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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 앙시로의 산책

이름: 관리자 ㅣ 작성일 : 2009-04-03 오후 2:50:37

Travel Rhone-Alpes

ANNECY

휴양지 앙시로의 산책

5천년 전에 이곳은 그저 계곡이었다. 마을도 없었고 원시의 모습만이 존재했었다.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와 고였던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면서부터 앙시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글 김형철 편집장｜사진 조중민 기자

앙시에 도착한 시각은 예상보다 훨씬 늦은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알프스의 영봉을 향해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다보니 날씨의 변덕이 좀 심했던 탓이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이 그렇듯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지만 불 밝힌 거리엔 카페와 레스토랑만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차가운 겨울 바람에 몸을 움츠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삐 발걸음을 재촉한다. 수세기 전의 과거 마을 속에 21세기의 현대적인 사람들이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 리옹의 구시가에서 보았던 풍경과 별반 다름이 없다. 21세기의 사람들을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15세기 건축물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인공의 빛에 반사되어 희미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금요일 저녁의 앙시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호기심의 부피만 커다랗게 키워놓은 채 이방인을 맞고 있었다.

오랜 시간속의 산물 가장 먼저 만나는 앙시의 모습은 아마도 구시가지의 고전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이 도시의 상징이 된 역사박물관의 야경을 이미 인터넷을 통해 보았던 때문인지 제일 먼저 확인하는 의식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구시가지에 자리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앙시의 느낌을 구시가지에서 가장 먼저 얻게 되는 것이다.

켈트족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고 서서히 마을의 규모를 갖추어갔던 것이 5천년 전이라고 하지만 그 전에도 아마 원주민은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물론 이곳이 프랑스 영토가 아니었을테니 먼저 들어와 정착을 했다면 이 땅의 주인은 원주민과 더불어 켈트족이 되었을 것이다. 켈트족의 정착으로 시작된 앙시는 그후 6세기에 걸쳐 마을의 규모를 키워 나갔고, 점차 호수 주변의 높은 산 위로 퍼져나가 그 규모가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넓어졌다. 자연히 클래식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구시가지 곳곳에 자리하게 되었고, 돌이 깔린 골목길과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수세기 전의 건축물들은 앙시의 고풍스런 모습을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그런 건축물 중의 하나가 생모리스 교회다. 앙시 최초의 교회유적으로 사보이 지역에서 남부 고딕양식을 띠고 있는 생모리스 교회는 두 차례에 걸친 대화재 이후 15세기에 완성되었지만 이것이 처음 지어진 것은 1100년으로 기록되고 있고, 지금도 15세기풍의 중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1792년에 앙시가 있는 사보이 지역에는 많은 수도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종교적인 측면도 강했지만 그런 곳들을 통해서 흩어졌던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프랑스의 영토가 된 뒤 ‘토마스 루피’라는 사람은 앙시를 새롭게 만들기 위한 도시계획을 수립한 뒤 도로를 놓고, 필요없는 성벽을 허물어 마을을 정비하면서 도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능들을 갖추어 나갔다. 사람들의 관심이 하나 둘 앙시로 몰리면서 산업적 발전도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어거스틴 오스닷’과 ‘장 피에르 두포르트’가 있었다. 어거스틴 오스닷은 1800년에 제지회사를 설립해 대량으로 종이를 생산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고, 원래 리옹출신의 상인이었던 장 피에르 두포르트는 1804년 앙시에 섬유공장을 설립하면서 약 2천여 명의 사람들을 고용하는 등 급속한 산업발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더불어 종을 생산하는 공장이나 칼, 뼈로 만든 머리빗 등을 생산하던 사람들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앙시 인근의 호수 근처에는 이곳의 종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된 ‘파카드 박물관’이 있는데, 오래전 종을 생산하여 캐나다로 수출했던 기록들과 전시된 수많은 종들을 만나게 된다.

1860년에 사보이 지역이 공식적인 프랑스 영토가 된 뒤 앙시는 오트사보이 지역의 행정적인 수도가 되었다. 1930년부터 시작된 정밀산업과 보석산업은 1950년에 들어서 더욱 발전하게 되는 이곳의 주요 산업이 되었다. 이렇게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다보니 인구의 급격한 유입이 이루어져 1946년에 2만 6천여 명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커다란 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앙시는 휴양지로 통한다. 보석이나 정밀산업 등이 발달했던 과거의 기록만으로만 본다면 휴양지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앙시가 자리한 곳이 알프스산맥의 초입에 있고, 길이 14킬로미터의 긴 앙시호수가 함께 있으며,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3천 미터 이상의 영봉들이 봄까지 흰 눈을 봉우리에 이고 있는 풍경들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휴양지로 이름을 알릴만 하다.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야기가 시작되는 구시가지 티우 강의 섬에 위치한 앙시역사박물관은 죄수들을 수감했던 감옥이었고, 앙시 시내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샤토박물관은 1970년에 앙시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성의 한쪽 건축물에는 앙시와 알프스의 생태계를 전시한 알파인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앙시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구시가지의 티우 강을 따라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 강들을 따라 물건들이 운반되었었다고 하니 다름 아닌 알프스의 베니스라는 이름을 가질만했다.

수로를 따라 늘어선 15세기 전후의 가옥들, 말발굽의 요란한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좁은 골목길, 빛바랜 모습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축물들, 여기에 알프스의 깨끗한 물이 흘러들어 호수를 이룬 앙시호수는 이제 사람들에게 휴양의 시간을 가져다주는 평화로운 도시가 되었다.

앙시를 달리 만나는 드라이브 호수의 양 끝에 ‘앙시’와 ‘파베르쥐’가 있다면 그 중간쯤에 ‘탈와’라는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전통적인 알프스의 마을처럼 호수와 초원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샬레들이 모여 있는 이 작은 마을의 언덕에 오르면 서쪽 하늘로 지는 태양 덕분에 건너편 산의 어두운 실루엣이나 호수에 비친 빛의 산란을 감상하게 된다. 호수 한 쪽 면에 있는 작은 섬에는 고풍스런 샤토(고성)가 자리하고 있고, 호수와 어울려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감흥에 사로잡힌다. 이 평화롭고 이국적인 풍경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앙시는 매력적이다.

쉬기 위해서 찾아오는 여행객들에게 앙시호수는 레저의 장이 되곤한다. 바람의 힘에 의해 수면을 질주하는 요트들의 행렬은 물론, 물보라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수상스키어들,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캠핑을 하며 알프스의 기운을 즐기는 캠퍼들까지 앙시호수는 아주 많은 레저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앙시에 들어온 사람들이 정착을 한 이후 유적이 된 구시가지가 만들어졌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호수 주변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마을은 호수에 의지하며 삶을 꾸려 나왔다.

호수를 지나다 보면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서 산촌마을의 여유와 풍요를 느끼게 된다. 평생을 유리공예에 몸담았던 예술가 가비글리오 노부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을 파르베쥐에서 만나게 되고, 역사적 아픔의 기억들이 가득했던 리꾸키꾸 고성에서는 전세계 곳곳에서 채집된 나비들의 표본을 만나게 되며, 레저스포츠의 메카가 된 탈와마을에서는 호수 위에서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휴양객들의 밝은 표정들을 만나게 된다. 반나절에 걸친 호수 주변으로의 드라이브는 알프스 마을의 이국적인 모습들과 그 마을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게 해준다.

프랑스적인 산촌도시의 풍경은 물론 액티비티와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앙시는 론알프스에 발을 들여 놓으면 꼭 보아야 하는 몇 몇 도시 중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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