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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경이’를 찾아드립니다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8-12-04 오후 1:52:55
잃어버린 ‘경이’를 찾아드립니다
아이들의 눈에 세상은 경이 그 자체다. ‘바람’이라는 단어와 ‘보석’이라는 단어에 동일한 가치를 두는, 또 ‘세경’이란 동네 친구의 이름이 ‘디지털’이란 외래어만큼이나 생경하던, 인생의 어느 시기. “이건 뭐야?”라 묻는 호기심과 “왜?”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삶은 언제나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다채로운 풍경이 빼곡하게 담긴 마술 상자 같은 나라 튀니지는 지난 가을, 바닥을 치던 기자의 ‘경이감 지수’를 단번에 상승세로 돌려놓았다.
글 안수련 기자|사진 박진희 기자
떨어지는 주가에 숨이 가빠지고 점점 우울해지다가 급기야 절망에 빠지고 마는 어른의 삶은 얼마나 고달픈가. 어느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과 함께 갖가지 루머가 토네이도처럼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던 지난 가을. 누군가 날선 혀를 신나게 놀릴 때마다 근거 없는 소문들이 가루를 풀풀 날리며 퍼져나갔고, 그 한편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세상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갔다. 소폭의 하강세를 보이던 ‘경이감 지수’는 어느 순간 폭락하는 주가보다 더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내가 발 딛고 선 땅은 찰기를 잃은 채 퍼석퍼석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이라도 뻘뻘 흘리지 않으면 바싹 마른 몸이 산산이 공중분해 될 것 같은 환상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 마음속에 검은 대륙이 자리 잡았다. 동물과 식물, 공기와 바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쉴 것만 같은 땅. 그곳에 서면 비루한 껍데기를 뚫고, 뇌우라도 맞은 듯 아찔한 충격이 전해지리라.
튀니지? 거기가 어디야?
부푼 기대를 안고 아프리카 북단의 작은 나라 튀니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락세를 달리던 ‘경이감 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극단의 조치였던 셈이다. 튀니지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랍 문명이 혼재한, 또 지중해풍 휴양지와 번잡한 시장,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사막을 함께 지닌, 흔치 않은 나라다. 게다가 “튀니지에 간다.”고 말할 때면 의례히 따라오는 “거긴 어디야?”란 질문도 퍽 마음에 들었다.
출처 모를 말들이 파닥파닥 공중을 나는 동안, 튀니지행 QR821편은 스무 시간을 성큼 날아 후텁지근한 열기마저 신선하게 느껴지는 미지의 땅에 착륙했다. 이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국의 언어가 귀에 감겨들었다. 분절된 단어가 아닌, 한 소절 노래처럼 덩어리를 이루는 말들.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불안하진 않았다. 이 언어가 익숙하기에 더 날카로운 모국어의 횡포를 막아 주리라. 극점으로 내달리는 감정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낯설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문자(Arabic)가 폭신하게 완충해줄 것이다.
당신의 경이감 지수를 올려드립니다 !
“놀라지 마세요. ‘이 작은 나라에 이토록 다양한 풍경이 있다니’하고 말이죠.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답니다.” 튀니지 가이드인 하마디 씨의 첫 마디였다. 카르타고 공항(Carthage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Tunis)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눈이 부셨지만 커튼을 활짝 걷어 올렸다.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그림 같은 아랍 문자와 함께 피아트(Fiat), 푸조(Peugeot) 등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의 로고가 선명했다. 대부분의 튀니지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TV를 틀면 아랍어와 함께 프랑스어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75년에 걸쳐 튀니지를 지배했던 프랑스의 영향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는 듯하다. 창밖으로 우아한 아치를 그리는 기둥이 인상적인 안달루시아 스타일의 모랫빛 건물들이 햇살을 받아 희게 빛났다. 군청색 필터를 끼운 듯 암울했던 세계는 점차 제 빛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튀니스 교외에 자리한 호텔 라마다(Ramada)에 짐을 풀고 대충 몸을 추스른 후 곧바로 노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저녁 시간이 다 돼 배가 적당히 고팠고, 말로만 듣던 튀니스의 시끌벅적한 시장거리도 걸어보고 싶었다. 택시는 퇴근길의 정체를 피해 외곽순환도로를 탄 듯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공사가 한창인 다리 옆으로 커다란 기중기 몇 대와 짙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디쯤 왔는지 궁금했지만 기사는 ‘튀니스, 메디나’란 말을 반복할 뿐. 지도를 주섬주섬 꺼내들고 이리저리 주변 풍경과 꿰맞추고야 조금 전 마주친 거대한 물웅덩이가 바다 아닌 호수임을 알았다. 튀니스는 세 개의 거대한 호수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최근에는 점차 호수를 메우고 건물을 지어 올리고 있단다.
다시 한참동안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별하기 힘든 수면 위로 하늘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는데, 전방에 커다란 시계탑이 나타났다. 날씬한 철제 기둥 위로 고깔 같은 지붕을 얹은 시계탑은 노을 내린 하늘보다 더 진하게, 주황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계탑 주변의 환상도로 위로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한데 얽혀 달렸고, 그 너머로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꼭 빼닮은 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높다란 빌딩숲 사이, 너른 보행로 양 옆으로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 옮겨온 듯, 네모반듯하게 잘 다듬어진 가로수들이 풍성한 잎을 드리웠다. 생경하면서도 낯익은 풍경에 은연 중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일순 긴장을 놓는다.
1987년 11월 7일 광장(Place de 7 Novembre 1987)과 프랑스 문(Porte de France)을 잇는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Avenue Habib Bourgiba)와 파리 거리(Avenue Paris) 위, 파티세리와 브랑세리, 고급스런 레스토랑과 낭만적인 노천카페는 여행자의 지친 다리와 헛헛한 마음을 달래 준다. 튀니지에서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아닌 이상 여성들이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다. 튀니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낮부터 노천카페를 가득 메운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어서 다소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평일 낮 백화점을 찾은 남자라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 때문인지 동양 여성이 지나가면 수십 개의 눈이 뒤따라온다. 아직까지 동양인 방문객이 많지 않아서일 게다. 종종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폰(Japan)?” 혹은 “치나(China)?”라며 말을 걸어 오지만, 뒤따라오며 귀찮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1902년에 건축된 아르누보 스타일의 시립극장(Municipal Theater) 맞은편의 카페에서는 쉴 새 없이 크레페를 구워냈다. 고소한 냄새가 발길을 잡아 끌었지만 저녁을 든든하게 먹기 위해 카페 골목 안쪽에 자리한 프렌치 레스토랑 체즈 누스(Chez Nous)에 들어갔다. 실내는 다소 더웠지만 빈 테이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에피타이저와 메인,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나오는 ‘오늘의 요리’가 이곳의 대표적인 메뉴. 영어를 할 줄 아는 스태프가 없어 고민 끝에 매콤한 소스를 얹은 미디엄 스테이크와 삼겹살처럼 쫄깃한 양고기를 주문했는데, 다행히 양쪽모두 입맛에 잘 맞았다.
‘자폰’도 ‘치나’도 아니랍니다
파리 거리 끝에 다다르자 갑자기 주변이 시끌벅적해진다. 재래시장인 메디나가 인근에 있다는 신호다. 빅토리 광장(Victory Square) 한 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는 커다란 아치 ‘밥엘바(Bab el Bhar, 프랑스 문이라고도 불린다) 문’ 너머의 구시가는 신시가가 지어지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 튀니스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높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 안은 그야말로 미로와 같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주로 정문 왼쪽 골목의 재래시장을 찾는다. 청계천 헌책방 골목처럼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났을 때 “옆집에선 그 절반가격에 팔더라.”며 자신 있게 튕겨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펫이며 도자기, 가죽제품, 낙타 모양의 냉장고 자석, 물담배 기구와 불을 때는 작은 석탄, 유적지에서 막 가져온 듯 보이는 골동품들까지. 품목은 무궁무진하다.
호객행위 역시 만만치 않다. 짙은 눈썹 아래 두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이른바 ‘진한 인상’의 점원들은 흥정을 하다가 뜬금없이 “결혼했냐?” 묻기도 한다. “결혼했다. 애까지 있다.”고 대답하면 “그럼 두 번째 결혼을 나랑 하자.”며 붙잡는다. 물론 100퍼센트 농담에,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괜한 실랑이를 벌이게 될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여럿이 함께 다니는 게 좋다.
좁은 골목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인파 사이에서 거리 구경하랴, 호객꾼들 뿌리치랴, 마음에 드는 물건 고르랴, ‘멀티잡’을 수행해야 하니, 시간이 2배속 버튼을 누른 듯 빠르게 지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인들의 호객행위에도 지쳐갈 때쯤, 북적거리는 골목의 반대편 끝, 카스바 광장(Kasbah Square)에 다다랐다. 이곳에는 튀니지 전통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 일회용 접시에 담은 브릭(Brig, 얇은 전병에 야채와 치즈, 계란을 넣은 튀니지 전통 음식)과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진득하게 졸여낸 전통 과자와 입 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민트티로 입가심을 한다. 몸은 물 축인 솜처럼 무겁지만 시민들의 쉼터인 시청 앞 광장에서의 가벼운 산책 후엔, 이 포만감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안녕하세요, 부사이드 씨
지중해에 맞닿아 있는 튀니지 북동부 지역에는 널리 알려진 휴양지들이 꽤 있다. 시디부사이드(Sidi Bou sa뷶)는 흰색과 푸른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튀니스 인근의 작은 해안 마을이다. 화이트 앤 블루. 그리고 엔터. 키워드를 입력하자마자 금세 두 개의 결과물이 산출됐다. 하나는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 다른 하나는 이 섬을 떠올리면 늘 함께 떠오르는 이온 음료 광고다. 순백의 레이스 치마를 입은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올 것만 같은 청량하고 사랑스런 분위기는 조금 덜하지만, 고기를 구워도 좋을 만큼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정면으로 반사해내는 흰색 건물들, 그리고 까만 철심을 박아 장식한 푸른 문과 창문들이 투박하면서도 굳건하다. 그건 어쩌면 스페인에서 이주해온 안달루진(Andalusian)의 성에서 따온 ‘부사이드 씨(Mr. Bou sa뷶)’란 마을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중해 아랍 음악센터(Ennejma Ezzahra)’에서는 아름답게 장식된 건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요양차 이 지역을 찾았던 프랑스인 델랑저(Radolphe d’Erlanger)의 저택으로, 1912년 시공해 10년에 걸쳐 건축됐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시타와 하프부터 튀니지의 전통 타악기와 유럽에서 제작된 피아노까지, 지중해와 아랍 지역의 다양한 악기들을 수집했다. 기하학적인 문양을 촘촘하게 새겨 넣은 대리석 기둥, 높은 천장에서부터 드리워진 샹들리에, 그리고 옛 주인이 살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방도 인상적이지만, 이 저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정원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이다. 푸른 바다 너머로 시디부사이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 멋진 경관을 매일같이 바라보았을 그는, 비록 환자이긴 했지만,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골목 안쪽 어느 담벼락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부겐빌리아는 엽서를 방불케 하는 시디부사이드 풍경의 정점이다. 언덕 위로 굽이굽이 이어진 좁은 골목들을 걷다보면 연신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푸른 문을 활짝 열고 시디부사이드의 독특한 건물들을 소재로 만든 기념품들을 파는 상인들은 “곤니치와.”부터 “니하오.”까지 자신들이 아는 모든 언어를 건네지만 노골적인 호객행위는 드물어서, 여유롭게 이 이색(異色)적인 이색(二色)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언덕 중간쯤에 자리한 광장의 한 가게에서는 도넛처럼 생긴 둥그런 튀김을 파는데, 설탕을 톡톡 뿌려낸 도넛은 갓 튀겨내서 그런지 꽤 쫀득쫀득했다. 카뮈, 모파상, 지드와 보부아르 등 유럽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나트(Cafe de Nates)를 지나, 네모난 돌바닥을 선들선들 걸었다. 오르막이 끝날 때 쯤, 계단 형식으로 층층이 지어진 카페가 나타났다. 카페 입구에서 본 지중해는 온통 희고 또 푸르다. 세상에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어떤 색도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살짝 감동의 눈물이 맺힐 때 쯤, 계단 한편에선, 그러거나 말거나 살집 좋은 고양이 한 마리가 따사로운 태양 아래 달콤한 오수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스민 향 감도는 한가로운 휴양지
110킬로미터. 제한속도를 알리는 고속도로 표지판이 무색하리만치 빠른 속도로 달린다. 다음 목적지인 하마멧(Hammamet)까지 남은 거리는 56킬로미터. 하마멧은 아랍어로 목욕탕을 뜻하는 말로, 아랍 문화에서 대중목욕탕은 대화와 소통의 장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마멧 근처에 다다르자 거리의 풍광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야자수가 줄지어선 풍경은 프랑스 칸을, 고급스런 빌라가 늘어선 모습은 영국 남부의 휴양지 브라이튼을 연상케 하고, 해안과 맞닿은 너른 광장을 중심으로 고급스런 건물들이 쭉쭉 뻗어 오른 도심은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를 닮아 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이곳 사람들보다 흰 피부의 유럽인들이 훨씬 더 많이 거리를 오가는 것도 이곳이 튀니지가 아닌 유럽의 어느 도시인 듯 착각하게 되는 데 한몫을 한다.
12세기경 만들어진 메디나는 바다 바로 옆에 지어져 있었다. 바다를 따라 난 좁은 길을 걸어 성 안으로 들어가니 흙빛 성곽 안은 놀랍게도 온통 흰색과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성곽 안에 숨겨진 흰빛과 푸른빛의 아담한 마을은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시디부사이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건물 사이로 자연스레 형성된 좁은 골목들은 미로나 다름없다. 가까스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골목의 끝에 다다르자, 마을을 둘러싼 성곽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성벽 위에 오르면 먼저 너른 정원이 나오고, 한 계단 더 올라가면 망루로 연결된다. 옆으로 뉘인 리을(ㄹ)자 모양 성벽은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다. 성곽 아래 풍경은 더욱 다채롭다. 오밀조밀한 흰색의 건물 옥상에선 아낙들이 빨래를 널고 있고, 다른 쪽에선 푸른색으로 칠해진 창문 밖으로 누군가 손을 내밀어 둘둘 말린 양탄자를 펼친다.
10여 분쯤 차를 달려 개인용 요트들이 열 지어 정박해 있는 작은 항구, 마리나(Marina)에 닿았다. 튀니지의 마리나는 항구세가 비교적 저렴해 요팅을 즐기는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다. 하마멧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이 지역은 자스민 꽃이 유독 많아 야스민 하마멧(Yasmine Hammamet)이라 불린다.
야스민 하마멧은 라스베가스와 디즈니랜드를 적절히 섞어놓은 듯하다. 도로 사이를 유유히 달리는 꽃마차, 그리고 하마멧과 야스민 하마멧 사이를 오가는 꼬마기차는 순식간에 평범한 해안도시를 거대한 놀이동산으로 바꿔 놓는다. 황량한 해안에 신기루처럼 솟아오른 대형 호텔과 메디나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만든 테마파크 ‘카르타게(Carthage)’도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디즈니랜드에 미키마우스가 있다면, 카르타게엔 붉은 망토를 두른 술탄이 있다. 시장을 지나며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일일이 챙기는 그는 관광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멋진 미소로 답례하는 테마파크의 마스코트다. 테마파크 안에는 그리스 신들과 천일야화의 주인공 알리바바, 코끼리를 탄 카르타고의 용병들까지 튀니지의 역사를 관통했던 사건들을 소재로 한 카페와 레스토랑, 미니 메디나와 컨벤션 홀이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은 해수를 이용한 탈라소 테라피(Thalasso Therapy)로도 유명한데, 대부분의 호텔에 수준급의 테라피 센터가 들어서 있다. 튀니지 중부 해안의 제르바(Djerba) 섬은 야스민 하마멧 못지않게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다. 이슬람 국가인 튀니지 내에서 이 지역의 유대인과 카톨릭 신자 비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이를 반증한다. 튀니지 중부 해안의 항구 엘 마르사(El Marsa)에서 배를 타면, 20여분 안에 제르바 섬에 도착한다. 이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기념품점이 몰려있는 재래시장 훈트수크(Hount Souq). 판매하는 물건들은 다른 곳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무료함을 달랠 정도는 된다.
다시, 겨울
포유류임에도 겨울만 되면 은근슬쩍 동면모드로 접어드는 기자에게 튀니지는 포도당 주사보다 효과가 좋았다. 말이 통하건 말건 끊임없이 말을 걸던 시장의 상인들은 무뎌진 눈과 귀를 활짝 열어 주었고, 아무렇지 않게 영혼을 베는 날카로운 말에 여기저기 긁힌 마음에는 각막을 통과해 그대로 뇌리에 박혀버린 그림 같은 하얀 마을이 자리 잡았다. 지친 몸을 달래던 지중해의 바람은 매서운 겨울, 성냥팔이 소녀가 피운 마지막 불꽃처럼 여전히 따스한 기운을 전하곤 한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렇게 묻는다. “튀니지? 거기가 어디죠?” 그 질문에 답하려 입을 떼는 순간, 매번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튀니지를 기억하는 겨울, 세상은 아직 열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새롭고도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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