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깎아놓은 장대한 피오르, 그 빼어난 풍광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피오르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왕 그곳에 갔다면 조금 더 욕심을 내보는 게 어떨까? 자연이 만들어낸 그림 같은 풍경에 인간이 들어와 생기를 불어넣은 곳, 송네피오르에 자리한 두 마을, 플롬과 발레스트란드는 대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누리게 해줄 테니 말이다.
이럴 땐 중학교 지리 시간에 공부 좀 제대로 해둘 걸 하는 후회가 마구 밀려든다. ‘피오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것이 고작 ‘빙하’, ‘협곡’, ‘U자형’ 뭐 이런 단어의 나열뿐이라니. 하지만 무식함에 대한 부끄러움도 잠시다. 형성과정부터 특징까지 피오르에 대해 박사급의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이도, 피오르의 ‘피’자도 제대로 모르는 단순무식 관광객도 자연이 빚어낸 그 숨 막힐 듯한 장엄한 풍경과 맞닥뜨린 순간에는 모두 똑같은 감탄사를 내뱉을 뿐이니까. 북유럽, 그중에서도 노르웨이 여행이 특히 매력적인 건 ‘자연이 빚어낸 웅장한 신비’라는 피오르를 직접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빙하기 시대에 빙기와 간빙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엄청난 두께의 빙하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흐르면서 바위를 파내고 육지의 바닥을 긁어 깊은 골을 만들었고 빙하가 후퇴하던 1만 년 전 그 자리에 바닷물이 차 들어오면서 형성된 협만을 일컫는 피오르. 자연의 신비에 경외심이 절로 드는 그 숨 막힐 듯한 풍광을 바라보고 그 속에 들어가 대자연을 누리는 순간, 여기가 바로 21세기의 오아시스!
장엄한 풍광에 압도당하다
송네피오르(Songnefjord), 예이랑에르피오르(Geirangerfjord), 하당에르피요르 (Hardangerfjord) 등 노르웨이의 몇몇 유명한 피오르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피오르 투어다. 일정에 따라 다양한 교통수단과 루트로 피오르를 돌아볼 수 있는데 취재팀이 택한 코스는 베르겐(Bergen)-뮈르달(Myrdal)-플롬(Fl똫)-발레스트란드(Balestrand)로 이어지는 송네피오르 인 어 넛셀(Songnefjord in a Nutshell). 베르겐에서 뮈르달까지 기차를 타고 간 뒤 뮈르달 역부터 총 60킬로미터 구간의 해발 700미터 높이를 휘감듯 달리는 산악열차를 타고 플롬에 도착, 플롬을 돌아본 뒤 그곳에서 다시 익스프레스 보트를 타고 송네피오르를 지나 예술인 마을로 알려진 발레스트란드까지 가는 코스다.
아침 8시 40분 베르겐을 출발하는 기차에는 피오르를 본다는 설렘으로 상기된 표정의 이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드디어 역을 떠난 기차는 이내 구불구불 S자로 휘어진 철길과 수많은 터널을 지나며 피오르로 향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원래는 그렇게 2시간을 달려 뮈르달까지 가는 일정인데 1시간 정도 지나 보스(Voss)에 다다르자 모두 내리라는 방송이 나온다. 뮈르달로 가는 열차의 중간 어딘가에서 작은 불이 나서 뮈르달까지 열차가 갈 수 없으니 버스를 타고 구드방엔(Gudvangen)으로 가서 배를 타고 플롬까지 가는 코스를 이용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출발 전에 한껏 기대했던 뮈르달과 플롬 사이를 오가는 산악열차는 놓치게 되는 것. 못내 아쉬웠지만 실망은 일렀다. 그 대신 보스부터 구드방엔으로 가는 길의 절경과 구드방엔에서 출발한 배를 타고 송네피오르에서 가장 유명한 줄기인 뇌레피오르(Nærøyfjord)를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을 태운 버스는 보스를 출발해 기차를 대신해 산길을 내달린다. 뇌레피오르가 가까워질수록 산을 빙글빙글 도는 듯 심하게 구부러진 길은 멀미를 동반하게 하지만 꼭대기에 만년설이 쌓인 산 밑으로 울창한 산림이 이어지는 숲 속을 지나 커브를 돌면 절벽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엄청난 양의 폭포, 그리고 그 위로 폭포를 가르며 또렷한 빛깔의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내자 멀미 따위는 까맣게 잊는다. 버스는 유람선 출발 시각인 11시30분을 조금 못 미쳐 구드방엔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2시간 동안은 유람선에 올라 좋은 자리를 잡고 네뢰피오르와 송네피오르의 절경을 감상하면 된다. 많은 피오르 중에서 송네피오르를 단연 최고로 치는 이유는 그 규모다. 깊이가 1,309미터, 길이가 204킬로미터로 노르웨이를 통틀어 가장 길고 깊기 때문. 그리고 송네피오르에서 갈라져 나온 네뢰피오르는 폭 205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로, 마치 손에 잡힐 듯한 풍경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을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갈매기와 함께 본격적인 피오르 여행이 시작된다. 협곡 사이를 가로지르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피오르는 조금 전 위에서 내려다보던 것과는 또 다른 웅장함을 풍긴다. 양옆으로 첩첩이 이어진 해발 1천 미터를 훌쩍 넘는 눈 쌓인 거대한 산꼭대기에는 구름이 걸려 있고 절벽을 따라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도대체 겨우내 얼마나 많은 눈이 쌓였기에 저렇게 쏟아내도 계속 떨어지는 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광경은 어떻게 저곳에 집을 지었을까 싶을 만큼 높은 산기슭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알록달록한 빛깔의 집들이었다.
그렇게 자연이 빚어낸 풍경에 한 번, 그 속에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문명에 또 한 번 감탄하며 주변에 드리워진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는 사이 플롬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평화로운 동화 속 마을, 플롬
지금까지의 여정이 피오르를 바라보며 감상하는데 그쳤다면 여기서부터는 피오르를 즐길 차례다. 플롬은 아울란스피요르(Aurlandsfjord : 송네피오르의 지류)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로 뮈르달에서 출발한 산악열차가 종착하는 지점이자 송네피오르를 도는 유람선의 선착장이기도 해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최고의 관광지다. 그러나 이곳에는 여느 관광지처럼 호화로운 호텔과 레스토랑, 다양한 볼거리는 없다. 그저 온통 푸른 빛으로 휩싸인, 400명 남짓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평화롭고 작은 바닷가 마을이 있을 뿐이다. 하루에 몇 차례 기차와 유람선이 이곳에 닿을 때만 잠시 쏟아져 내린 사람들로 붐빌 뿐 이내 그들이 다음 여정을 위해 돌아가고 나면 플롬은 본연의 평화롭고 고요함을 내뿜으며 피오르의 풍경을 온전히 즐기게 해준다.
기차역 옆에 자리한 플롬 박물관(Fl똫sbana Museum)은 1944년에 지어진 건물로 안에는 몇십 년에 걸쳐 만든 산악철도의 역사와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 간단히 전시되어 있다. 많진 않지만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여 있는 기차역 주변에는 맥주 양조장이 자리한다. 멋스러운 바이킹 스타일로 만들어진 양조장에서는 가이드투어를 통해 송네피오르의 맑은 물을 이용해 전통 방식에 따라 제조해 낸 6개의 다른 맥주를 만날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플롬과 송네피오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포인트로 발길을 돌려보자. 하이킹 코스를 따라가면 몇몇 전망대에 닿을 수 있는데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기에는 플롬과 아울랜드 사이에 자리한 오테르네스(Otternes)가 적당하다. 작은 언덕인 이곳은 걸어서 30분 정도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데 언덕 위에는 작은 민속촌처럼 수백 년은 된 옛 노르웨이의 농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이곳에서 베틀 짜는 기계를 이용해 옷을 만들거나 실 염색과정, 양조법을 선보이는 등 옛 노르웨이의 모습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발밑으로는 숲 안쪽에 띄엄띄엄 자리 잡은 아담한 집과 플롬에 쏟아놓은 이들을 다시 싣고 떠나는 기차와 유람선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다양한 액티비티는 피오르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주변으로 폭포구경을 가거나 빙하가 녹아 흘러내려 푸른 빛을 발하는 물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푸른 산이 구름처럼 둘러싼 마을을 감상해도 좋다. 산과 절벽이 고스란히 비추는 물길을 따라 카약을 즐길 수도 있고 피오르 사파리 투어에 참가해 보트를 타고 달리면서 보다 가까이에서 피오르의 자연을 접할 수도 있다. 그렇게 피오르를 체험하는 사이 우러러만 보았던 웅대한 자연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우리가 꿈꾸는 삶, 발레스트란드
플롬에서 쾌속정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발레스트란드는 송네피오르 마을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150여 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이 마을은 유럽인들에게는 일찍이 많은 예술가가 남긴 작품을 통해 익히 알려진 곳. 노르웨이와 피오르의 전경을 주로 그렸던 노르웨이의 유명 화가 한스 구데(Hans Gude, 1825-1903)의 작품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영국의 풍경화가 알프레드 히튼 쿠퍼(Alfred Heaton Cooper, 1864-1929)는 노르웨이, 그중에서도 특히 이곳 발레스트란드의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노르웨이 출신의 한스 달(Hans Dahl, 1849-1937)과 덴마크의 화가 요하네스 플린토(Johannes Flintoe, 1786-1870) 등의 작품에서도 피오르의 웅장함과 고요한 전원마을의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발레스트란드를 만날 수 있다. 발레스트란드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에 짐을 들고 갑판에 서니 왜 오늘날까지도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는지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을을 감싼 웅장한 산과 그 위로 비추는 화사한 햇살, 물가의 난간에 올라가 서로 먼저 뛰어내리라며 다이빙을 재촉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그 너머로 보이는 각양각색의 뾰족한 모양의 아담한 집들은 예술적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기자에게도 두근거림을 전해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배에서 내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곳으로 향하니 한여름 해변의 풍경이 따로 없다. 모래사장 대신 잔디가 깔려 있는 것이 다를 뿐, 어린 꼬마부터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나선 부부까지 수영복을 입고 한쪽에서는 다이빙을, 다른 한쪽에서는 선탠을 즐기기에 정신없다. 잔디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는 사람들, 가끔 실수로 자는 사람에게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원반던지기에 한창인 남학생들, 오순도순 모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몸을 흔드는 이들, 물속에 뛰어들고 싶어 자꾸 주인을 잡아끄는 강아지 그리고 바다 위에서는 모터보트에 로프로 연결한 가오리 모양의 고무보트에 매달려서 플라이 피시와 수상스키 등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이들…. 세상 근심 하나 없는 듯 행복한 얼굴로 그들은 한낮의 태양과 대자연의 피오르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 발레스트란드와 사랑에 빠지다
발레스트란드는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아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할 만큼 작은 마을이다. 4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는 아기자기한 집과 사연을 지닌 교회 등이 자리하는데 마을을 둘러보는 시작지점으로는 언덕 위에 자리한 빅토리아 양식의 목조 가옥 크비크네스 호텔(Kvikne’s Hotel)이 좋다. 1752년 4개의 작은 베드룸을 갖춘 여관으로 시작한 이 호텔은 발레스트란드를 찾는 많은 예술가와 군주들이 머물던 곳으로 지금도 크비크네 일가가 4대째 운영하고 있다. 호텔 뒤편으로 걸어나와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오면 알프레드 히톤 쿠퍼가 작업하던 빨간 건물의 쿠퍼하우스(Cooper House)가 자리한다. 발레스트란드의 풍경에 반한 그는 1905년 이곳에 집을 짓고 작품활동을 하곤 했는데 돌담 위에 자리한 이 집의 테라스에서 앉아 눈앞에 펼쳐진 피오르를 바라다보며 영감을 얻곤 했다고 한다.
쿠퍼하우스 앞쪽 코너에 자리한 골든하우스(Golden House)는 지금도 여전히 발레스트란드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마을임을 보여주는 곳이다. 골든하우스는 발레스트란드 출신의 화가 비요르그 비요베르그(Bjørg Bjøberg) 씨와 영국 출신의 아서 아담슨(Arther Adamson) 씨 부부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아서 아담슨 씨는 피오르의 풍경을 그리려고 발레스트란드를 찾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는 발레스트란드의 사계절 풍경을 화이트톤의 은은한 수채화로, 남편은 짙은 색깔의 유화물감을 이용해 강렬하게 표현해내 확연히 다른 두 작가의 작품 속에서 또 다른 발레스트란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골든하우스 옆으로 약간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예쁜 정원이 있는 아담한 집, 캠핑장, 화가 한스 달이 살던 빨간색이 돋보이는 한스하우스(Hans House) 등을 차례로 만난다. 그리고 이쯤에서 1897년에 세워진 영국식 교회를 볼 수 있다. 이 교회 이름은 세인트 올라프스 교회(ST. Olaf`s Church)로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 이 영국식 교회가 세워지게 된 데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래전 영국 목사의 딸인 마가렛 소피아 그린(Magaret Sophia Green)이라는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등산을 좋아했던 그녀는 등산을 위해 노르웨이를 찾았고 이곳 발레스트란드에서 크비크네스 호텔 가(家)의 크넛 크비크네(Knut Kvikne)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 이야기는 예상한대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발레스트란드에서 살게 되었는데 늘 영국식 교회를 그리워해 결국 돈을 모아 영국식 교회를 짓기로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었고 그로부터 3년 후, 이 교회는 그녀를 기리는 마음으로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스티브 교회 스타일(온통 나무로 만들어진 북유럽만의 독특한 건축 형태)로 지어진 교회는 갈색과 노란색으로 페인트칠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아기자기한 외관을 하고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비치는 내부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배의 형상 같다는 느낌도 언뜻 든다.
마을이 굽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한 손에 칼을 든 벨레 왕(King Bele)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은 1913년 독일의 왕 빌헬름 2세(Wilhelm II)가 선물한 것으로, 1889년부터 1914년까지 종종 발레스트란드를 방문해 휴가를 즐겼던 그는 북유럽 영웅에 관한 전설에 관심이 많아 전설 속에서 발레스트란드를 처음 세운 사람으로 전해지는 벨레 왕의 동상을 이곳에 선물했다고 한다.
풍요를 선물합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시곗바늘은 밤 11시를 향하고 있지만 아직 해는 중천이다. 백야 탓이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늦은 밤 환한 풍경은 익숙해질 줄을 모른다. 잠자리에 드는 것이 어색하지만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하려는데 어디선가 트럼펫과 플루트 등의 악기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집에서 크게 틀어둔 음악소린가보다 하는데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려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다른 이들 역시 환한 밤 풍경이 어색하긴 마찬가진가보다. 하나 둘 마을 사람들이 음악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모여든다.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은 베르겐에서 온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었다. 이틀 일정으로 발레스트란드를 찾았다는 그들은 한 호텔의 테라스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었는데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지만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이 고요한 마을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는 그야말로 지상의 천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던 한 단원의 잦은 실수로 연주하던 곡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어도 호탕한 웃음과 함께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 늦도록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오늘 하루 만난 피오르의 풍경을 가만히 그려본다. 기차와 유람선을 타고 지나면서 마주했던 아찔할 만큼 장엄한 산과 절벽, 그 위로 떨어지는 폭포수, 피오르의 산줄기를 따라 하이킹을 즐기고 협곡으로 스며든 물줄기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언덕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가슴 벅찬 피오르 마을에서의 하루까지. 팍팍하게 달려오느라 깜빡깜빡 적신호가 들어오던 내 삶에 다시 파란불이 켜진 듯, 한껏 풍요해진 기분에 슬며시 미소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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