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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최대의 도시’인 시드니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와 비교한다면 호주 ‘최고의 도시’멜버른은 뉴욕이나 파리, 런던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코스모폴리탄 시티라 해도 좋다. 남한의 78배인 거대 호주 대륙을 이끄는 멜버른은 북반구보다 한발 앞서 트렌드를 이끄는 패션의 도시다. 글 정지영 기자 | 사진 문유선 기자

호주를 대표하는 도시는 어디일까. 아마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시드니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호주 사람들에게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멜버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시드니는 호주의 진정한 수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역사, 문화, 경제, 예술, 교육, 패션, 음식 등 실질적인 사회 전반의 흐름을 이끄는 곳이 멜버른이기 때문이다.

1803년 최초 발견된 멜버른은 1851년 밸러랫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국가와 민족, 문화가 200년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면서 멜버른은 더욱 풍성해졌다. 호주의 남동쪽에 위치한 빅토리아주의 주도인 멜버른이 ‘호주의 축소판’, ‘호주 속 유럽’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 중 창조적이고 활기찬 멜버른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곳이 바로 멜버른의 다운타운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멜버른 시내에는 다양한 국적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다. 또, 문화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멜버른화된 독특한 디자인이 발달하게 되었다.

미국의 뉴요커, 영국의 런더너, 프랑스의 파리지엔처럼 호주에는 멜버니언이 있다. 멜버니언은 멜버른에서 나고 자란 멜버른 사람을 뜻하는 동시에 멜버른을 대표하는 하나의 코드로 여겨진다.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국적의 인종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멜버른만의 독자적인 문화는 멜버니언에게 다양한 자극이 되어 남다른 안목과 감각을 가지게 한 모양이다. 그래서 멜버른에서 통하면 호주에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로 인해 호주의 유명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은 으레 멜버른을 스타트 지점으로 선택한다.

‘메이드 인 멜버른’이 호주는 물론 세계적인 브랜드로 급부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에이솝도 ‘메이드 인 멜버른’ 브랜드 중 하나다. 에이솝은 호주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 2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세계적인 스킨케어 브랜드다. 멜버른에서 탄생한 만큼 멜버른 곳곳에서 에이솝 매장을 볼 수 있는데,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는 제품과 관광객을 겨냥한 여행자용 패키지, 그리고 독특한 매장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멜버른의 거리에는 건물과 건물을 잇는 아케이드가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는 호주 전역의 실력있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다. 버브 부티크(Verve Boutique)는 호주 출신의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편집 매장이다. 버브 부티크는 높은 천장을 이용한 복층 구조의 매장으로 입구에 들어서면 커피와 간단한 스낵을 즐길 수 있는 카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카페 안쪽에 들어가면 옷과 액세서리를 판매하는데 이곳의 의상은 아방가르드한 스타일과 펑키한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이곳의 디자이너들은 모두 호주 출신으로 직업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패션 스쿨을 다니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플린더스 레인(Flinders Lane)과 스완스톤 스트리트(Swantston Street)를 잇는 캐씨드럴 아케이드(Cathedral Arcade)에 위치한 앨리스 유피미아(Alice Euphemia)는 30여 명의 신진 디자이너가 만든 25개 브랜드로 채워진 로컬 편집 매장이다.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의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디자이너의 수만큼 스타일도 다양하고 독특한 패션 아이템을 갖추고 있다. 몇몇 유명 디자이너 제품의 경우 따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스타일별로 여러 디자이너의 브랜드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곳을 쇼핑할 때는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자칫 좋은 상품을 놓칠 수 있다. 쇼핑을 마친 후 아케이드와 이어진 골목에는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어 쇼핑의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제이슨그리치(Jasongrech)는 멜버른 출신의 신진 디자이너로 호주 전역에 인기를 모으며 패션 잡지의 지면을 장식하는 하이앤드 부티크 숍이다. 멜버른의 가장 힙한 쇼핑거리로 손꼽히는 호웨이 플레이스(Howey Place)에 위치한 제이슨그리치는 원색적이고 드라마틱한 실루엣의 원피스가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은 코르셋과 같은 기능적 디자인을 도입해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강조한 스타일을 위주로 디자인과 사이즈를 탄력적으로 구비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이곳의 의상은 100퍼센트 호주에서 제작하고 의상의 소재도 호주, 유럽 등을 돌아다니며 고품질의 텍스타일을 선택하기 때문에 미니 드레스가 500~600호주달러 정도로 가격이 꽤 높은 편이다.

이 밖에 텍스타일 디자이너인 조지아 채프맨이 운영하는 빅슨(Vixen)도 멜버른에서 탄생한 홈웨어 브랜드로, 엽서, 앨범, 지갑, 스카프, 쿠션, 침대 시트, 의류 등 홈웨어부터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으며 현재 호주에는 20여 개 매장을 갖고 싱가포르, 미국에도 수출하고 있다.

호주의 모든 산업은 멜버른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발달해 있다. 국내에서 파리, 밀라노, 뉴욕을 중심으로 패션 트렌드를 읽는 반면에 오히려 유러피언은 멜버른에서 트렌드를 읽는다고 한다. 이유는 북반구와 정반대인 기후 조건 덕분에 한 발 빠른 패션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인 동시에 그만큼 멜버른 패션 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트렌드 리더가 되고 싶으면 호주 멜버른에서 쇼핑을 하면 된다는 뜻이다.

멜버른 시내는 바둑판 모양으로 도로가 나 있다. 시내 정중앙에 있는 보크 스트리트(Bourke Street)에는 가로로 뻗은 스완스톤 스트리트(Swanston Street)와 엘리자베스 스트리트(Elizabeth Street) 사이에 마이어(Myer), 데이비드 존스(David Jones), GPO 멜버른 등과 같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이곳을 보크 스트리트 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크 스트리트 몰에는 이런 대형 쇼핑몰과 더불어 건물과 건물, 블록과 블록을 잇는 7개의 시티 아케이드가 있는데 이곳은 호주 현지인들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1869년 지어진 로열 아케이드(Royal Arcade)는 멜버른에서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로 보크 스트리트 몰과 리틀 콜린스 스트리트(Little Collins Street)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소품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과 골동품 가게, 카페, 그리고 호주의 유명 초콜릿 상점인 코코블랙(Coco Black)이 이곳에 있다. 통유리로 카페가 훤히 보이는 코코블랙 매장에는 매일 그날 만든 신선한 초콜릿이 진열된다. 코코블랙의 가장 기본인 오리지널 다크 초콜릿은 다크 초콜릿 위에 카카오 파우더를 뿌려 첫 느낌은 퍽퍽하지만 입 안에 넣는 순간 촉촉한 티라미스 케익처럼 금세 녹는 초콜릿의 진한 달콤한 맛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이 밖에 오렌지 초콜릿 퐁듀, 시나몬 초콜릿, 아몬드와 호두를 넣은 초콜릿 등 다양한 초콜릿을 한 입 크기로 만들어 낱개로 판매하고 있다.

로열 아케이드를 따라 곧장 내려가면 19세기 건축 양식이 고풍스러운 블록 아케이드(Block Arcade)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탈리아식 모자이크 바닥 장식이 인상적인 블록 아케이드는 팔각형의 돔형 유리 천장과 정교한 레이스 장식의 기둥이 19세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소규모로 운영되는 노천카페와 주얼리숍, 가죽 전문점 등이 있다. 또, 이곳에도 하이스(Haigh’s)라는 초콜릿 숍이 있는데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 브랜드로 93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때문일까. 블록 아케이드는 굳이 쇼핑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꼭 들른다. 이 밖에 5개의 아케이드는 보크 스트리트와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콜린스 스트리트에 밀집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찾아다닐 수 있다.

멜버른의 아케이드가 여러 가지 다양한 아이템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는 로컬 매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멜버른 거리 쇼핑은 각각의 거리마다 색깔이 분명하다. 콜린스 스트리트(Collins Street)는 티파니, 롤렉스, 샤넬, 루이비통, 프라다와 같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들어선 명품 쇼핑 거리로 유명하고,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리틀 콜린스 스트리트에는 멜버른의 유명 디자이너 부티크가 모여 있어 펑키하면서 오트 쿠튀르적 의상이 많고 모던하고 세련된 카페와 바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샤우스 야라쪽으로 향하면 호주의 유행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패션 거리 채플 스트리트(Chaple Street)가 펼쳐진다. 캐주얼 브랜드와 보세, 디자이너 숍이 골고루 섞여 있고 각종 패션 아이템은 물론 음반 매장, 뷰티숍, 서점, 카페도 있다. 채플 스트리트의 중간에 로즈민(Rosmin)이라는 매장이 있는데 한국인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디자이너 숍으로 최근 멜버른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스커트, 재킷, 원피스, 티셔츠, 블라우스 등의 패션 아이템을 고루 갖추고 있고 컬러풀하고 독특한 패턴, 다양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또, 리치몬드(Richmond) 거리에는 아울렛 매장이 일년 내내 30~50퍼센트 이상 할인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세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콜린스 스트리트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피츠로이의 브런스윅 스트리트(Brunswick Street)는 멜버른 시내 중심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브런스윅은 스페인, 아프리카 등 특이하고 유명한 레스토랑이 많은 곳이지만 얼마 전부터 호주의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아티스트가 직접 숍을 운영하거나 아티스트의 작품을 상품화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늘고 있다. 독특한 빈티지 포스터가 눈길을 끄는 갤러리 몽마르트(Galerie Mont martre)는 작업실에서는 순수하게 작품 판매와 작업만을 하지만 갤러리와 같은 건물에 위치한 제타 플로렌스(Zetta Florence)에서 이곳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다이어리, 마우스 패드, 테이블 웨어, 트렁크 등의 사무용품이나 생활용품에 포스터 아트를 프린팅하거나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소품은 제타 플로렌스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호주의 내로라하는 유명 디자이너인 그웬돌린(Gwendolynne)의 부티크도 브런스윅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웨딩드레스를 메인으로 이브닝드레스가 주를 이루며 프랑스풍의 레이스 장식을 넣은 클래식하면서 우아한 새틴 드레스가 주력 아이템이다. 특히, 그웬돌린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모자 쇼핑이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깃털 장식,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거대한 사이즈, 머리 위에 살짝 올려놓는 헤어 액세서리까지 그야말로 모자 박물관이 따로 없을 정도다. 그웬돌린의 모자는 호주의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멜버른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고 그 외에는 결혼식이나 파티, 시상식에서 많이 찾는다.

독특한 디자인도 좋지만 비싼 부티크 가격 때문에 고민이라면 브런스윅의 빈티지숍이 기다리고 있다. 브런스윅의 중심부에 위치한 헌터 게더러(Hunter Gatherer)는 남녀 의상은 물론 아기 옷에 이르기까지 성별과 연령을 초월한 아이템을 구비하고 있다. 구제 상품은 10달러 내외의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이렇게 판매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후원업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도네이션 숍이다. 마지막으로, 브런스윅에도 브랜드 숍이 있다. 하지만 시내의 그것과는 달리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컬렉션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편집매장이므로 이런 브랜드를 놓쳤다간 크게 후회한다.

디자이너 부티크도 좋고 대형 쇼핑몰도 좋지만 해외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지역색이 드러나는 로컬 크라프트 마켓이 아닐는지. 멜버른에는 세인트 킬다 해변과 인접한 대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선데이 마켓이 이러한 갈증을 풀어 줄 수 있을 듯 싶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는 세인트 킬다 선데이 마켓은 날씨에 따라 변동은 있지만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2백여 개의 노점상이 나와 자신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선보인다. 100퍼센트 호주산으로 중국산이나 수입 제품은 판매하지 않으며 몇몇 제품은 정식 매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이곳의 수공예품은 수준이 꽤 높은 편이다. 주변에 놀이공원과 산책로가 있고 해변가를 중심으로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 관광하기에도 좋다.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에이크랜드 스트리트(Acland Street)도 주목할 만한 쇼핑 스트리트다. 기자는 이곳에서 지난 5일 동안 쓴 총액과 버금가는 금액을 쇼핑하는데 써버리고 말았다. 에이크랜드 주변에는 주택가가 인접해 있어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인근 주민을 위한 카페가 하나 둘씩 들어서면서 노천카페 거리가 생기고 시내와 달리 집을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인테리어 소품점이 많은 편이다. 공원에서 출발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우측 대로변은 카페와 베이커리, 레스토랑이 많은 편이고 길 건너 좌측에는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인테리어 소품점이 많이 몰려 있다.

에이크랜드 초입에 자리한 홈앤코(Home & Co)는 화병, 사진첩, 찻잔, 쿠션 등의 생활 소품과 문구류를 갖추고 있는데 이곳의 제품은 20달러 내외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홈앤코 옆에는 발리와 모로코에서 수입한 각종 소품을 판매하는 그로토(Grotto)에는 쿠션, 장식 조명, 화병 등의 인테리어 장식품과 오랜 서적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 멋진 월 데코레이션이 진열된 어반 애티튜드(Urban Attitude)는 제법 큰 규모의 인테리어 소품점으로 12년 전에 오픈해 채플 스트리트에도 같은 이름의 매장을 갖고 있다. 이곳의 제품은 호주 전역을 돌며 특이한 제품을 수집한 것과 미국, 영국에서 수입한 아이디어 제품이 매장 가득하다.

참고로, 기자가 쇼핑 테마를 위해 멜버른에서 투자한 취재 기간은 겨우 이틀에 불과했다. 이 말인 즉슨, 멜버른 쇼핑이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아직도 마저 둘러보지 못한 거리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용기내 구입하지 못한 제품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부디 멜버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 기사를 발판으로 보다 꼼꼼하고 알뜰한 관광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무차별 공격(?)해오는 멜버른 거리 쇼핑이 알뜰살뜰 적어놓은 쇼핑 목록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십상이니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