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Culture in Miami
마이애미, 色
‘마이애미 바이스’가 방영될 무렵, 시청자들은 이 도시의 범죄 현장보다 저음으로 울어대는 페라리 F430과 시원한 구슬색 비치,  그 위를 빛내는 70피트급 플라이브릿지에 빠져들었다. 유럽인들은 특히, 미국적인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파스텔톤 호텔들과 카페 테라스에 매료되었다. 1920년대 아르 데코와 현대의 미술이 건조(建造)되고 있는 지금도 그 매력에는 변함이 없다.    글 김선미 기자  | 사진 조중민 기자

마이애미 관광의 역사는 그들이 NBA에서 보여준 행보와 흡사하다. 마이애미의 관광 실적은 뉴욕이나 시카고와 엎치락뒤치락 했고, 탈락의 위기에서도 기적 같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마이애미가 오랜 시간 동안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불운의 역사는 예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신생팀의 경험 부족은 열정은 있되 실력은 없다는 비웃음을 사 왔지만 그것은 이내 패기가 일궈낸 승리가로 울려 퍼졌다. 영국에서 들어온 무역인들에게 신맛의 자두를 내주고 생필품을 받았던 무(無)의 땅, 규칙이나 질서보다 갱단이 먼저 들어섰던 이 땅에는 실험 정신으로 무장한 예술과 문화의 색이 덧입혀졌다. 그 결과 113살 먹은 신흥 도시는 미술과 문화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태양의 열정은 범죄로, 또 예술로
1980년대(마이애미가 남아메리카의 관문과 국제 경제의 심장부가 된 바로 그 때) ‘마이애미 바이스’와 2000년대 ‘CSI 마이애미’는 우리에게 이 도시가 얼마나 ‘범죄적’인지를 알려주었다. 세계적인 휴양지의 이면은 관광객을 노리는 범죄들로 가득했고 남미에서 손쉽게 들여온 마약류는 청소년들의 분별력을 흐려놓았다. 마이애미 비치의 헐벗은 금발 미녀들은 피 끓는 청춘들을 환각 상태로 이끌었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찾아온 남미계 이주자들은 뒷골목의 음산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예상한 대로다. 이게 다라면 마이애미에 갈 이유는 없다. 안전한 내 집에서 누워 자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모든 위험성을 차치해도 괜찮을 만큼(게다가 늦은 밤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안전하다) 마이애미에는 휴양지 특유의 진한 색깔이 있다. 미국인들이 여권 없이 갈 수 있는 가장 이국적인 도시로 꼽을 만큼 유럽과 남미의 매력점들이 이곳에 융합되어 있다. 게다가 ‘경영자와 부자들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곳’답게 뉴욕에 버금가는 고층 빌딩에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본사가 포진해 있고, 할리우드 스타들의 별장인 스타 아일랜드에는 언제 올 지 모르는 주인을 위한 요트들이 근엄하게 계류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이애미를 가장 화려하게 채색하는 것은 과거의 예술가들이 즐겨 불렀던 ‘Mi Mo’, 즉 마이애미 모던이다. 1920년대의 아르 데코와 속속들이 모여든 컬렉터들이 펼치는 현대미술, 그리고 남미 이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어우러져 마이애미의 색을 창조한 것이다.

사우스 비치의 검은 파도, 리틀 아바나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는 1990년대 아르 데코 디스트릭트를 편입하면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 리틀 아바나가 빠질 수 없다. 은퇴한 북동부인들의 집단 거주지, 라틴 비트의 국제적인 교차로로 불리는 리틀 아바나는 사우스 비치의 저녁 시간을 리오와 몬테카를로, 아바나의 삼단 콤보로 바꿔 놓았다. 
과거 해상 단속에서 걸린 불법 이민자들은 ‘웨트 풋(Wetfoot)’, 즉 ‘젖은 발’로 취급돼 쿠바로 송환되거나 제 3국으로 보내졌다. 반면 해상에서 걸리지 않고 미국 땅을 밟으면 망명자와 비슷한 취급을 받아 미국 정착이 가능했다. 드라이 풋과 웨트 풋은 90년대 중반 이후 나온 미국의 대 쿠바 이민정책에서 나온 말이다. 그보다 앞선 탈출 러시까지 합하면 약 30~40만 명의 쿠바인들이 마이애미에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에 카리브해 출신자들까지 더해지면서 마이애미는 라틴계 이민자 비율에서 미국 대도시 중 단연 1위가 되었다.
이곳의 심장부는 카예오초(Calle Ocho: SW 8th St)로, 오후부터 활기를 띠는 쿠바식 상점과 카페가 늘어서 있다. 주요 거리 자체는 꽤 작기 때문에 분위기를 만끽하려면 샅샅이 훑어보아야 한다. 체감 길이는 삼청동보다 짧은 듯하다. 젊은 관광객들은 이곳의 이국적인 음식과 손으로 말아서 완성하는 쿠반 시가를 구경하기 바쁘지만, 머리가 희끗한 쿠바 남자들은 ‘막시모 고메즈 공원(Maximo Gomez Park)’에 모여 도미노를 즐긴다. 이곳의 이름은 1890년 쿠바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육군장교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사진가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도 이 동네에서부터다. 이국적인 미국을 한껏 기대하고 왔다가 다운타운만 보고 있다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다. 서퍼가 아닌 이상 마이애미 비치도 조금씩 지겨워지고, 뭔가 더, 더, 이국적인 것을 보려 할 때 관광객은 리틀 아바나를 방문한다.

오색창연 아르 데코 디스트릭트
미국으로 날아가기 전, 식사를 어디서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내가 현지인들에게 ‘썸즈업!’으로 추천 받은 곳이 바로 아르 데코 디스트릭트(Art Deco District: ‘아르 데코’는 1920~30년대에 유행한 장식 미술을 뜻한다. 1925년에 파리에서 열린 현대장식미술, 산업미술국제전에서 유래된 이름. 곡선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아르 누보와 달리 화려한 색채의 기하학적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해변을 끼고 분위기에 취하려거든, 마이애미의 멋쟁이들을 만나려거든, 혹은 복고풍의 호텔들을 이용해 보고 싶다면 역시 그 길로 가라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마이애미 바이스가 방영될 무렵, 시청자들은 이 도시의 범죄율보다 저음으로 울어대는 스포츠카와 투명한 구슬색 비치, 빼곡히 들어선 요트에 빠져들었다. 그 중에서도 유럽인들은 파스텔톤 호텔들과 카페 테라스에 특히 매료되었다. 아르 데코 디스트릭트는 바로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힘 있는 유럽인들과 발 빠른 프로모터들은 아르 데코 디스트릭트가 개발자들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79년에 국립 보존 지구로 등록시켰다. 사우스 비치에 늘어선 아기자기한 호텔들을 철거하고 고층 빌딩을 지으려 했던 시청의 계획에 결사 반대했고, 프로모터들은 이 거리를 통째로 사 들여 처음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랑스러운 키치풍 호텔들을 무더기로 만나며 지금보다 더 세련된 복고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움직임을 지켜보던 마이애미시는 획기적인 고안을 한다.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세계의 거물급 컬렉터들을 불러 모은 것. 그 결과 갤러리와 컬렉터들이 이 신흥 도시에 모여 현대 미술을 이야기했고,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Art Basel Miami Beach)’도 탄생시켰다. 지난 2002년부터 열린 이 행사는 매년 200여 개에 달하는 갤러리와 수천 명의 컬렉터들이 참가하는데, 한국에서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호텔이 늘어선 오션 드라이브, 스타일리시한 바가 많은 워싱턴 애비뉴, 갤러리와 카페로 가득한 링컨 로드몰 등이 아르 데코 디스트릭트의 주축이다. 오션 드라이브에서는 파크 센트럴 호텔이 데코 건물로 돋보이며, 워싱턴 애비뉴에 있는 70살 된 우체국이 볼거리다. 거리 한 편에는 해변에서 서퍼들이 시원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바닷 바람을 맞으며 걷는 노부부는 노후가 보장된 마이애미 드림을 대변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디제잉 배틀이라도 붙을 듯 펑키한 바(Bar)와 스페인풍의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베르사체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성도 특유의 신비한 자태로 서 있다. 각 건물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1001 오션 드라이브에 위치한 아르 데코 웰컴 센터로 가 볼 것. 20달러 정도면 이곳의 역사와 건축에 대해 안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