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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다양한 얼굴과 조우하다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01-14 오후 5:54:23

베이징의 다양한 얼굴과 조우하다

여행의 방법은 다양하다.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둘러보는 학구파,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소비파, 경치 좋은 곳에서 푹 쉬는 것이 목적인 휴식파와 다이나믹한 액티비티에 빠져드는 스포츠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취향을 가졌든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곳의 음식을 맛보고, 그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 문화를 만나는 일은 우리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글, 사진 주소영 기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예상을 뒤엎는 공간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곳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깨짐과 동시에 신선한 매력을 선사하며 그곳을 찾은 이의 시선을 붙잡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방문한 다샨즈(大山子) 798예술지구가 그랬다. 오랜 전통을 지닌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베이징 카오야(北京鴨, 북경 오리구이)를 맛본 후에는, 제 아무리 잘한다는 음식점도 현지의 맛을 따라갈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또 지극히 중국스러운 공연도 기다리고 있다. 소림무공의 화려한 내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베이징에서 만난 다양한 얼굴들. 만리장성과 자금성, 그리고 올림픽 정도가 전부였던 무채색의 베이징 이미지가 다양한 색깔을 입고 새롭게 태어났다.

삭막한 공장지대를 예술로 물들이다

말장난 같지만 전혀 베이징답지 않으면서 오늘날 가장 베이징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 다샨즈 798예술지구다. 중국 예술은 급부상하는 중국의 경제와 더불어 세계인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받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중국 예술하면 붉은색으로 치장한 프로파간파(선전) 포스터나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룬 은은한 산수화 등을 떠올리는 이라면 다샨즈 798예술지구는 이런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릴 수 있는 곳이다.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왕징(望京) 근처에 자리한 다샨즈 798예술지구는 예술 분야에서만은 자유분방한 그들의 창작욕구가 넘쳐난다. 중국의 다른 예술지구가 그렇듯이 이곳 역시 원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20여 개의 전자공업 관련 공장이 밀집한 공장지대였다. ‘798’ 역시 당시 숫자로 표시했던 공장지대 구획을 일컫는 말이다. 공장지대가 오늘날 예술지구로 거듭난 데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맞물린다. 변화된 중국에 발맞춰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이곳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버려진 건물의 저렴한 임대료와 넓은 공간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공산주의의 산 역사를 보여주던 공장 건물은 예술가들의 혼과 열정이 스민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덩달아 생겨나기 시작한 레스토랑과 카페는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푯말을 따라 798예술지구에 접어들자 여전히 삭막해 보이는 붉은색 벽돌 건물이 반듯하게 정리된 구획을 따라 늘어서 있다. 그러나 외관만으로 판단하기엔 이르다. 허름한 창고 같은 문을 지나 한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겉에서 보던 것과 달리 안에는 위에민준(岳敏君), 루오 브라더스(Luo Brothers) 같은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조만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를지 모르는 신진 작가들의 재기 발랄한 작품으로 가득하다. 현재 이곳에는 다샨즈를 상징하는 공간인 798스페이스(798 Space)를 비롯해 벨기에 출신의 중국 미술 컬렉터인 가이 울렌스가 개관한 울렌스 현대미술센터(UCCA), 뉴욕의 톱 갤러리 중 하나인 페이스 윌덴스타인 갤러리(PW), 한국에서 진출한 표갤러리, 아트사이드 등 수백 개의 갤러리와 미술용품 판매점,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가 밀집해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새로운 공간이 옆 거리인 797과 799구역까지 영역을 넓혀갈 만큼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몇 곳의 갤러리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자 공장 외벽에 그려진 그라피티(Graffiti)가 힙합 예술가들의 자유를 보여주고 거리에 적지 않게 서 있는, 프로파간다 작품 앞에는 정치적 색깔은 전혀 괘념치 않는다는 듯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공장지대와 예술작품, 공산주의와 자유를 표방하는 현대미술의 조합이 어색한 듯 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배고플 틈이 없는 곳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하던 다샨즈 798예술지구를 빠져나오자 허기가 밀려온다. 예술의 감동이 육신의 배고픔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베이징에 왔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으니, 바로 베이징의 명물 베이징 카오야(북경 오리구이)다. 카오야는 원래 중국 난징(南京) 요리였다고 한다. 명(明)나라가 수도를 중국의 난징으로 정했을 때 황실에서 즐겨 먹던 요리로, 후에 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 따라오게 된 것. 베이징 카오야가 베이징을 대표하는 요리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음식점 취엔취더(全聚德)를 빼놓을 수 없다. 취엔취더는 1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베이징 카오야 전문점으로, 1864년 베이징에 처음 문을 연 이후 독특한 조리법과 소스를 무기로 베이징 카오야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지금은 베이징을 비롯해 전 세계 35개국에 50여 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을 만큼 세계적인 음식점으로 알려져 있다.

자리에 앉자 춘장과 파, 오이 그리고 밀전병이 준비된다. 그리고 잠시 후 노릇노릇하게 통째로 구워진 오리를 가져온 주방장은 바로 옆에서 능숙한 솜씨로 오리를 썰기 시작한다. 오리의 머리를 떼어내고 껍질을 벗긴 뒤 먹기 좋게 살코기를 잘라내는 현란한 칼 솜씨(?)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드디어 테이블 위에 오리구이가 올라왔다. 가이드가 일러주는 대로 밀전병 위에 춘장을 찍은 고기와 각종 야채를 올리고 먹기 좋게 싸서 한입에 쏙 넣자, 담백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기름기가 밴 껍질의 바삭 하면서 고소한 맛 또한 일품이다. 길게 늘어선 오리가 쉴 새 없이 구워지는 광경 또한 보는 재미를 더한다,

베이징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먹거리는 바로 왕푸징(王府井)의 길거리 음식이다. 왕푸징은 대형쇼핑몰과 기념품점, 호텔, 음식점이 늘어선 베이징 최대의 번화가로, 특히 150미터 길이의 길거리에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에서 파는 꼬치요리는 관광객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귤, 파인애플, 방울 토마토 등의 각종 과일을 나무에 꽂은 후 뜨겁게 끓인 설탕물을 발라 딱딱하게 굳힌 탕후루(糖葫蘆)를 시작으로 닭고기, 양고기, 개구리, 새우, 굼벵이, 전갈, 지네와 해마까지 중국에서는 책상다리와 비행기를 빼놓고는 못 먹는 게 없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하게 한다.

화려한 무대, 그리고 밤거리

소림사 무술의 진수를 만나려면 홍극장(紅劇場)으로 가야 한다. 홍극장에서는 ‘쿵푸 전기’라는 제목의, 스토리가 있는 종합무술쇼를 공연하는데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그 화려함만으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한 소년이 소림사에 보내지고 그는 그곳에서 무술을 연마하게 된다. 청년이 되면서 잠시 방황하지만 결국 진정한 무술의 고수가 되고, 스승의 뒤를 이어 소림사의 지주승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 하나의 공연에는 전통적인 중국무술인 쿵푸뿐 아니라 춤과 음악, 공중 무예, 각종 잡기 등이 녹아 있어 약 80분간 진정한 중국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현란한 조명 아래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창술과 방패술을 선보이고, 목으로 뾰족한 창 끝을 막아낼 때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가 오히려 창이 휘어진 모습에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낸다.

베이징에서의 밤을 그냥 보내기가 허전하다면 낭만적인 호수가 있다는 스차하이(什刹海)로 향하자. 자금성의 서쪽에 자리한 스차하이는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바, 공예품 가게 등이 즐비해 베이징의 밤 풍경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발길이 멈춘 어느 카페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주문하고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호수의 풍경을 감상한다. 호숫가에 자리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는 연인들이 마주앉아 와인 한잔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호수에는 뱃놀이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건너편의 바에서 새어나오는 라이브 밴드의 재즈 음악은 호수의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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