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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향기 가득한 스위스 치즈 마을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01-14 오후 6:26:45

고소한 향기 가득한 스위스 치즈 마을

‘치즈’하면 으레 생각나는 유럽의 몇몇 국가들 중에서도 스위스는 대표적 치즈 생산국으로 익히 알려졌다.

톰과 제리를 그토록 싸우게 만들었던 구멍 송송 뚫린 에멘탈 치즈,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는 그뤼에르 치즈 등

스위스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맛과 향의 치즈가 생산되지만 이번에 기자가 찾은 곳은 그뤼에르 치즈와

아펜첼 치즈의 고장이다.

글 김선희 기자｜사진 문유선 기자

이익 선생이 성호사설에서 이미 ‘조선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은 천하제일이다.’ 라고 실토하신 바 있고, 정약용 역시 ‘우리는 식탐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듯이 우리는 유독 먹을거리에 관대하다.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도 다양한 조리방법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내고, 새 요리법을 개발하거나 응용해서 제3의 요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다른 문화권에서 건너온 음식을 수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정작 중국에는 없는 중국음식 자장면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일본을 거쳐 건너온 슈니첼이 ‘돈가스’라는 이름으로 변신해 대표적인 우리 음식으로 거듭난 지도 오래다.

가장 최근 단시간에, 그리고 폭넓게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먹을거리는 단연 치즈. 기억하건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무렵에 치즈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하나에 50원 정도하던, 한 두입만 먹어도 입 주위가 빨개지곤 하던 쭈쭈바(80년대를 주름잡던 전설의 빙과류)가 보편적인 간식이던 그 때, 처음 맛본 치즈라는 녀석은 엄했다. 맵거나 쓰지도, 달거나 시지는 않는데 비릿한가 싶다가 짭조름하고, 한편으로는 고소한 뒷맛이 감도는 그 오묘한 맛을 그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었다. 얇고 투명한 비닐로 포장된 정사각형의 노란 슬라이스 치즈는 그 후 학교 급식 메뉴에 햄버거가 등장하는 날이면 빵이나 패티와 함께 나왔었고 나중에는 라면이나 돈가스와 결합하며 깜찍한 변신을 시도하곤 했었다. 치즈는 오로지 그 정사각형의 노란 슬라이스 치즈가 전부인양 싶을만큼 절대불변의 위치를 차지하다가 그 수와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하이디와 제리가 사랑한 치즈

세세한 특징이나 생김새, 맛까지 디테일한 정보를 죄다 알 수는 없겠지만, 어느 틈엔가 모차렐라(Mozzarella)나 카망베르(Camembert), 에멘탈(Emmental), 아펜첼(Appenzell), 마스카르포네(Mascarpone), 페타(Peta), 체더(Cheddar) 등 치즈 이름 몇 개쯤은 어렵지 않게 댈 수 있는 시절이 왔다. 게다가 톰과 끊임없이 으르렁대던 제리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구멍이 송송 뚫린 에멘탈(Emmental) 치즈, 어린 마음에도 가슴 두근거리며 책장을 넘기게 했던 동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하이디가 매일 아침 일어나 마시던 신선한 산양의 젖과 양젖으로 만든 치즈는 어느덧 만화의 영역을 벗어나 우리 식탁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5백여 가지나 유통된다는 치즈는 스위스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유럽 국가와 그리스, 터키 등 지중해 인근 국가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초원이 넓고 소와 양을 많이 키우는 지리적 환경에 의한 요인이 크다. ‘유제품의 천국’ 스위스 역시, 국토는 좁지만 계절에 따라 알프스의 험난한 산을 오르내리며 청정한 자연에서 방목되는 소와 양으로부터 신선한 우유와 치즈를 얻고, 에멘탈, 그뤼에르, 아펜첼 등 스위스 각 지역은 저마다의 특성을 살린 맛과 향의 치즈에 그 지역의 이름을 붙여 유통시키며 세계적인 치즈 생산국으로 자리잡았다.

화이트 와인과 함께 마시는 그뤼에르 치즈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는 스위스 서부에 위치한 프리부르(Fribourg) 주의 그뤼에르(Gruy럕e)는 에멘탈, 아펜첼과 더불어 스위스 3대 치즈 산지로 꼽힌다. 그뤼에르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표면이 딱딱하고 다소 강한 향과 짠 맛을 가진 경질 치즈를 생산해왔다. 목장과 프로마주리(Fromagerie, 치즈를 만드는 곳)가 가까이 있고, 갓 짜낸 신선한 생유로 경질 치즈를 만들어내는 스위스 치즈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그뤼에르 치즈(Gruy럕e Cheese)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스위스 산골에서 먹어오던 전통 음식이자, 스위스 대표음식인 퐁듀(Fondue)에 에멘탈 치즈와 함께 주재료로 쓰이는 그뤼에르 치즈는 그만큼 대중적이고, 스위스내 소비량 역시 높은 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스위스 역시 우리의 농협이나 수협처럼 목장을 소유한 목장주가 여럿이 모여 공동으로 운영하는 프로마주리를 만들고, 대량의 우유를 모아 공동으로 치즈를 생산하고 또 유통에 나서기도 한다. 그뤼에르에는 185개 가량의 치즈 공방이 있는데, 그 중 ‘메종 드 그뤼에르(La Maison Du Gruy럕e)’는 대표적인 프로마주리로 1년 내내 이곳에서 치즈를 만들고, 판매하는가 하면 치즈의 제조과정이나 그뤼에르 치즈의 역사 등을 담은 전시실을 마련해 두어 누구라도 입장료 6프랑만 지불하면 치즈를 만드는 공장과 저장고, 전시실을 견학하고 각각 6개월, 8개월, 10개월 숙성된 치즈의 샘플까지 얻어갈 수 있다.

매일 아침, 메종 드 그뤼에르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해발 800~1,600미터의 지대에 위치한 농장에서 그날 아침에 갓 짜낸 신선한 우유를 가득 실은 트럭이 줄줄이 도착하는 것. 모두 36개의 농장에서 배달되어 오는 터라 나고드는 트럭의 행렬로 아침부터 프로마주리는 활기가 넘친다.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우유가 속속 도착하면 공장 안으로 옮긴 다음 4,800리터 가량을 담을 수 있는 대형 가열통에 넣어 데워진다. 처음 도착했을 때 25도씨 가량이던 우유는 기계가 쉬지 않고 저으며 30도로, 다시 55도까지 데워진 다음 치즈의 틀을 잡는 몰드 머신으로 옮겨진다. 지름이 60센티미터나 되는 큰 사이즈의 몰드에서 둥근 형태로 치즈가 굳으면 물과 소금이 동량으로 섞인 소금물에 24시간 동안 담가두었다가 저장고로 옮겨지며 그뤼에르 치즈가 완성된다. 물론 여기서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형태는 다 잡혔지만 치즈에서 가장 중요하달 수 있는 맛과 향은 저장방법과 기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보관하느냐가 관건.

소나무로 만든 받침대가 차곡차곡 쌓인 저장고로 들어서면 암모니아 가스가 코끝부터 자극해 온다. 메종 드 그뤼에르에서는 하루 평균 48개의 치즈가 만들어지는데, 갓 만들어진 치즈일수록 옅은 노란빛을 띤다. 저장고의 입구에서부터 뒤로 갈수록 색이 조금씩 변하는 걸 보니 굳이 치즈 표면에 찍힌 제조일이나 고유 번호를 보지 않고도 제조 순서를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좀 더 넓은 두 번째 저장고로 들어서면 훨씬 강도 높은 암모니아 가스가 코를 자극한다. 오래 숙성될수록 향이 강해지는 탓에 저장고 안은 공기의 입자 하나하나에까지 치즈 향이 배어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강렬한 냄새로 가득하다. 하나의 무게만 해도 35킬로그램나 되는 큰 치즈 덩어리가 7천여 개나 보관되고 있으니, 취재가 끝난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향은 너무도 당연했지 싶다. 저장고에서 자연 숙성되며 치즈의 향이 강해지는데 비례해서 짠 맛도 증가한다. 보통 6개월 이상 숙성된 치즈부터 판매하기 시작하는데 8~10개월 정도 숙성된 치즈가 가장 인기가 많다. 그리고, 스위스 그뤼에르 지역에서 만들어진 치즈는 오리지널 그뤼에르 치즈임을 인증하는 AOC+마크가 치즈 표면에 찍혀 있어,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그뤼에르 치즈와 구분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강렬한 향까지 감수해가며 그뤼에르 치즈의 제조과정을 지켜봐놓고서 시식을 생략할 수는 없는 일. 메종 드 그뤼에르에서 3종의 치즈가 든 샘플을 받아들긴 했지만, 그뤼에르 치즈의 진수를 맛보려면 역시 퐁듀를 놓칠 수 없다. 프로마주리 맞은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10분 여 오르면 작고 아담한 마을에 그뤼에르 전통 복장의 아주머니들이 에멘탈 치즈와 그뤼에르 치즈를 동량으로 넣고 화이트 와인과 함께 녹여 끓여낸 퐁듀를 내는 전통 스위스풍의 레스토랑이 있다. 통째로 삶아낸 감자와 빵을 먹기 좋게 자른 다음 스틱에 꽂아 치즈에 담근 다음, 치즈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돌돌 감아 먹으면 되는데 그뤼에르 치즈 특유의 짭조름한 맛 뒤로 쫄깃쫄깃 씹히는 느낌이 재미있다. 레스토랑의 음료 리스트가 다양하지만 퐁듀를 먹을 때는 따뜻한 차나 향긋한 과일 향이 도는 화이트 와인을 주문하는 센스를 발휘하시길.

하얀 눈 덮인 동화마을 아펜첼

아펜첼(Appenzell)을 향해 가는 길. 취리히에서 동부로 향하는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탄 다음, 스노우볼을 여러 번 흔들어 눈이 흩날리도록 만든 듯한 풍경의 시골길을 마을 우체국에서 운행하는 소형 버스로 달린 다음에야 닿았다. 스위스 동부 산간의 작은 마을은 관광객조차 그리 많이 찾지 않지만, 스위스 3대 치즈 중 하나로 꼽히는 아펜첼 치즈(Appenzell Cheese)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눈이 펄펄 내리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시골길을 달려간 것도 아펜첼 치즈를 만드는 공방을 보기 위한 것.

아펜첼과 상트 갈렌(St. Gallen), 투르가우(Thurgau)의 스위스 동부 3개 주에서만 생산되는 아펜첼 치즈는 그뤼에르처럼 이 지역의 농장주들에 의해 지난 1979년에 설립된 치즈 공방에서 만들어진다. 만화 속,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기억하는지. 붉은 체크무늬 원피스에 두건을 쓴 하이디와 검정 멜빵 바지에 하얀 셔츠의 목동의 옷차림과 거의 흡사한 형태의 전통 의상을 가진 스위스 동부 아펜첼 산악 지역에서만 만들어지는 아펜첼 치즈는 생산 지역은 좁지만 나름의 전통 제조 방법을 고수하며 이미 7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이어왔다.

아펜첼 치즈 역시 만드는 방법은 그리 다르지 않다. 매일 아침, 인근 산악 지역에서 생산된 2만 리터에 가까운 신선한 생유를 살균해 영하 10도 이하로 냉각하고 저장탱크로 옮긴 후, 살균되지 않은 우유는 원심분리기를 통해 우유 속의 크림 성분을 걸러낸다. 아펜첼 치즈를 만들 때는 지방 함유율을 3.2퍼센트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 기름지거나 건조하지 않도록 일정량의 지방을 함유한 우유는 대형 통으로 옮겨진 뒤 레닛과 박테리아를 첨가해 지속적으로 저어주며 서서히 데운다. 치즈의 틀을 잡는 몰드에 넣고 압력을 가하여 찌꺼기를 제거한 후, 치즈 생산 농장의 마크와 지역, 고유번호, 생산일자 등이 기록된 치즈 패스포트를 새긴 다음 소금물에 담그는 과정까지는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뤼에르 치즈는 소금물에 하루만 담가두는 데 비해, 아펜첼 치즈는 48시간동안 그 상태를 유지시킨다는 것. 소금물에 오래 담가둘수록 치즈는 더욱 단단해 지고, 동시에 맛과 향 역시 한층 강해져 더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되며, 치즈 속의 불필요한 수분을 제거하는 효과까지 가진다. 이틀간 소금물에서 단련된 치즈는 저장고로 옮겨져 자연 숙성되도록 기다리는데 이때, 아펜첼 치즈만의 비법이랄 수 있는 허브액을 치즈 표면에 덧바른다. 아펜첼 인근 지역에서 자라는 20여종 이상의 허브와 화이트 와인, 물을 섞어 만든 허브액은 치즈가 발효되는 동안 그 향이 치즈로 스며들어 치즈와 허브의 향이 오묘하게 결합되어 더 향긋하고,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진다. 에멘탈 치즈처럼 많지는 않지만 치즈에 투입된 박테리아의 작용으로 인하여 간간히 작은 구멍이 뚫리는 것도 아펜첼 치즈 만의 특징.

저장고에서 숙성된 기간에 따라 맛과 향이 따르고, 그에 따라 아펜첼 치즈도 여러 종류로 분류된다. 3개월 된 것에서부터 6개월 이상된 것에 이르기까지 치즈 레벨의 색을 달리해 종류를 구분하는데, 1주일에 2~3번은 올가닉 우유를 사용한 치즈도 만들어낸다. 아펜첼 치즈는 저지방 우유를 원료로 써서 1년 이상 보관할 수 없으므로 구입한 직후 가급적 빨리 먹는 것이 좋다. 치즈 라벨에 제작 연도 없이 날짜만 표기된 것도 어차피 유통기한이 1년 이내여서, 제작된 해를 굳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

워낙 조용한 산골 마을이고 더군다나 치즈 공장 내부에는 직원만 들어가도록 하는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터라 창을 통해서 치즈 메이킹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공방 곳곳에 치즈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만드는 과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가끔 아펜첼 프로마주리를 방문하는 마이티 마우스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쥐로 분장한 스위스 아저씨가 이곳을 방문한 아이들을 모아두고 눈 내리는 창가 의자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준다. 치즈에 대한 이야기, 스위스의 옛날 이야기, 혹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얘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이야기의 소재는 무한정이니 혹시라도 마이티 마우스를 만난다면 TV 리모컨 버튼을 누르듯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물어봐도 좋겠다.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시큼한 치즈 향이 떠도는 공방의 창밖으로 눈이 소복이 내려앉던 아펜첼의 겨울 풍경이 떠오르는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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