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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의 역사 위에 세련미를 입다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8-11-05 오후 2:32:29

수백 년의 역사 위에 세련미를 입다

베이징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아직도 톈안먼 광장과 인민대회당, 자금성을 꼽는다면 단언하건대 그는, 올림픽 이후의 베이징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리라. 베이징이 변했다. 과거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자전거 행렬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옛 건축물이 베이징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 이곳은 잘 정비된 도로 위를 달리는 고급 승용차와 세련된 현대적 건축물이 화려함을 뽐내며 세계적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풍스러운 문화유산과 최첨단 건물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오늘의 베이징을 찾았다.

글, 사진 주소영 기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정확히 2시간 후 내려선 곳은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의 제3터미널이었다. 중국이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준비한 것 중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 제3터미널이라고 하니 베이징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곳의 변화를 맞닥뜨린 셈이다. 총 길이 2.9킬로미터, 면적 93제곱미터의 제3터미널은 축구장 크기의 무려 170배, 인천국제공항의 2배에 달하는 크기로 단일공항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영국의 건축설계사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했는데 중국의 상징인 용과 자금성을 테마로 지었다고. 때문에 터미널은 전체적으로 용이 누워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지붕을 장식한 삼각형 모형의 채광창은 용의 비늘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용의 관문’을 통과하면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내며 새롭게 변한 베이징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난다.

베이징을 한눈에

거대한 공항에 휘둥그레진 눈은 21세기 종합대국을 꿈꾸는 베이징의 미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놓은 베이징시기획전시관(北京市規劃展示館)에서 다시 한번 동그래졌다.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850여 년간 중국의 수도로서 발전해 온 베이징의 역사와 더불어 올림픽 이후 어떻게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중국인들의 야심찬 계획을 전시해 놓고 있다. 3D 입체영상을 통해 베이징의 과거와 미래를 만날 수 있으며, 벽면에 걸려 있는 대형 청동부조는 1949년 베이징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밖에 베이징 수력 전시관, 교통 전시관, 올림픽 경기장 후보에 올랐던 경기장 설계 도면과 모형 등 4층 건물에 도시의 역사, 지리, 변천사, 교통, 환경에 관한 모든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바로 3층 바닥 전체에 꾸며진 베이징도시기획모델. 항공 촬영한 지도가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 자금성, 베이징 공항, 올림픽 경기장 등 현재 베이징시의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곳인데 1:750의 비율로 정교하게 꾸며져 있어 자신이 사는 집도 찾을 수 있을 정도. 베이징의 도로와 중심 건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치 소인국에 온 걸리버라도 된 듯한 재미도 느껴진다.

베이징시기획전시관이 베이징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면 베이징 시내 서쪽에 자리한 베이징 수도박물관(首都博物館)은 베이징의 역사를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에 관련된 역사적인 유물과 자료 등을 전시해 둔 곳으로 1981년 개관했으며 2006년 5월 기존의 박물관을 확장해 신관을 오픈했다. 빗살무늬토기 모양이 장식된 인상적인 외관의 수도박물관은 지하 2층, 지상 5층의 규모로 총 14개의 관에 나누어 옛 베이징의 생활상, 먹을거리, 결혼 및 잔치 풍습, 민속놀이, 도자기, 서예, 불교용품, 왕릉에서 찾은 진귀한 유물, 희극 공연장 등 베이징의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모습과 그와 관련된 5천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올림픽,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베이징의 과거를 살펴본 후 향한 곳은 올림픽 공원이다. 뭐니뭐니해도 최근 베이징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올림픽 경기장. 전 세계인을 감동으로 물들인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개막식이 열렸던 올림픽 주경기장과 올림픽 공원은 평일에도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베이징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중국 각지에서 모여든 중국인 관광객들을 보니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자부심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올림픽 공원 입장은 무료지만 올림픽 경기장에 들어가려면 표를 사야 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늘어선 줄로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암표라도 구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새둥지를 닮았다고 하여 ‘냐오차오(鳥巢)’라 불리는 올림픽 주 경기장은 거대한 철근을 대강 포개어 놓은 듯 보이지만 불규칙한 각도 속에도 안정감 있게 설계된 건물로, 기초 골격을 세우는데만 1년이 소요되었고 여기에 총 4만 2천 톤의 철강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특히 자연통풍과 채광을 최대한으로 고려한 친환경적 설계는 냐오차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호수가 감싸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공원을 가로질러 올림픽 경기장에 들어서니 2달여 전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경기장을 객석에서만 바라봤을 뿐 직접 경기장에 발을 디딘 것은 처음인 듯하다. 그리고 이곳을 찾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인듯했다. 마치 서로 짠 듯이 경기장 트랙에 나란히 서서 육상 경기 포즈를 취하거나 남자 육상 경기 금메달리스트인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선수처럼 두 팔을 벌리고 결승점에 골인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등 얼굴에 화색을 띠고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수천 개의 물방울이 망울망울 붙어 있는 듯한 수영경기장은,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쥔 장소다. 사각형의 구조에 물방울 입자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중국의 전통철학인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의 조화를 뜻한다고. 건들면 ‘톡’ 하고 터질 듯이 보이지만 수영경기장의 물방울막 하나는 자동차 한 대 무게를 너끈히 지탱할 정도라고 한다. 내부는 당시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수영장 바닥을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평소에는 선수들의 수영연습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수영경기장에는 직접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경기장 주변 수많은 국가의 국기 중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유리창에 바싹 붙어 사진을 찍어 본다.

베이징의 전통이 숨 쉬는 거리

베이징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옛 수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매력적인 볼거리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텐안먼 광장 남쪽의 치엔먼다지에(前門大街)도 그 중 하나로, 1,400미터에 이르는 거리 양쪽에 역사를 간직한 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는, 7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베이징의 대표적 상업거리다. 화려한 건축물보다는 오랜 역사를 지닌 상점에서 쇼핑도 하고, 여유 있게 차 한잔 즐기는 여행을 선호하는 기자로선 무엇보다 기대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상가의 모습이 펼쳐지리란 기대를 안고 치엔먼다지에에 들어섰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곳마저 새롭게 건축한 상가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물론 옛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입주조차 하지 않은 텅 빈 새 건물의 모습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알고 보니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상점과 문화건축물이 있던 이곳이 근대에 들어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것. 그래서 베이징시는 올림픽을 맞아 이 일대를 1920년대 이전, 번성했던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아직 공사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사라졌지만 자금성 주변에 일부가 남아 여전히 관광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골목골목 찻집과 기념품점, 옷가게, 식당 등이 늘어서 있으며 중국전통복장을 한 종업원들이 손님을 맞이하며 오랜 문명과 역사를 느끼게 한다. 또한 1864년 문을 연 오리구이 집 취엔취더(全聚德), 고급차 판매점인 장이위안(張一元), 동인당약방(同仁堂藥店), 비단가게, 신발가게 등 100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상가들이 조만간 모두 입주한다고 하니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베이징 여행의 마무리는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중국 전통공연을 감상하는 건 어떨까? 치엔먼다지에 근처의 라오셔차관(老捨茶館)은 중국 최초의 전통찻집이자 다양한 전통공연을 선보이는 종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문학가인 라오셔(老舍)의 대표작 ‘차관(茶館)’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가게 입구에는 청나라 시대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종업원이 손님을 맞이한다. 그리고 종업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 들어가면 전형적인 중국풍의 식당이 펼쳐진다. 종업원의 복장부터 돌과 나무로 꾸며진 내부 장식, 이곳을 찾았던 유명인사의 사인과 인사말, 고급스러운 차와 차구 등 명성만큼이나 훌륭한 공간을 제공한다.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싶다면 2층의 작은 차실이 좋으며, 이곳에서 펼치는 경극이나 변검, 다도시범 등 다양한 공연을 즐기려면 3층 홀이 좋다. 공연시간은 오후 7시 50분에서 9시 20분까지, 가격은 공연 좌석에 따라 180위안부터 380위안 사이로 결코 저렴하진 않지만 짧게나마 다채로운 중국 전통 공연을 맛볼 수 있으므로 꼭 한번 방문해 보길 권한다. 그윽한 차향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을 보고 있으면 이곳저곳 걷느라 쌓였던 하루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도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세련된 최신식 공항에서 시작된 베이징 여행은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현대적 건물과 여전히 뜨거운 올림픽의 열기를 지나 베이징 사람들의 삶과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찻집에서 마무리되었다. 유구한 중국 수도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전통문화와 화려한 최첨단 건물이 어우러진 베이징의 매력, 그들은 지금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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