이며 은가루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다(금 세공업자였으니 부유했을 수도 있겠다). 클림트와 당시의 화가, 건축가들을 휩쓸었던 유겐트슈틸(Jugendstil) 운동의 본산인 제체시온의 내부는 그만큼 심플하고 자유롭다. 지하 전시관의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클림트의 프레스코화 ‘베토벤 프리즈’를 제외하곤 사진 촬영도 허락된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인 ‘환희의 송가’를 표현했다는 작품은 길이 34미터, 폭이 2미터 2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작이다. 행복에 대한 동경과 적대하는 힘, 행복에 대한 동경이 시 속에 녹아 있는 것을 찾아낸다는 등 3부로 나뉘어 있는데 당시 클림트가 스케치한 노트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그의 손길이 온전히 전달되는 듯 묘한 느낌이다.

아름다운 카를 교회 제체시온에서 나와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고, 역시 유겐트슈틸의 대표주자인 건축가 오토 바그너가 만든 칼스 플라츠 역사(Karlsplatz Stadtbahn Pavillon)를 지나면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풍의 교회로 칭송받는 피셔 폰 에를라흐(Fisher von Erlach)의 역작인 카를 교회(Karlskirche)에 닿는다. 교회 정문의 양 옆에는 10층에 걸쳐 예수의 일대기를 조각해 놓은 나선형의 부조가 새겨진 둥근 첨탑이 서 있고, 정면에는 16세기에 유럽을 지배했던 페스트에 걸린 시민의 참상이 묘사되어 있다.

오후 6시가 되어갈 무렵, 교회가 문을 닫을 시간이어서 팸플릿만 얻고 나가려는데 맘 좋은 스태프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조도가 낮아 컴컴하다 싶은 실내로 들어서자 그 유명한 천장화보다 눈에 띄는 건 단상에 죽 늘어선 사람들이다. 다음날의 일요 미사를 위해 성가대원들이 연습이라도 하는지 스웨터에 편한 바지차림이었지만 잡담하나 없이 악보를 받쳐 들고 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혹여 그들의 연습에 방해가 될 세라, 관광객들은 조심조심 발길을 옮기면서도 시선은 연신 천장에 주고 있다. 한창 보수공사 중이라 천장의 절반이 철골 받침대에 가려져 있지만 엄숙한 아우라는 여전하다. 성 보로메오가 천사들에 둘러싸여 승천하는 장면을 묘사한 제단의 조각도 정교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벽면의 황금은 점차 빛이 바래가지만 낡은 그대로 세월의 옷을 덧입은 성당에서 들려오는 성가대원들의 노랫소리와 핸드벨 연주음에 교회 안의 공기는 한층 정겹고 편안하다.

대륙을 아우르는 문화 전시관 여전히 강렬한 포스를 풍기는 마리아 테레지아 스태츄가 있는 광장을 사이에 두고 자연사 박물관과 대칭을 이루는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사람들이 위압감을 느끼도록 웅장하게 만들어진 정문과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진 높은 천장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규모와 화려함에서 유럽 3대 미술관의 하나로 꼽히는 미술사 박물관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했던 방대한 그림과 더불어 신성로마시대에 로마에서 가져온 황제가 사용하던 각종 물품들과 역대 로마 황제들의 두상, 이집트에서 가져온 미라를 비롯해 피라미드의 일부분과 스핑크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온 바닥 문양 등 조각과 응용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화려한 중앙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3층 건물의 각 층에는 시대별 또는 작가별로 나뉜 명화가 넓은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 시대별로 차례대로 그림을 전시해 놓은 덕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화풍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오고, 루벤스와 라파엘로, 베르메르, 벨라스케스 등 미술계의 거장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몇몇 전시관에는 엑스레이를 투과해 그림이 탄생되던 당시의 어떤 순서로 스케치선이 그려졌는지, 어떤 색이 어떤 순서로 덧입혀졌는지까지 볼 수 있도록 공개해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오래 머문다.

그림에 조예가 있거나, 배우려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이 미술사 박물관이다. 아직 한국어는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언어로 미술품에 대한 안내를 들을 수 있는 기기가 마련되어 있어 영어나 일어 등 비교적 친숙한 언어를 통해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직선은 죄악이다 누군가가 오스트리아에서, 아니 비엔나에서 나름 ‘예술기행’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면, 누구나 좋아하는 명화 감상을 위한 미술관 순례를 제외했을 때 적극 추천하고픈 것이 독특한 아웃사이더 건축가인 프리덴스라이히 훈더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의 행로를 밟는 일이다. ‘직선은 죄악이다’라고 할 만큼 유연한 흐름과 자연적인 선을 중요시했던 그는 오스트리아의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 중 한명이다.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에서는 훈더트바서를 꼽을 수 있는데, 각자 개성 넘치는 건축 디자인도 멋지지만 사실 화려한 색채감각에서는 훈더트바서가 한 수 위가 아닐까 싶다.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 누구나 보아도 ‘훈더트바서표’ 건물임을 대번에 알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손에 꼽히는 베스트 작품 중 하나가 도나우강 인근의 스피테라우(Spittelay) 지역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이다. 혐오시설로 취급받던 쓰레기 소각장을 재디자인한 것은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인 시설을 만들자는 비엔나 시장의 의뢰를 받게 되면서다. 동화 속 건물처럼 예쁜 색감과 독특한 외관도 외관이지만 쓰레기 태운 연기를 7번에 걸친 필터링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정화해 오염을 줄이고, 쓰레기를 태운 에너지가 비엔나 난방에너지의 무려 30퍼센트를 담당하는 발전적인 결과를 낳았다.

1986년에 완공된 시영아파트인 훈더트바서하우스(Hundertwasser Haus)는 그의 또 다른 역작이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볼링핀을 연상시키는 아파트 로비의 기둥과 높낮이가 다른 층, 모자이크 타일을 덧입힌 듯 부분부분 다른 색상으로 칠해진 파스텔톤 컬러는 누가 봐도, 어디서 봐도 독특하다. 자연주의자인 그답게 실내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건물 내의 식물은 가지가 밖으로 뻗을 수 있도록, 실외의 식물은 안으로 뻗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도 특징이다. 아파트 로비나 마당의 벽도 고르지 않다. 움푹 패었다가 불룩 솟기도 하고 각자 다른 색상의 타일을 붙여 변화 있는 바닥을 만들어 놓았는가 하면 아파트 건물 벽면도 어떤 부분은 크기가 다른 창이 나 있고, 또 어떤 면은 일반 건축물처럼 회색의 벽에 네모반듯한 창이 규칙적으로 나 있기도 하다. 일부러 세세하게 디자인하기도 힘들 만큼 예측불허의 아파트는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다. 이 아파트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훈더트바서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그의 사후 더욱 가치가 높아지며 지금은 사지도 팔지도 못 하도록 되어 있다고.

아파트 인근의 쿤스트하우스 빈(Kunsthaus Wien)은 훈더트바서가 세운 독특한 미술관이다. 건물 한 편의 카페 역시 평범하지 않다. 천창을 통해 빛이 가득 들어오는 카페의 울퉁불퉁한 바닥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는 어느 것 하나 디자인이나 색이 같지 않다. 팔걸이가 있는 것, 없는 것, 삼각형이나 사각형, 원형의 테이블 등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아니 미처 상상할 수 없는 이상의 기발함이 그의 건축물에 아주 듬뿍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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