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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8-06-02 오전 9:40:49

Auto Travel Bongpyong

When the Buckwheat Blooms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직 때가 아니기에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표현했듯 ‘소금을 뿌려놓은 것처럼’ 새하얀 메밀꽃밭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왁자지껄한 봉평장과 허생원의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담고 있는 물레방앗간, 동이가 허생원을 등에 업고 건너던 개울가 등 모든 것이 제자리인 봉평은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가 나귀를 이끌고 거닐던 오래전 그 여름날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글 주소영 기자 | 사진 조중민 기자

봉평으로 가는 길은 편했다. 지난겨울 주말마다 내달리던 스키장 근처인 탓도 있지만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동네여서 그런지 어쩐지 익숙한 느낌 때문이었다. 솔직히 너무 예전에 읽었던 터라 소설의 내용 하나하나가 다 기억나진 않았다. 그땐 소설의 문학적 의의와 배경, 문체의 특성 등을 줄줄이 읊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받아 적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그곳에 가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소설의 조각을 맞출 수 있으리라. 출근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복잡한 서울시내를 빠져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장평 IC로 접어들자 봉평으로 향하는 6번 국도가 나타났다. 비록 나귀에 짐을 싣고 터벅터벅 걷는 대신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타고 달리지만 마음만큼은 소설 속 그날로 빠져든다.

장돌뱅이의 삶이 녹아있는 곳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봉평에서의 여행은 소설 속 장돌뱅이 허생원과 조선달이 큰 수확을 얻지 못하고 판을 접는 봉평장에서 시작됐다. 봉평면 시내 한가운데 ‘봉평재래시장’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시장통은 날짜 끝자리가 2, 7이 들어간 날이면 장사꾼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외지에서 모여든 관광객으로 아침부터 북적인다.

골목에 들어서자 좁은 길 양쪽으로 정겨운 시골장터 풍경이 펼쳐진다. 출출했던 탓인지 메밀전과 부꾸미를 부치는 아주머니에게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메밀 반죽을 얇게 두르고 손으로 죽죽 찢은 듯한 절인 배추와 파 몇 가닥 올려놓고 부쳤을 뿐인데 쫄깃하면서 담백한 그 맛이 기가 막힌다. 그 옆으로 메밀가루, 메밀묵, 메밀꽃술, 메밀떡 등 봉평의 특산물인 메밀로 만든 먹을거리뿐 아니라 집에서 재배한 곡식부터 산나물, 반찬거리, 생필품, 농기구, 의류, 신발 등을 좌판에 펼쳐놓고 장사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봉평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올챙이 국수다. “올챙이 국수요?”하고 깜짝 놀라 되물으니 그 모양이 올챙이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은 옥수수로 만든 국수라고 한다. 강냉이 알맹이를 맷돌에 갈아 거른 후 침전물을 삶아 면발을 뽑아내 만든 올챙이 국수는 면발의 길이가 짧아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데 이름만큼이나 낯선 맛이지만 간장이나 묵은 김치를 얹어 함께 먹으면 한 그릇이 금방이다. 도란도란 모여앉아 조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과 장돌뱅이의 구수한 입담까지. 이제는 현대식 건물도 제법 들어서고 규모도 예전만큼 못하지만 강원도 아주머니들의 훈훈한 인심과 시끌벅적한 장터의 흥겨움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봉평에는 지금도 그들이 산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을 뒤로하고 빠져나오면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이효석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자 조성된 가산공원이 펼쳐진다. 아담한 공원에는 이효석 선생의 흉상과 문학비가 세워져 있는데 뒤쪽으로는 허생원과 동이가 처음 만나는 충주집이 자리한다. 원래 충주집은 봉평장에 있었지만 터만 남아 가산공원에 복원되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어쩐지 충주집에게 수작을 거는 동이와 이를 본 허생원의 발끈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바로 옆에 자리한 1930년대 초가집으로 재현한 먹거리 장터는 아쉽게도 봉평 메밀꽃 축제 기간에만 운영한다고 한다.

가산공원 옆으로는 소설에서 물에 빠진 허생원을 동이가 업고 건넜던 개울이 흐른다. 지금은 남안교라는 콘크리트 다리가 세워져 있지만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면 소설 속 분위기를 재현해놓은 섶다리가 걸려 있어 옛 모습을 말해준다. 꼭 한 사람만 건널 수 있을 너비의 섶다리는 걸을 때마다 진흙으로 다져놓은 다리가 조금씩 들어가는데 얕은 개울 위임에도 아찔한 기분과 함께 쏠쏠한 재미를 준다.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다리를 건너면 도로가 너머로 허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의 ‘그날 밤’ 추억이 담긴 물레방앗간이 자리한다. 메밀꽃 필 무렵이 되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던 바로 그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작년 홍수로 떠내려가 복구했다는 물레방앗간 뒤로는 산책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 끝에서 만나게 되는 곳은 가산 이효석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효석문학관이다. 이효석 선생의 동상이 있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그곳에 세워진 붉은 벽돌의 건물 안에는 이효석 선생의 성장과정과 그의 소설 전시실,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등이 있으며 메밀의 품종과 효능, 다양한 메밀 음식을 소개한 메밀 자료실도 함께 자리한다.

봉평에서 떠난 소설 속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이효석 생가다. 이효석 선생이 태어나 13세가 되던 1907년까지 살았다는 생가는 효석문학관에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다. 특별히 볼거리는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근처에 평창군청에서 따로 복원해놓은 집이 있으므로 방문해보자.

폐교의 화려한 변신, 무이예술관

소설 속 동네를 찾아 시작된 여행이지만 봉평까지 와서 이것만 보고 돌아가기엔 볼거리가 너무 많은 곳이 또한 봉평이다. 그중에서도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무이예술관은 초등학교 교실이라는 희미해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다양한 예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 2001년 회화와 조각, 도예, 서예 전문가 4명이 모여 개관한 무이예술관은 이효석 생가에서 휘닉스파크 방면으로 차로 5분이면 닿을 수 있다.

교문을 통해 들어가면 아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이 펼쳐지는데 지금은 조각공원으로 변해 오상욱 조각가의 다양한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건물 안은 그림 전시실과 서예 전시실, 무이도방과 체험실이 자리한다. 그림 전시실은 30여 년간 메밀꽃만 그려온 정연화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곳으로 이곳에 걸린 20여 점의 그림은 비슷한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 그림 속 풍경이 어찌나 낭만적이던지 실제 메밀꽃의 풍경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주면서 동시에 실제 그 모습을 꼭 보고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서예 전시실에는 소하 이천섭 선생의 서예작품을, 무이도방에는 권순범 도예가가 빚어낸 전통 다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한쪽 벽에는 정연서 화백의 그림과 이천섭 선생의 서체로 꾸며진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만날 수 있다. 작품 감상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도자기를 직접 빚거나 메밀꽃을 그려 즉석에서 핸드폰고리나 열쇠고리, 목걸이를 만들 수 있으며 판화와 서예 체험 교실도 준비되어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예술관의 2층에 마련된 층층계단 찻집에 가보자. 탁 트인 공간에서 조각공원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메밀꽃차와 커피, 전통차 등을 무이도방 다기로 즐길 수 있다.

박스

Travel Info

잠잘 곳 봉평면 백운계곡 최상류에 위치한 팬션 ‘숲 속의 요정’은 이름 그대로 마치 동화 속 요정이 살고 있을 듯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단지형 팬션이다. 건물은 관리 단지를 포함해 총 5개로 뾰족한 첨탑 지붕의 1, 2차와 화려한 돔 지붕의 3, 5차 단지에 총 18개동 83세대가 완공되어 운영되고 있다. 설계 단계부터 웰빙 개념을 도입하여 모든 건물이 천연 원목으로 시공되었으며 40제곱미터(12평형)에서 198제곱미터(60평형)까지 총 7가지의 넓이로 커플룸, 공주룸, 가족룸, 단체룸 등 다양한 테마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화려한 외관만큼이나 내부 인테리어에서도 특별함을 엿볼 수 있다. 주방용품과 욕실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있는 것은 물론 모든 객실에는 사방이 탁 트인 데크에서 봉평의 자연을 느끼며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바비큐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밖에 어린이 놀이터와 카페, 수영장, 노래방, PC방, 세미나실, 매점, 그리고 뒷산을 따라 조성된 한적한 등산로까지, 이곳에서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전화 033-336-2225 홈페이지 elfpen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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