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an Fiesta in Ensenada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머금은 도시
광활한 멕시코 모서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라 한들 활화산처럼 넘쳐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어찌 숨길 수 있을까. 거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매혹적인 라틴 기타 소리에 몸을 맡기고 데킬라 한 잔에, 그리고 이 정열적인 도시에 취해보자.
 글, 사진 김은지 기자 | 취재협찬 로얄캐리비안크루즈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엔세나다(Ensenada)는 멕시코 남부의 작은 항구 도시다. 어쩌면 엔세나다의 입구라고 말할 수 있는 항구에 들어서면 초록, 하양, 빨강의 선명한 색감이 눈부신, 집채만한 멕시코 국기가 크게 펄럭이며 이방인들을 맞이한다. 보통은 주말이나 여름에 수많은 미국인들이 라틴 아메라카의 관문이 되는 이곳으로 휴양을 즐기거나, 저렴한 쇼핑을 위해 몰려오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 거대한 크루즈선이 정박하는 엔세나다는 세계 각국에서 온 듯한 관광객들로 인해 언제나 거리가 넘쳐난다. 일찍이 프랑스의 작가 자크 페레가 ‘세계에서 가장 따분하지 않은 나라’라고 말한 그 멕시코 땅에 우리가 들어선 것이다.

가까운 미국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
미국의 국경선을 살짝 넘었을 뿐인데, 마치 하늘에 금이라도 그어 놓은 듯 엔세나다의 공기는 캘리포니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진 것도 한몫 했겠지만 캘리포니아의 해변이 자연과 조화된 잘 꾸며진 건물 등 활기찬 기운이 넘친다고 표현한다면, 이곳은 가공되지 않은 멕시코 특유의 열정과 때 묻지 않은 삶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면 적당할까. 멀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미국에 반해, 쉬이 다가서지 못했던 ‘먼 나라’ 멕시코에 대한 상상을 눈앞의 현실로 바꿔 줄 엔세나다 여행은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아돌포 로페즈 마테오스 거리(Ave. Adolfo Lopez Mateos)’로부터 시작된다. 그 따가운 햇살 아래 뿌연 공기와 다소 거칠고, 지저분한 거리의 풍경은 어쩌면 가장 인상적인 기억의 조각이다. 유일한 번화가로 꼽히는 시가지에는 술집과 수많은 레스토랑, 기념품 숍이 즐비한데, 외국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로 작은 바가지나 씌워볼 생각에 작정을 하고 덤비는 호객꾼들이 너도나도 손목을 잡아끌어 마치 이태원이나 도떼기시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엔세나다에는 어린아이를 동반해 돈을 얻어내는 행상들이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순박한 미소를 가득 띄며 다가오는 아이들의 눈에는 가난하지만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선량함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각설하고, 온갖 아부를 하며 소란스럽게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부르는 값은 실제 물가의 몇 배가 되는지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국적인 기념품을 골라잡고, 점원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며 한 푼, 두 푼 가격을 깎는 소소한 묘미를 맛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미국과 근접해 있다는 이유로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실정이기는 하지만 사실 국내 가격과 비교하자면 물건값이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하지만 멕시코가 마야 문명의 발상지라서 그런 것일까. 각종 기념품들은 색상이며, 아이디어며 거의 예술품에 가까운 수준을 자랑한다. 이곳은 특히 다양한 종류의 수공예품을 비롯 은 세공품, 천연가죽 제품, 도자기 등이 유명하다. 판초 스타일의 전통 의상이나 솜브레로라고 불리는 챙이 넓고 뾰족한 모자, 또 웨스턴 부츠나 전통 악기는 멕시코 특유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려주는 훌륭한 눈요기거리다.

열정 가득한 멕시코의 축제
우리가 갔을 때 운 좋게도 엔세나다는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멕시코는 축제의 나라다. 일년 내내 축제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종류별, 지방별 축제를 모두 합하면 한 해에 5천여 개의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정말 말 다했다. 그만큼 그들의 국민성 역시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듯 하다. 멕시코의 축제는 피에스타(Fiesta)라고 한다. 국가적 경축일인 피에스타 나쇼날(Fiesta Nacional),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의 종교적 축일, 작게는 가족의 축제인 피에스타 파밀리아르(Fiesta Familiar) 등 매우 다양하다. 멕시코의 축제는 사교, 오락의 의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배우자를 만나는 중요한 기회이고, 비즈니스를 이끌어 내는 장이 되기도 한다.
꽃다발을 들고 서로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세레나데를 듣는 젊은 연인,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곳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는데, 기자는 문득 도시인들처럼 복잡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 속에 함께 빠져들고만 싶었다. 짭짤한 소금과 나도 모르게 눈이 ‘찡긋’해지는 라임을 곁들여 마시는 데킬라와 코로나. 이 앙상블은 어쩌면 주체할 수 없이 불타오르는 이들의 뜨거운 열정에서 비롯됐으리라.
거리에는 ‘마리아치’라고 불리는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악사들이 우르르 몰려다닌다. 행사에 고용된 마리아치도 있겠지만 거의 레스토랑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일하는 악단이 대부분이다. 가이드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마리아치는 원래 ‘거리의 악사’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멕시코 민속음악 전반을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전통의상 차로를 입은 악사들이 기타, 바이올린 같은 악기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낭만적인 음악을 통틀어 일컫는다는 말이다. 그 이름의 기원은 1864년 멕시코를 침공한 프랑스인들이 결혼식 때 현지 악사들에게 연주를 시킨 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 ‘마리아주’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기정사실이 된 것. 마리아치는 인디오와 백인 음악의 혼혈이다.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이 접목된 쿠바나 브라질의 리듬 음악과 뿌리가 전혀 다르다. 할리스코에서 지역 음악으로 시작된 마리아치는 1810년,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국민적 동질성을 담보하는 상징으로 각광받았다고 한다.

작열하는 태양의 맛, 멕시코의 술과 음식
종종 데킬라와 코로나로 대변되기도 하는 멕시코에까지 와서 그 열정의 술과 음식을 맛보지 않으면 섭섭하다. 길거리 어디를 지나든 멕시칸 샌드위치라고도 불리는 ‘타코’와 토티아에 콩과 고기를 얹어 네모낳게 구운 후 소스를 발라 먹는 ‘부리토’,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토티아’를 파는 가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멕시칸 고추 할라피뇨, 살사 등이 빠지지 않는 멕시코 음식도 대부분 우리 음식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매운데, 그 매운맛을 글로 표현해내기는 어렵지만 김치의 알싸한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멕시칸 고추로 맵든, 순창 고추장으로 맵든 매운맛은 모두 하나로 통하는 법. 우리는 대중적인 멕시칸 음식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고 말 것이다. 가격도 한국에서 먹는 것에 비해 너무 저렴하다. 미화로 1불도 되지 않는 음식도 수두룩하다. 속에 들어가는 고기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로, 때론 생선으로도 대신할 수 있으므로 입맛대로 선택하자. ‘와그작’하고 바삭바삭하게 입안에서 깨지는 타코를 한 입 베어 물고 오렌지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거칠게 보이던 멕시코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다. 라임을 넣어 상큼한 ‘코로나’ 맥주와 함께라면 금상첨화.
멕시코에서는 코로나 이외에도 ‘테카테’라는 또 하나의 유명한 맥주가 있다. 이것 역시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맥주가 든 캔 속에 라임 즙을 짜 넣고 약간의 소금을 뿌려 마시는 것인데,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간직한 나라여서인지 멕시코에서는 이처럼 상큼한 라임을 가미한 술이 인기가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라임이 생산되지도 않을뿐더러,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 레몬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술, 데킬라에 관한 한 가지 팁! 데킬라를 마실 때 손등에 소금을 바르고, 레몬즙을 빨아 마시는 것은 데킬라를 베이스로한 마가리타 류의 칵테일에 한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원래 이러한 관행은 멕시코인들이 저급하게 생각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마치 데킬라가 원래부터 그렇게 마셔야 정석이라는 설이 퍼진 것이라고 한다. 이미 굳어진 습관이 되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멕시코 여행 중에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기를.

자연이 빚은 신기한 바다분수
시간이 허락한다면 엔세나다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 티후아나(Tijuana)의 명소 ‘라 부파도라(La Bufadora)’에도 들러보자. 이는 티후아나만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자연 바위층으로, 암벽 지하에 있는 빈 공간과 밀려오는 파도의 힘이 만날 때 그 공기의 압력이 순간적으로 암반 틈으로 뿜어 나오면서 만들어지는 자연 바다분수다. 파도의 힘에 따라 솟아오르는 분수의 굵기가 달라지는 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환상적이라 평할 정도로 장관이다. 게다가 이곳은 미국과 가까운 이점으로 인해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남미 수출의 거점지로 삼고 진출해 있기에 남미 지역에서는 다소 만나기 힘들었던 반가운 한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