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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엔츠가 가진 특별한 재능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01-30 오전 10:44:46

브리엔츠가 가진 특별한 재능

신이 인간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했다면, 브리엔츠 사람들이 받은 선물은 나무로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었을까. 스위스에 하나 뿐인 목공예 학교와 유서깊은 공방이 이 마을에 있기도 할뿐더러 겨울의 시작과 함께 마을 곳곳을 빛나게 하는 아기자기한 장식들은 그들이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살짝 보여 준다.

글 김선희 기자 | 사진 문유선 기자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목, 인터라켄 오스트역에서 잠시 정차했던 기차는 철로를 바꿔 후진하기 시작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터라켄에서 흘러내린 빙하수가 고여 형성된 브리엔츠 호수 끝자락의 브리엔츠(Brienz)로 향하는 길이다.

취리히에서 출발한 기차가 인터라켄 인근으로 오는 동안에는 연방 산허리를 감고 오르내린 터라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먼 배경으로 한적한 산골 마을과 가지마다 수북이 눈이 쌓인 침엽수립을 지나왔는데, 브리엔츠까지는 평지를 지나간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가 한 대씩 보이는 도로를 제외하고는 하얀색 일색인 레일 위를 달린지 얼마 되지 않아 브리엔츠 호수가 나타나고, 곧 브리엔츠 역에 섰다.

왕복 2차선의 소박한 메인 스트리트로 들어서서 야트막한 경사면의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좁은 길 양쪽으로 들어선 나지막한 목조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서깊은 목공예의 마을이라더니 입구에서부터 그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굳이 유래를 찾자면…

언제부터 브리엔츠가 목조각의 마을로 알려졌는지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몇 세기 전부터 주변에 흔했던 나무를 이용해 생활소품을 비롯한 이런저런 장식품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투박한 물건에 정교한 장식을 가미하게 되면서 목공예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보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소나 양을 키우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는 다른 소일거리를 할 여유가 있었을 테니 집 밖에만 나가면 지천인 보리수나무를 베어다 도구를 만들었던 것. 처음에는 생활에 쓰이는 그릇이나 스푼 등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세밀하고 정교한 장식도 새겨 넣고, 브리엔츠를 찾는 관광객들이 목공예품을 사기 시작하면서 목공예의 마을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스위스에 하나밖에 없다는 목공예 학교가 브리엔츠에 들어선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스위스 유일의 목공예 학교

1층 복도에 걸린 시계가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키자 째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을 든 학생들이 밖으로 몰려나온다. 홀츠빌트 목공예 학교(Schule F웦 Holzbildhauerei)의 쉬는 시간이다.

1884년에 설립된 이곳은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목조각공을 키워내는 학교이다. 브리엔츠가 목공예의 마을로 알려지자 스위스에서는 아예 ‘브리엔츠=목공예’라는 공식을 굳히기 위해 학교를 세운 것이다. 이미 개교한지 100년이 훌쩍 지난 홀츠빌트는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어서 학생들은 수업료 부담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연령에 제한은 없으나 정규 교육과정을 수료해야 입학할 수 있고, 수업이 독일어로 진행되는 만큼 독일어 구사 여부가 중요한 조건이 된다.

목공예만을 가르치는 특수 학교여서 그런지 홀트빌츠의 학생 수는 그리 많지 않다. 4~5명의 교사가 20명이 조금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규모이지만 스위스 유일의 목조각 학교라는 자부심만큼은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15세에서 40세까지 학생들의 연령은 다양하고, 고향도 모두 다르다.

홀츠빌트 학교의 학제는 4년으로 나눠진다. 나이와 관계없이 처음 입학한 학생들은 커리큘럼에 따라 볼이나 스푼, 접시 등을 조각하다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작품의 범위가 넓어진다. 크게 인간, 동물, 장식품 등의 주제로 나뉘는데 결국에는 본인이 생각한 아이템을 스케치해서 찰흙이나 석고 등으로 본을 뜬 다음, 그걸 모델로 본격적인 조각 작업에 들어간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작품을 완성했는지, 아이디어가 참신한지 그리고 기술의 세밀함 등이 평가 기준이 되는데, 4년간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받으면 완성되는 작품은 총 60여 개. 정부에서 수업료를 보조받는 대신,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도 8개 이상은 소장할 수 없단다.

브리엔츠를 조각하는 조방

목공예 마을 브리엔츠의 진수를 보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조방(Jobin)이다. 1835년에 문을 연 이 공방은 무려 5세대를 이어오는 동안 브리엔츠와 스위스를 대표하는 목조각 공방으로 자리잡았다. 처음 가족의 일원 두 명으로 시작했던 작은 가내수공업이 100여 년 전에는 무려 200명의 조각가와 목수를 거느릴 만큼 번창했다가 지금은 2명의 조각가와 목수 서너 명 등 20여 명의 인원이 일하고 있다.

조각가들의 작업실과 수비니어 숍, 미니 카페가 있는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서면 옛 브리엔츠 사람들의 자취를 담은 리빙 뮤지엄이다. 100여 년 전,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 소품과 장식품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인데, 구둣솔, 쓰레받기와 빗자루 세트, 빗, 식기를 비롯한 부엌용품 등 전시품 대부분이 아주 소소한 아이템이지만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은 물론 아니다. 구둣솔에는 세밀한 장식의 에델바이스가 새겨져 있고, 쓰레받기와 빗자루에도 여느 엔티크 숍의 가구에서나 보았음직한 화려한 무늬를 조각해 놓아 정말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었을까 싶은 의문이 들만큼 하나하나가 훌륭한 작품이다.

리빙 뮤지엄 바로 옆방은 좀 특별하고 진기한 공간이다. 조방에서 만든 것 뿐 아니라 세계의 유명한 뮤직 박스가 모두 모여 있는 뮤직 박스 전시실. 투박한 나무 상자를 열면 단조로운 멜로디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뮤직 박스를 상상했다면, 아마 이곳에서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큰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고 상자 옆면의 태엽을 감으면 복합화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지며 드레스업한 인형 커플 여러 쌍이 밀려나오며 음악이 멈출 때 까지 춤을 추는 뮤직 박스에서부터 기적 소리를 울리며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 음악이 흘러나오는 평범한 나무 의자 등 지금껏 보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던 다양한 종류의 옛 뮤직 박스들이 잔뜩 모여 있다.

조방에서는 와인오프너, 도마, 명함꽂이, 냅킨 홀더, 호두까기 등 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내지만 뮤직 박스, 벽시계 등 무브먼트가 필요한 제품의 프레임을 짜거나 장식품과 가구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주문을 받으면 그에 맞는 특별한 아이템을 조각해 이름을 새겨주기도 한다니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을 때 더없이 좋을 아이템이지 싶다. 미리 신청하면 직접 조각을 체험해 볼 수도 있으니 윈터 스포츠를 즐기거나 알프스의 자연에 묻혀 그저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여행 말고도 보다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산으로 둘러싸여 오후 4시면 이미 어둑어둑해지는 브리엔츠에서는 유독 하루가 짧다. 공방을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가로등이 켜져 있고, 거리에 늘어선 나무집 창가로 비치는 불빛이 유독 따뜻하다. 집집마다 창가와 현관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나무 장식도 부지런하고 손재주 많은 사람들이 사는 브리엔츠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몇 번씩 사람의 손길을 입어 다듬어지고, 마모되고, 그대로 조용히 세월을 입어가는 낡은 집들과 그만큼 낡은 목조각품이 가득한 브리엔츠의 거리에는 은은한 나무향이 가득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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