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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하루는 유난히 짧다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8-09-01 오후 4:18:36

이곳에서의 하루는 유난히 짧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낮 동안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으며 급류를 넘는 짜릿함을 맛봤다면 저녁에는 왁자지껄하며 사람 사는 풍경을 그려내는 야시장에서 출출함을 달랜다. 마을 숫자보다 화산이 많다는 화산섬 카미귄은 화산이 남긴 흔적을 곳곳에 간직한 채 야릇한 매력을 발산하며 여행객을 유혹한다. 필리핀을 축소해 놓은 듯 다양함을 담고 있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 북쪽에 자리한 도시 카가얀 데 오로. 그곳엔 필리핀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글 주소영 기자｜사진 조중민 기자｜취재협찬 필리핀관광청 한국사무소 02-598-2290

www.wowphilippines.or.kr, 필리핀항공 1544-1717 www.philippineair.co.kr

이른 아침에 인천공항을 출발해서인지 타국땅에 발을 딛고 그곳에서 또 한 번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탔음에도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바다를 건너왔음이 크게 실감 나지 않는 느낌도 잠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라타고 시내에 들어서자 필리핀의 명물이라 불리는, 미군이 쓰던 지프를 개조해 만든 버스인 지프니(Jeepney) 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이 필리핀에 왔음을 증명한다.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도시 카가얀 데 오로(Cagayan de Oro)는 다바오(Davao)와 함께 필리핀 남부에 자리한 민다나오(Mindanao) 섬을 대표하는 도시로 민다나오 섬 북부 마카잘라만(Macajalar Bay) 돌출부 근처의 카가얀 강 기슭에 자리한다. 도시 명칭의 ‘데 오로’는 ‘of Gold’라는 뜻으로 이곳 카가얀 강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금을 발견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다양한 즐길 거리로 금빛만큼이나 반짝이는 하루를 선사하는 카가얀 데 오로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오래도록 기억될 짜릿한 하루

카가얀 데 오로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필리피노들은 모두 얼굴에 급격히 홍조를 띠며 같은 이야기를 한다. 래프팅과 캐노피 워크. 정말 재미있으니 꼭 해보라는 이가 있는 반면 겁이 나서 바로 앞에서 돌아섰다는 이도 적지 않다. 그다지 겁이 많지 않아 웬만한 캐노피는 다 시시했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래프팅을 하러 갈 때마다 전날 내린 비나 현지 사정으로 번번이 실패해 한 번도 래프팅을 해보지 못했기에 기대지수는 급상승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지수 120퍼센트!

래프팅 회사에 예약하면 아침 일찍 묵고 있는 호텔로 픽업을 온다. 지붕에 네댓 개의 고무보트를 실은 지프니에는 이미 열댓 명의 다른 일행이 앉아 있었다. 마닐라에서 카가얀 데 오로로 여행을 온 이들이다. 래프팅을 비롯한 캐노피 워크, 라펠링, 지프라인(Ziplines, 공중에 설치된 케이블에 몸을 매달고 이동하는 것) 등을 즐기려면 카가얀 데 오로 시내에서 남쪽으로 1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카함부스 어드벤처 파크(Makahambus Adventure Park)로 가야 한다. 1990년에 있었던 미국과 필리핀 간의 전쟁에서 필리핀이 첫 승리를 거둔 마카함부스 동굴(Makahambus Cave) 근처에 자리하는데 동굴 자체에 큰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필리피노들에게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곳인 만큼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다. 동굴의 길이는 30미터 정도로 짧은데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한 곳에 조명장치라고는 동굴 안내를 하는 직원이 들고 있는 손전등이 전부. 바닥이 꽤 미끄러우므로 조심해서 따라가자. 낮은 자세를 취하고 동굴을 빠져나오면 카가얀 데 오로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다다르게 되고, 거침없는 물살에 오늘의 래프팅에 대한 기대가 더해진다.

그곳에서 2백 미터쯤 올라가면 마카함부스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건물 맞은편에서 캐노피 워크가 시작된다. 골짜기 위의 건물에서 시작해 3개의 다리가 연결되어 있는데 첫 번째 다리를 건넌 후 라펠링을 해 마카함부스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으며 3개의 다리를 모두 건너면 마지막 나무에 설치된 지프라인을 타고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오게 된다. 아쉽게도 오늘은 라펠링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 캐노피 워크와 지프라인을 타려고 안전장치를 착용했다. 높이는 약 50미터, 이전의 경험에 비하면 그리 높지 않음에도 자칫 잘못 디디면 발이 쑥 빠질 것처럼 달랑 나무 막대 두 개로 이어진(물론 그 밑에는 튼튼한 받침대가 있고 다리 위의 안전장치에 줄을 걸고 있지만.) 꽤 흔들리는 다리는 나름 용감무쌍(?)하다고 자부하는 기자에게도 순간순간 아찔함을 느끼게 한다. 3개의 다리를 모두 건너면 지프라인이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가 안전장치를 걸어주는 사이 TV에서 본, 늘 애인 이름을 부르며 뛰어내리던, 군대훈련을 떠올리며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하나 둘 셋’의 구령과 함께 출발한 순간 “아악~!”, 이것이 내가 내지른 소리의 전부. 내려오는 시간은 단 10초로 잠깐의 아찔함 후에 바람을 가르는듯한 짜릿함에 환호성이 나오려는 찰나 아쉽게도 처음 캐노피 워크를 시작한 곳으로 돌아와 있다.

급류를 넘어서는 스릴을 아세요?

조금 전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래프팅을 위해 다시 지프니에 올랐다. 15분 정도 더 들어가 지프니가 도착한 곳은 화이트 워터 래프팅을 즐길 수 있는 카가얀 데 오로 강. 약 12킬로미터 거리의 비기너 코스부터 21개의 급류를 넘는 20킬로미터 거리의 익스트림 코스까지 6개의 코스가 있는데 오늘 우리가 도전할 코스는 비기너 코스다. 비기너 코스라고 시시하게 보면 곤란하다. 총 14개의 급류를 거치면서 2시간 동안 물살을 헤쳐나가야 하는데, 마침 우기여서 전날 내린 비로 강수량도 불어난 상태라 그 여정이 만만찮다. 6명에서 8명 정도씩 조를 나눈 뒤 헬멧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간단한 안전수칙과 래프팅 요령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처음 잡아보는 패들에 채 적응도 되지 않았는데 래프팅이 시작되자마자 급류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휘청거리는 배 위에 탄 우리는 환호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Forward’, ‘Back’, ‘Stop’을 위치는 가이드의 구령에 맞춰 노를 젓는다. 전혀 모르는 이들과 한 배에 올라탄 어색함도 잠시, 급류 하나를 무사히 넘고 모두 하늘을 향해 패들을 들고 “아오! 아오!”를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나니 어느새 오래된 친구처럼 마주 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몇 번의 급류를 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제는 제법 대담해져 조금 약한 급류에서는 일어서서 급류를 넘으며 스릴을 만끽한다. 중간에 다른 배를 만나 물싸움을 하기도 하고 물이 깊지 않은 곳에서는 배에서 내려 수영을 즐긴다. 중간 중간 주변 볼거리에 대한 안내도 들으면서 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꽤 길 것 같았던 2시간이 금세 지나고 종착지에 도착한다. 이 모든 액티비티를 하는 데는 꼭 반나절이 걸린다. 래프팅 종착지에는 레스토랑이 마련되어 있어 래프팅 업체를 통해 예약하면 미리 준비된 식사를 바로 즐길 수 있다.

필리피노들의 삶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면 오후에는 카가얀 데 오로에서 북쪽으로 20분 거리의 말라삭 생태 마을(Malasag Eco-Tourism Village)에 가보자. 민다나오 북부 생태계와 부유한 필리피노의 풍습과 전통을 보여 주고자 만들어진 곳으로, 필리핀 전통복장의 사람들이 악기를 두드리며 선보이는 전통춤을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망고나무와 생강나무, 바나나 나무 등이 들어선 숲 사이로 새, 토끼, 뱀, 야생 고양이 등 동물을 모아놓은 곳과 레스토랑, 부족들이 거주하는 전통가옥, 캠프장, 코티지 등이 자리한다.

카가얀 데 오로의 금요일과 토요일 밤은 분주하다. 카가얀 데 오로 다운타운에 자리한 골든 프렌드십 공원(Golden Friendship Park)에 야시장이 서는 날이기 때문이다. 골든 프레드십 공원은 필리핀의 국민영웅인 호세 리잘(Jose Rizal), 안드레스 보니파쇼(Andres Bonifacio), 라몬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를 추모하는 기념탑이 세워진 곳으로, 원래 이곳은 19세기 초 도시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디비소리아 플라자(Divisoria Plaza)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라고. 평소에는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쉬었다 가는 평범한 공원이지만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차량이 통제되고 야시장이 서면서 화려하게 변신한다. 운이 좋게도 오늘은 토요일. 오후 5시부터 준비를 시작해 7시경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기에 9시쯤 되어서 그곳으로 향했는데, 정말이지 엄청난 인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노천식당에서 식사하는 이들과 그 옆 노천 마사지숍에서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 옷과 신발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이들 등 쏟아져나온 필리피노들과 또 이를 구경하려고 나선 관광객이 뒤섞여 화려한 밤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출출해져 길가에 늘어선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돼지고기, 닭고기, 닭똥집, 생선 등 꼬챙이에 줄줄이 엮인 꼬치 몇 가지를 주문하면 잠시 후 꼬치를 익혀 밥과 함께 가져다주는데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려다 주위를 보자 모두들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이용해 밥을 먹는 게 아닌가? 가끔 필리핀의 소도시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하기에 잠시 주저하다가 나도 그들처럼 세 손가락을 이용해 밥을 뭉쳐 입 안에 넣는다. 혹자는 비위생적이라고 미간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쌀에 찰기가 없어 낱알이 흩어지는 탓에 밥 먹기가 편치 않았는데 손으로 먹으니 그런 불편도 해소될 뿐 아니라 손맛(?) 때문인지, 아니면 먹는 재미가 쏠쏠해서 인지 맛도 더 좋게 느껴진다. 여기에 산미구엘 한 잔까지 더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노천식당 옆으로는 과일가게가 이어진다. 코코넛, 망고, 두리안, 파인애플, 수박, 오렌지, 람부탄, 바나나 등의 과일이 달콤한 향을 풍기며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옷, 슬리퍼, 모자, 인라인스케이트, 액세서리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서 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노천카페가 있어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렇게 야시장은 밤늦도록 이어진다.

화산이 선물한 땅, 카미귄 아일랜드

최근 들어 카가얀 데 오로가 관광지로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까닭 중 하나는 바로 민다나오 북단에 자리 잡은 작은 화산섬 카미귄의 영향이 크다. 카미귄은 1871년 폭발한 화산으로 당시 행정소재지였던 본본(Bonbon)의 일부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수장도시(Sunken City)로 유명한 곳. 길이 33킬로미터, 너비 14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섬에 7개의 화산이 자리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제곱킬로미터당 가장 많은 화산이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화산활동을 멈춘 산에서의 트레킹과 곳곳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와 냉·온천탕, 물속으로 가라앉은 공동묘지(Sunken Cemetery), 화이트 샌드 비치를 자랑하는 화이트 섬(White Island), 다이빙 포인트 등 다양하고 매력적인 볼거리를 지니고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카미귄 섬에 가려면 카가얀 데 오로 시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의 발링고안(Balingoan) 항구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1시간 가량 가야 하는데 카미귄에서 카가얀 데 오로로 나오는 배가 오후 6시면 끊기므로 당일 코스라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항구에 도착하니 저 멀리 카미귄 섬이 아득히 보이고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눈부시다. 바다 위에서 낚시하는 이들의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고 페리에 올라타려는 사람들에게 바로 옆 고기잡이 배의 돛대에 올라선 아이들은 동전을 던져달라며 소리친다.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안쓰럽기도, 귀엽기도 해 주머니 속 동전을 탈탈 털어 아이들을 향해 동전을 던지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놓칠세라 다이빙을 해 물속에서 찾은 동전을 자랑스럽게 꺼내 든다.

카미귄 섬은 차로 1시간이면 돌 수 있는 크기의 섬으로 천천히 구경하면서 다녀도 네댓 시간이면 충분하다. 지프니가 다니긴 하지만 이왕이면 오토바이를 개조한 모토렐라(Motorela)를 빌리는 것이 좋다. 운전사를 포함해 5백페소면 반나절 이상 빌릴 수 있는데다 운전사가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므로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카티바와산 폭포(Katibawasan Falls)다. 70미터 높이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는데 물줄기가 워낙 얇아 웅장함보다는 은은함이 느껴진다. 아래쪽에는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연못을 만들어 놓아 더위를 식히기에 좋다. 아르덴트온천(Ardent Hot Spring)은 히복-히복 화산(Hibok-Hibok Volcano)의 영향을 받은 온천으로 물의 온도와 풀의 깊이가 각기 다른 4개의 탕이 층을 이루고 있는데 가장 뜨거운 꼭대기 물의 온도가 약 40도 정도다. 관절염과 근육통, 류머티즘에 효능이 있다고. 탈의실이나 샤워실 등의 편의시설이 아직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녹음이 우거진 곳에서 즐기는 온천욕의 유혹을 뿌리치긴 어렵다. 아니, 더운 나라까지 가서 웬 온천욕이냐고? 그렇다면 울창한 숲 속에 터를 잡고 있는 차가운 냉천욕은 어떠한지…. 산토 니뇨 냉천(Santo Ni뻩 Cold Spring)은 냉천수로 채워진 40미터 길이의 수영장으로 얼음을 담아둔 것처럼 차가운 물에서 완벽한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과거 이 섬에서 화산이 폭발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곳으로는 수장 공동묘지(Sunken Cemetery)를 들 수 있다. 원래는 바닷가에 자리한 공동묘지였는데 1871년 폭발한 올드 카미귄 화산(Old Camiguin Volcano)으로 지반이 무너지면서 지금은 묘지가 20피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바다 위에 세워진 하얀색 십자가만이 그곳이 과거 공동묘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17세기에 지어진 근처 교회 역시 화산으로 폐허가 돼 20퍼센트의 형태만 남아 있는데 그 부지만 보더라도 과거에 굉장한 규모의 교회였음을 느낄 수 있다.

새하얀 무인도에서의 휴양

에메랄드빛 바다, 그 가운데 덩그러니 새하얀 모래로 뒤덮인 작은 섬, 그리고 그곳을 거니는 해변의 여인. 영화 속에서나 봤음 직한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카미귄의 화이트 아일랜드(White Island)다. 카미귄 섬 북부에서 배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이섬은 멀리서 보면 나무 한 그루 없이 온통 하얗기만 한 특별할 것 없는 모래섬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짙푸른 색의 바다가 점차 에메랄드빛으로 바뀌면서 U자형의 형태를 한 섬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아!’ 하는 탄성이 절로 새어나올 만큼 아름답다. 총 6백 미터 길이의 이 섬은 섬 자체가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물결에 따라 섬의 형태가 U자형도 됐다가 C자형도 됐다가 한다고. 사방으로 둘러싸인,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바닷물은 파도가 거의 없이 잔잔해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알맞고 채로 걸러놓은 듯 곱고 폭신한 모래밭은 털썩 주저앉고 싶을 만큼 보드랍다.

때마침 피크닉을 온 한 가족이 임시 천막을 설치해 그늘을 만들어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물놀이에 한창이다. 풍덩 빠져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았기에 신발을 벗고 잠깐 물에 발을 담그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수첩을 꺼내 적는다. ‘비치파라솔과 돗자리, 물과 맥주를 가득 담은 아이스박스, 그리고 약간의 먹을거리.’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 챙겨야 할 준비물이다.

카미귄 섬으로 돌아와 다시 카가얀 데 오로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배 뒷편에 서서 카마귄 섬을 바라보니 하늘 위로 우뚝 솟은 화산섬 뒤로 해가 지면서 카미귄 섬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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